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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케인스를 넘어
[PEOPLE] 경제를 바꾼 세기의 여성 ②
[124호] 2020년 08월 01일 (토) 질 도스탈레르 economyinsight@hani.co.kr

질 도스탈레르 Gilles Dostaler 캐나다 몬트리올 퀘백대 경제학 교수
마르크 무슬리 Marc Mousli
경영 컨설턴트

   
▲ 1907년 8월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루스벨트재단 누리집

룩셈부르크는 경제학 이론서를 쓴 첫 여성이었다. 당시에는 (일부 예외가 있지만 지금도) 경제학은 남성 지배적인 학문이었다.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로자는 16살에 폴란드 프롤레타리아당에 가입하면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유력 당원으로 활동했다. 1898년 독일 수정파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이었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이름을 알렸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로자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자본주의 변혁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다. 급격하고 파괴적인 혁명을 사회주의로 가는 유일한 통로로 제시하는 사상에 반대했다. 레닌주의 진영에도, 볼셰비즘 진영에도 속하려 하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공산당 혁명을 이끌던 로자는 1919년 1월 민병대원 손에 사살돼 생을 마감했다.

비판적 계승자
카를 마르크스처럼, 그는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해 사회주의로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정치경제학이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여긴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자신도 생애 큰 부분을 정치경제학 연구에 바쳤다. 그러던 로자는 마르크스 이론에서 중요한 모순을 발견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점차 커지는 위기로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론> 2권에서 생산수단과 소비재 영역의 관계를 설명하는 재생산 표식은 자본주의가 어떤 조건에서 균형성장을 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로자는 대표 이론서 <자본축적론>에서 19세기 초 시작된 성장 논쟁 역사를 상세히 설명했다. 마르크스 이론을 비판하고, 마르크스 이론이 일으킨 논쟁을 소개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 일부가 추가적 자본으로 흘러가 자본축적 또는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 이론에는 한계가 있었다. 추가적 자본을 부르는 수요가 어디에서 오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축적과 투자 심리를 일으키는 동력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생산된 것은 전부 소비된다는 암묵적 가정이 있어야만 유효한 이론이었다.

비자본주의 사회
로자는 토머스 맬서스의 사상(후대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인용)을 참고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늘어나는 생산품을 내보낼 출구를 마련하려면 실질수요가 있어야 하고, 실질수요는 오로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지출이 만들어낸다. 따라서 폐쇄적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 한계에 부딪힌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려면 비자본주의 사회가 필요하다. 비자본주의 사회는 아직 자본주의화하지 않은 영세농업, 전문수공업같이 국가 내부에 있을 수 있다. 외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개발이 덜 된 나라다. 현대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식민주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케인스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은 1951년 발간된 <자본축적론> 영문판 서문에서, 20세기 자본주의가 겪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다. “이 책의 통찰력은 현대 그 어떤 전통경제학 이론서도 견주지 못할 만큼 깊다.”

케인스 이론 확장한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

로빈슨은 비순응주의자였다. 글을 쓸 때도, 학생을 가르칠 때도, 모든 일상에서 거침없었다. 1933년 발표한 <불완전경쟁의 경제학>은 독점이론을 발전시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새로 썼다.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책이자, 정통파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수용한 이론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이 책에서 점차 멀어지더니, 1969년 복간본 서문에 냉혹한 비판을 싣기까지 했다.

케인스부터 마르크스까지
로빈슨은 케인스보다 20년 늦게 세상에 나왔다. 당시 이미 저명한 경제학자이던 케인스를 로빈슨은 때때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케인스가 던진 혁명적 메시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하는 모습을 지켜본 로빈슨은 케인스 혁명이 좌절됐다고 생각했다. 케인스주의와 신고전주의를 결합한 이론가들을 두고는 ‘잡종 케인스학파’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전후 주류로 떠오른 세력이었다.
1930년대 중반 로빈슨은 폴란드 출신 비주류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를 알게 됐다. 칼레츠키가 케임브리지학파로 활동하기 전 제시한 이론을 통해서였다. 마르크스 사상을 바탕으로 했는데, 케인스주의와 비슷하면서도 어떤 면에서 그보다 앞선 이론이었다. 로빈슨은 칼레츠키를 통해 마르크스 경제학을 접했다. 1942년 경제학계에서 처음 마르크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책을 발표했다. 로빈슨은 책에서 성장, 위기, 실업 등 진짜 경제문제에 관심 가진 경제학자는 마르크스라고 평했다.

