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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소비 회복, 친환경차 각광
[집중기획] 위기의 자동차산업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권순우 soonwoo@mtn.co.kr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 2020년 5월12일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코로나19에 따른 보건 당국의 행정명령에도 공장을 가동하겠다고 선언한 뒤,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공장의 노동자들이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REUTERS

자동차가 안 팔린다. 이렇게 안 팔린 적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동차공장을 못 돌리고, 돌린다 해도 영업 대리점이 문을 열지 않는다. 차를 못 파니 들어오는 돈이 없는데도, 직원 월급 주고 임대료와 은행이자는 내야 한다. 하는 일 없이 수조원 자금이 사라진다.
위기는 기회라지만 너무 혹독하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침체 이후 찾아올 정부의 경기부양책, ‘보복적 소비’(외부 요인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하는 현상)에 대비해 경쟁력 있는 신차 라인업은 구축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 전환도 늦출 수 없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압박 속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는 공통으로 게임체인저가 되길 꿈꾼다.

유동성 고갈 비상
2020년 4월, 13억5천만 명이 사는 인도에서 팔린 자동차는 ‘0대’다. 인도 정부가 전국 봉쇄령을 내려 자동차공장과 영업점이 모두 폐쇄됐다. 판매된 차가 있을 수 없고, 만약 판매된 차가 있다면 봉쇄령을 어긴 게 된다. 공식 통계는 0대다. 인도가 개발도상국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 시장도 만만치 않다. 유럽 전체 자동차 판매는 전월보다 78% 줄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탈리아 -98%, 영국 -97%, 스페인 -97%를 기록했다. 그나마 독일이 -71%로 선방(?)해 평균치를 끌어올렸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 최고 방역을 보여줬다. 봉쇄 없이 코로나19를 관리하는 나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 덕분인지 4월 현대자동차 내수 판매는 0.5% 줄어든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국외 판매는 70.4% 급감했다. 30만 대 가까웠던 국외 판매는 8만8천여 대로 쪼그라들었다.
전세계 자동차 회사는 유동성에 비상이 걸렸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은 꾸준하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이 공장 가동을 일주일 멈추면 20억유로(약 2조7천억원) 현금이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어떤 자동차회사도 버틸 수 없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르노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르노가 프랑스 국내 공장 4곳을 폐쇄해 감원하겠다고 선언하자, 고용 유지 조건을 내걸고 해준 지원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베엠베(BMW)는 올해 실적 전망(가이던스)을 폐기했다.
봉쇄 한 달 만에 자동차회사에선 엄청난 유동성이 빠져나갔다. 한 대라도 더 팔아야 생존할 수 있다.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보건 당국의 행정명령까지 위반하면서 공장 가동을 강행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나는 다른 직원과 함께 생산라인에 서 있겠다. 만약 누군가를 체포해야 한다면 나만 체포하길 요청한다”며 주정부에 맞섰다.
5월 판매는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 국외 판매는 전년의 50% 수준인 14만6700대로, 4월보다는 훨씬 나았다. 주요국 봉쇄가 풀리면서 판매가 일부 회복세를 나타냈다. 보복적 소비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봉쇄 해제 뒤 전세계 자동차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4월 중순 29%에 불과하던 전세계 공장 가동률은 한 달 만에 83.5%로 치솟았다.
4월에는 공장 가동을 못한 게 문제였다면, 5월엔 너무 많이 가동한 것이 부담이 됐다. 자동차회사들이 생존을 위해 모두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렸지만, 차를 사겠다는 사람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글로벌 수요 절벽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 기업의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우리 업계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2020년 5월 영업 개시를 앞둔 서울 강동구의 수소충전소. 현대자동차가 지은 이 충전소에선 하루 70대 이상 수소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연합뉴스

