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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어쩌다 부자나라가 되었나
[하수정의 오로라를 따라서]
[124호] 2020년 08월 01일 (토) 하수정 stokholm@naver.com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 2020년 1월7일(현지시각)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에서 140㎞ 떨어진 요한 스베르드루프 유전에서 원유를 채취하고 있다. 이 유전은 노르웨이 대륙붕에서 세 번째로 크며, 예상 매장량은 27억배럴에 이른다. EPA 연합뉴스

북유럽이 왜 잘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인구는 적고 날씨는 추워 농사지을 땅도 별로 없는 척박한 북유럽이 어떻게 풍요로운 나라의 대명사가 됐을까.
인구는 적지만 각 나라에 세계적인 브랜드가 제법 많다. 덴마크는 레고와 세계 최대 해운회사 머스크(Maersk), 초록색 맥주캔으로 유명한 칼스버그가 있다. 스웨덴은 잘 알려진 브랜드인 이케아와 H&M, 볼보 외에 인터넷 통화 1세대로 유니콘기업이 된 스카이프, 한때 전화기 생산업체였지만 이제 세계 2위의 통신장비와 5세대(5G) 통신 공급업체가 된 에릭손, 청소기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를 비롯한 중장비 생산 업체가 여럿 있다. 핀란드의 자랑이던 노키아는 이제 종이호랑이가 됐지만 세계에서 다운로드 수가 가장 많은 게임을 다수 보유한 슈퍼셀과 로비오가 있다. 모바일 운영체계 안드로이드의 기반이 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리눅스도 핀란드에서 개발됐다.
이제 노르웨이가 남았다. 정작 북유럽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7만9638달러·IMF 2020)는 내세울 만한 산업이 없다. 덴마크(5만5675달러), 스웨덴(5만5989달러), 핀란드(4만9548달러) 모두 잘사는 나라지만 1인당 소득으로 보면 노르웨이보다 한참 아래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유명한 기업도 없는 노르웨이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기름. 창의력에 근면, 성실까지 갖춘 이웃 나라보다 노르웨이가 더 풍요로운 이유는 바로 원유 산출국이기 때문이다. 노력이 운을 못 이긴다더니.

줄 하나로 갈라진 운명
때는 1969년, 노르웨이는 자국령 북해 앞바다 깊숙이 검은 다이아몬드, 석유가 매장된 것을 발견했다. 4년 전, 엉겁결에 맺은 그날의 협정이 노르웨이 운명을 바꿀 줄이야.
1965년 어느 날, 노르웨이·덴마크·영국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북해에 국경을 댄 세 나라가 바다 따먹기, 즉 영해와 관련된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북해에 원유가 매장됐다는 사실이 발견되기 전으로 핵심 논제는 조업권이었다. 나라별로 대구를 몇 마리 잡을지를 놓고도 열을 올리며 싸웠다. 대구 협의를 마친 뒤 덴마크 외무장관과 노르웨이 통상장관은 지도를 앞에 두고 사이좋게 웃으며 줄을 그었다. 그 줄이 두 나라 운명을 갈랐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결과만 두고 보면 노르웨이 대표가 사전에 시추탐사를 통해 바닷속 어느 지점에 원유가 매장됐는지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노르웨이를 어여삐 여긴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바로 그 금을 경계로 노르웨이령 바다에서 원유가 뿜어져 나왔다. 반면 그 금 반대쪽은 상상대로다. 나싱(Nothing)! 아무것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 협상을 맡은 덴마크 대표가 알코올중독이란 사실이 새삼 불거져나왔지만 협상 당일 취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1972년 쓰린 속을 다독이던 덴마크 앞바다에서도 원유가 나왔다. 어떤 때는 1년에 142배럴을 뽑아 올렸다. 참고로 노르웨이의 하루 생산량은 200배럴이다. 덴마크 1년치 생산량이 노르웨이의 하루치도 안 되지만 그래도 석유 수입 없이 자급할 수 있으니 그게 어딘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더니, 산유국 대열에 오르면서 노르웨이는 트롤에서 신데렐라가 됐다. 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등 전통 산유국이 만든 석유수출국기구(OPEC) 후보 국가로 한쪽에 나란히 섰다. 옆나라 사람들 표현을 빌리면 땅 파서 돈을 버는 셈이다.

포스트 오일 시대 준비
2015년 12월, 노르웨이의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가 스웨덴의 국영 텔레비전 <에스베테>(SVT)와 인터뷰했다. “원유 매장량은 얼마나 남았나요?” 노르웨이가 기름으로 기름지게 먹고사는 배 아픈 상황이 얼마나 갈지 이웃나라 스웨덴과 덴마크는 무심한 척, 귀를 쫑긋 세웠다. 솔베르그 총리는 앞으로 80년가량 추출할 수 있는 양이 남았다고 했다. 그럼 80년 뒤 노르웨이는 다시 물고기를 잡고 양털로 실을 자아 뜨개질하며 살아야 할까?
일단 노르웨이는 기름만큼 천연가스도 보유하고 있다는 배 아픈 사실을 상기하자. 거기다 중동 어느 나라처럼 금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지도자도 없다. 돈 자랑은 애초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바이킹 생리에 맞지 않는다.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해 알뜰히 저축하면서 돈을 불리고 있다. 이름하여 노르웨이 국부펀드인 오일펀드다.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되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지속가능 발전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석유 수출로 얻는 수익 일정액은 다음 세대를 위해 기금으로 적립해 투자하고 있다.
그토록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던 ‘지속가능 발전’의 공식 정의를 발표한 것이 1987년 유엔의 환경과개발위원회 위원장이던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다. 노르웨이 오일펀드는 운용자산이 총 1조달러(1200조원) 규모로 전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1%가량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기업은 물론 전세계 총 9200여 개 기업에 분산투자하고 있으며, 미국 애플 전체 주식의 1%를 갖고 있다. 윤리투자 기준에 따라 노동인권 유린, 아동노동이 보고되거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경우 투자 대상에서 뺀다.
노르웨이 사람은 오일머니가 제공하는 후한 복지 덕에 일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고용률이 75%로 한국(66.7%)보다 높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북유럽 노동정책 기조에 따라 국가와 기업, 노조가 협의해 임금인상 폭을 조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편 결과다. 그럼에도 국가가 지원하는 실업수당·병가·연금 등에 의존해 생활하는 인구 비율이 북유럽에서 가장 높아 노동으로 유인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펴는 한편, 자본을 바탕으로 미래 주력 산업인 교육·재생에너지·로봇·첨단기술·디자인 등에 두루 투자하며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 경쟁보다 협업을, 투쟁보다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북유럽은 어떻게 높은 경제성장률과 사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까? 오로라의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머나먼 겨울왕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은 복지제도뿐 아니라 혁신산업과 창업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오로라를 따라서’는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북유럽 비즈니스는 물론 이를 가능케 한 북유럽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가본다. 동시에 북유럽이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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