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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돈풀기, 불평등 심화·성장 정체
[FINANCE] 현대통화이론(MMT)의 함정
[124호] 2020년 08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2월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가 개최한 2021 회계연도 정부 예산안 청문회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상대로 정부가 성장과 소득 증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따지고 있다. REUTERS

실증되지 않은 미완성의 현대통화이론(MMT)을 주요국이 본격화하고 있다. 잔치라도 하듯 돈을 뿌린다. 미국이 기축통화국답게 선두에 섰다. 코로나발 경제위기 대응 방식은 거칠고 단순하다. “돈이 필요하면 찍어내면 된다.” 좌우 공히 이 개념을 지지한다. 일말의 불안감은 있지만 눈앞 위기를 처리하기에 급급하다. 코로나19는 기존 경제원칙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정말 괜찮은 걸까.
MMT는 정치인에겐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성장은 둔화하고 실업률은 높아질 때 혹은 부의 불평등이 확대될 때, 정치인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을 찾는다. 세금을 올리고 혁신을 북돋우고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는 건 지난한 일이다.
반면 돈을 찍어 마음대로 쓸 수만 있다면 경제적 곤경이나 난관은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파산 직전 회사에 돈을 주고, 무너지는 자산시장을 돈으로 틀어막고, 가끔은 살기 힘든 서민에게 공짜 돈을 쥐여준다. 경제는 순간적으로 회생한다. 해고는 줄어들고 자산시장은 상승하고 대중 생활도 유지된다. 표면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두가 행복하다.

MMT의 한계
MMT는 단순한 관찰에서 그 이론을 시작한다. 통화는 정부 독점물이다. 미국 달러는 미국 정부가 발행한다. 가계와 민간기업이 소비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벌거나 빌려야 한다. 정부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찍어내면 된다. 지급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없다. 소비하거나 빌린 돈을 갚을 때 찍어내면 된다. 사실이다. 정부는 필요한 돈을 찍어낼 수 있다.
돈의 구매력은 찍어낼수록 줄어든다. 실제 지난 100년간 달러를 포함한 각국 통화의 실질 구매력은 지속해서 하락했다. MMT의 가장 큰 문제는 돈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다. 혹자는 현재를 ‘디플레이션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돈을 찍어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정말일까. 공식적 통계 수치만 보면 그렇다.
천문학적 유동성 공급에도 공식 인플레이션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혁신, 신기술, 아웃소싱, 유가 안정 등이 큰 몫을 한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오늘날 발표되는 물가는 선택된 몇 개 품목의 가격 변화를 반영할 뿐이다. 게다가 정부는 필요하면 물가 측정 방식을 바꾼다. 미국에선 1998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방식을 바꿨다. 물가를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바뀐 항목은 주택가격 대신 자가주거비(OER)를 물가 산정에 쓰는 것이다. OER는 자가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말한다. 주택가격에 상응하는 이자비용, 보유세 등이 포함된다. 주택가격은 폭등했지만 OER는 상대적으로 적게 올랐다. 낮은 금리 때문이었다. 1998년 이후 주택가격이 136% 오른 데 비해 OER 증가율은 72%에 그쳤다. 이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는 연간 평균 0.4%포인트 낮게 산정된다. 1990년대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재산정하면 공식 인플레이션의 두 배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식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지만, 통계 사각지대에서 가격은 오르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도 자산시장은 폭등했다. 집값과 주가는 천정부지다. 무언가가 오른다는 얘기는 돈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은 반드시 발생한다. MMT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부채의 정당화
MMT의 가장 큰 문제는 부채에 대한 무감각이다. 부채가 늘어도 성장률이 더 높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며 부채 팽창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채 늪에 빠지지 않은 비교적 건강한 나라에 해당하는 얘기다. 빚 수렁에 빠진 나라에서 부채 증가율 이상의 성장률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의 적자 지출이 효율적이려면 부채를 이용한 투자나 지출에서 얻는 이익이 조달 이자보다 높아야 한다. 지출 자체가 생산적 투자여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거나 인프라 개발 등에 쓰여야 한다. 만약 비생산적인 분야에 쓰이거나 빚내어 빚을 갚는 형국이라면 부채 유발 성장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선 연방정부 예산의 75%가 비생산적 지출에 쓰인다. 2019년 미 연방정부는 명목GDP의 21%에 이르는 4.4조달러(약 5300조원)를 썼다. 3.5조달러는 세수, 1조달러는 부채로 조달했다. 총지출 75%가 비생산 분야에 쓰였으니 세수 총액에 맞먹는 3.3조달러 규모다. 나머지 1조달러 정도로 비생산적 지출에서 발생하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감당해야 한다. 1조달러 전부가 생산적 투자에 쓰인다 해도 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미국 경제를 보면, 성장으로 얻는 산출보다 부채 증가폭이 더 가파르다. 1980년 이후 부채 증가는 성장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현재 1달러 추가 성장을 위해선 3달러 부채가 필요한 상황이다. 부채 조달 없이는 미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미국은 이미 부채 수렁에 빠졌다. 주요국 상황도 비슷하다.
이는 MMT 한계를 말해준다. MMT를 유지하려면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 부채 조달 부담이 줄어든다. 이는 부채가 산출물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는 성장 정체다. 현재 상황은 ‘유동성 함정’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돈을 풀지만 생산적인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돈마저 부채다.