<일반이론>의 일반화
로빈슨이 두각을 나타낸 건 1950년대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일반이론의 일반화’라고 소개했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단기에 집중했다. 성장 이론을 발전시키려면 단기적인 케인스이론을 장기화해야 한다는 게 로빈슨 생각이었다. 그는 제도, 현대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게임법칙, 자본주의 생산수단의 독점적 성격을 연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생각에서 로빈슨은 기업가가 정한 투자율이 (성장의) 핵심 변수가 되는 모델을 비수학적 언어로 제시했다.
‘여성의 해’로 지정된 1975년 노벨경제학상 유력 수상자로 로빈슨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의 솔직한 입담이 너무 많은 적을 만든 탓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여성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로빈슨은 50여 년 동안 책 24권과 논문 수백 편을 썼다. 그 가운데 몇몇은 학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퇴직한 남편 오스틴 로빈슨 뒤를 이어받아 62살에야 경제학 교수가 됐다. 오스틴의 저서는 단 2권. 논문 수도 조앤에 한참 못 미쳤다.

   
▲ (왼쪽부터)1951년 발간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 영문판. 조앤 로빈슨이 1933년 발표한 <불완전경쟁의 경제학>. 메리 파커 폴렛의 경영철학을 담은 <창조적경험>.

혁명적 갈등·협력론 내건
메리 파커 폴렛(Mary Parker Follett)

폴렛은 미국 보스턴 인근 퀘이커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 덕에 평생 독립적으로 살 수 있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보스턴여성연맹에서 진보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보스턴여성연맹의 활동 무대는 다양했다. 여성 투표권 운동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폴렛이 20년 넘게 몰두한 일은 빈민가를 돕는 것이었다. 마을회관을 만들어 활동을 이끌고, 새 이민자를 위한 야간학교와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진로지원센터를 운영했다.

갈등의 가치
폴렛은 기업과 경영에도 서서히 흥미를 느꼈다. 여성노동자·노동분쟁에 관한 3자 위원회에서 지역사회 대표를 맡으며 노조·사용자 양쪽과 관계를 맺었다. 가장 진보적인 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생산라인에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인사 담당자 얘기를 들으며 공장 경영에 이해를 넓혔다.
폴렛은 세 번째 저서 <창조적 경험> (1924)에서 경영철학에 대한 관심을 처음 이야기했다. 그의 경영사상은 철학, 심리학, 법학을 아울렀다. 현장에서 얻은 경험 하나하나, 법학자·철학자·정치담당 기자들과 나눈 대화로 폴렛은 자신의 경영사상을 살찌웠다. 57살 되던 1925년에 본격적으로 경영사상을 발전시켰다. 폴렛에겐 신념이 있었다. “갈등은 의견 상충의 파괴적·비경제적 표현이 아니라, 정상적 절차다.” 폴렛에게 지도자, 노동자, 관리자의 이해와 관점 차이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었다. 그는 다양성과 갈등을 찬양했다. 이런 접근법은 당시에 혁명적이었다. 1960년대까지도 경영학계에선 갈등을 없애는 ‘과학적 관리법’을 찾는 데 혈안이었다. 당시 갈등은 그저 기능 오류일 뿐이었다.

협력의 힘
폴렛의 협력에 대한 생각도 혁명적이었다. 1911년 미국 경영학자 프레더릭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자가 조직으로 일할 때 개개인의 생산성은 조직 전체의 가장 낮은 생산성과 같거나, 그보다 더 떨어진다.” 폴렛 생각은 달랐다. 그는 조직이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새 관리법을 제시했다.
시대를 앞선 리더십이었다. “리더는 조직을 구성해 조직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뽑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완벽히 수직적인 조직을 내세운 앙리 파욜, 테일러의 사상과 거리가 멀었다. 폴렛의 가르침은 개인에 대한 깊은 존중이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7월호(제403호)
Ces femmes qui ont transformé l’économie et ont été oubliées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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