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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경제는 ‘사회에 뿌리박혀’ 살아간다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24호] 2020년 08월 01일 (토) 조계완 kyewan@hani.co.kr
   
▲ 문재인 대통령이 2000년 7월9일 오전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캠퍼스를 방문해 소재·부품·장비 관계자들과 ‘으라차차 소부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혁명이 가속도를 붙여가던 1996년, 서정시인이자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으로 유명한 디지털 신봉자 존 페리 발로는 이런 말을 했다. “산업세계 정부들이여. 당신들은 큰 몸집에 철갑옷을 입고 있군요! 나는 당신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사이버세계에서 왔습니다. 부탁하건대, 과거처럼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기 바랍니다. 우리도 당신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에서 인터넷기업 독립을 외친 24년 전, 저 선언은 지금 코로나19 사태와 뒤엉키면서 자못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19가 온세상을 삼켜버리자 기업들은 질식 상태에 빠져들었고, 정부의 ‘보이는 손’이 개입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 접수가 7월 초부터 시작됐다.
한국 경제의 독특한 특징으로 유례없이 높은 무역의존도(2019년 80.8%·국민총소득 대비 총수출입 비율·한국은행)를 꼽지만, 우리 기업이 지난 수십 년간 성장한 배경에 또 다른 ‘의존’이 항상 있었다. 정부 지원, 중국 의존, 글로벌 가치사슬 공급망(GVC) 수혜 같은 것인데 이는 신기술·신산업, 보호무역,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요즘 미래 전기·수소차와 관련해 매일 쏟아져나오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여러 인프라 구축과 합작·협력·투자는 산업통상자원부·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 등 ‘국가부문’과 엮여 있다. 두산중공업이 회생 전략으로 표방하며 사활을 거는 가스터빈 사업도 정부 국책과제(한국형 터빈 개발) 성과가 그 뒤편에 깔려 있다.
오래전 경제부처 전직 장관은 “성장 과정을 볼 때 우리 재벌기업은 사실상 공기업”이라고 했다. 국가가 온갖 자원을 동원해 독점 대기업에 선별 제공한 특혜를 두고 한 말인데, 이런 특권 아래 (발로의 말과는 정반대로) 대기업마다 큰 몸집에 철갑옷을 두르게 됐다. 국가가 투입하는 물적·인적 자원은 공동체 ‘사회’가 만들어냈다.
무역의존도를 위시해, 기업은 일국 차원을 넘어 국제‘사회’의 도움도 받으며 번영을 구가해왔다. ‘탈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를 외치지만, 생산활동에 쓰는 소부장 제품 수입에서 중국산 의존 비중이 80% 이상인 우리 기업은 약 3만 개에 이른다.
좀더 확장하면,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전세계에 확산·구축돼온 글로벌 생산분업 체제에 빠르고 광범하고 깊숙이 편입되면서 번영을 누려온 수혜국이다. 이 공급망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그 위험성과 취약성을 즉각 노출하며 구조적인 균열·훼손 과정에 들어서 있다.
사람도 기업도 가장 나쁜 사태가 닥쳤을 때 비로소 진정한 면모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많은 기업이 코로나발 지각변동에 휩쓸리며 정부에 자금을 요청하고 있다. 이번엔 ‘진짜로’ 다르다. 경제가 일시적으로 탄력 있게 ‘반등’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정상궤도 ‘회복’에 올라서는 과정은 매우 더디고 힘겨울 것이고, 국가·사회에 대한 기업의 의존은 오랫동안 더 넓고 깊어질 공산이 크다.
지난 150년간 기업이 자동차·스마트폰 등 신기술 신상품을 대량생산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왔다면 이제 코로나 시대에 사회가 재정·통화 지원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경제는 사회 속에 깊이 뿌리박혀 배태(embedded)된 채로 살아간다”는 말을 새삼 돌이키는 나날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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