위기가 낳는 기회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것은 기존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다 여유 있을 때는 경쟁 구도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장 극단적인 순간에 경쟁력을 가진 쪽은 더 많은 시장을 점유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쪽은 아예 퇴출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4%대인 미국 시장 점유율을 3년 만에 9% 가까이 끌어올렸다.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빅3 가운데 지엠(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신청을 하고 도요타조차 휘청이던 시기였다.
현대차는 중저가 세단에 경쟁력이 있는 업체였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경기침체로 주머니가 가벼워지자, 미국인은 연비 좋고 가격이 저렴한 중형 세단을 선호했다. 현대차는 일자리를 잃으면 차를 되사주겠다는 ‘현대 어슈어런스’ 캠페인을 가동해 실직 공포를 겪던 미국인들 마음을 위로해줬다. 때마침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던 YF쏘나타가 완전변경 모델로 나왔다. 경쟁력 있는 신차가 시대를 만나니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자동차산업에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지엠, 다임러, 베엠베 등 주요 자동차 회사는 2020년 세워둔 매출 목표를 대부분 하향 조정했다. 혼다는 아예 전망 발표를 거부했다. 2019 회계연도에 7조원 넘는 손실을 기록한 닛산은 2020년에도 1조원 이상 순손실을 예고했다. 2만 명 넘는 인력 구조조정, 판매량 전망치 100만 대 하향 조정, 공장 4곳 폐쇄 등도 발표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회사부터 떨어져나간다.
한국 자동차회사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케이(K)방역 덕분에 내수시장은 탄탄하다. 5월 국내 판매는 전년보다 4.5% 늘었다. 전세계 자동차공장이 가동을 멈췄을 때도 국내 공장은 쉼 없이 돌아갔다. 세계 소비자들이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할 때도 한국 소비자는 불편하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살 수는 있었다. 어렵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든든한 내수시장이 말라가는 유동성을 방어해줬다.
경쟁력 있는 신차 라인업을 만든 것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스포츠실용차(SUV)가 약점이었던 현대차의 제품 라인업은 최근 몇 년 동안 대폭 보강됐다. 2017년 이후 3년 만에 베뉴-코나-투싼-싼타페-팰리세이드로 이어지는 SUV 라인업을 완성했다. 브랜드 베스트셀링 모델인 아반떼와 쏘나타는 7년 만에 완전변경 모델을 출시하고 미국 시장 출격을 기다린다.
거기에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세단에 이어 SUV GV80을 출시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채비에 나섰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신차 라인업을 토대로 판매를 크게 늘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쟁력 있는 신차 라인업이 코로나19라는 위기로 판매 증가를 이끌지는 못했지만, 경쟁자를 제치고 점유율을 높이는 동력은 될 수 있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충격 최소화와 탄력적 회복, 유동성 안정화, 기술 확보, 시장 적시 대응을 통한 점유율 확대가 장기 생존 요인이자 업체 간 양극화 요인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혁신가 vs 전통 강자
생존을 고민하면서도 갈 길은 가야 한다. 자동차회사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당장의 유동성을 걱정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천문학적 연구개발 투자도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해 미래를 준비하는 업체와 그렇게 할 여력이 안 되는 업체의 간극을 더 넓히고 있다.
그저 혁신가의 몽상으로 보였던 테슬라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밀린 주문을 소화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은 구글과 지엠이 큰소리치던 자율주행 수준을 뛰어넘어 이미 사람들 곁에서 활동한다. 자동차회사와 배터리회사가 전기차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밀당’을 하는 동안, 테슬라는 직접 테라팩토리를 만들어 자동차 분야뿐 아니라 에너지 분야에 쓸 배터리를 만들겠다며 치고 나갔다. 5세대(5G) 통신을 어디에 쓸지 고민할 때, 테슬라는 로켓을 쏘고 스타링크를 만들어 전세계 공용 통신망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2019년 자동차 36만 대를 판매한 테슬라 주가가 1천달러(약 120만원)를 돌파했다. 코로나19로 미국 증시가 폭락해 300달러대까지 추락한 지 고작 석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심지어 지금껏 자동차를 한 대도 생산해보지 않은 미국의 수소트럭 회사 니콜라의 주가는 하루에 100%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연간 700만~800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폴크스바겐, 도요타, 지엠, 현대차의 주가 회복은 더디다. 하지만 전통 강자들도 무거운 걸음 속에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저들은 2020년 폴크스바겐의 MEB, 현대차의 e-GMP, 도요타의 e-TNGA 등 전용 플랫폼에 기반한 전기차를 출시해 체면 회복에 나설 예정이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로 여러 경쟁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살아남은 자들이 그때를 기억하며 기회였다고 말한다. 누가 쓰러질지, 누가 살아남을지, 누가 게임체인저가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시기지만 한국 자동차산업이 다시 도전해야 할 순간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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