   
▲ 2020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석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돈풀기에 앞장선 대표적 인물이다. REUTERS

일본의 교훈
MMT 옹호론자는 일본을 모델로 삼는다. 일본에선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없었다.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0%에 이르지만, 장기금리는 제로이고 물가는 극히 안정적이다. 천문학적 부채와 적자재정에도 겉으론 부작용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 일본은 눈에 띄는 문제 없이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게 있다. 유의미한 성장도 번영도 없다는 것을.
일본은 2008년 시작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여전히 지속한다. 그런데 양적완화 최대 수혜자인 자산시장마저 다른 나라에 견주면 잠잠하다. 주가는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오르긴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직도 역사적 고점을 밑돈다. 일본은행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80%를 소화하는데도 그렇다. 이뿐만 아니다. 일본은행은 정부와 기업부채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다. 전방위적 MMT를 시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일본 경제 산출물은 21세기가 시작될 때보다 약간 많은 수준에 있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저금리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다. 번영과 활력이 없다.
부채 증가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무시되기 일쑤다. 정부, 기업, 개인은 어느새 부채를 당연시한다. 부채는 유행을 넘어 시대의 조류가 됐다. 일본이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라면 걱정해야 한다. 글로벌 성장은 계속 느려지고 있다. 당연히 부채의 부정적 충격은 더 심해질 것이다.
경제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다. 무차별로 뿌려지는 돈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을 넓힌다. 숨겨진 인플레이션은 자산시장에 집중돼 자산가는 더욱 부유해지고 자산 없는 계층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성장을 이끌어내리라는 희망은 부질없다. 그토록 많은 돈이 풀렸지만 성장은 요원하다. 더 많은 부채를 장려하는 사람이 놓치는 것은 부채 문제를 풀기 위해 부채를 사용하는 잘못된 논리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MMT는 공짜가 아니다. 화폐가치 하락으로 구매력은 감소한다. MMT는 숨겨진 세금이다.
MMT는 금융공학이다. 돈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그것의 오용은 경제를 해친다. 도움이 됐다면 일본 경제는 현재 휘파람을 불고 있어야 한다. 일본은 건전한 재정과 경제정책 대신 허울 좋은 통화정책을 택했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번영 없이 정체됐다. 일본은 미국과 다른 선진국이 수년 안에 마주할 소우주다. 선진국은 부채와 디플레이션, 부의 불균형 확대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찍어낸 돈이 부메랑이 되어 이들을 정체된 국가로 만들 것이다. 금융공학으론 번영을 만들어낼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게 핵심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을 풀어야 한다. 그게 정부 역할이다. 해법은 있을 것이다. MMT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면 돈 흐름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이 높은 중산층 이하 서민층에 돈이 흐르도록 하고, 가능하면 생산성 유발 효과가 큰 곳에 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향하는 돈의 물꼬를 반드시 생산적 분야로 돌려야 한다. 돈이 향하는 곳을 통제하지 못하면 재앙은 불가피하다. 특히 부채를 부채로 덮으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MMT가 포퓰리즘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MMT는 번영과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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