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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투성이 ‘정부’ 운영체제(OS)
[김국현의 IT 인문학]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정부 간행 기관지들은 정부의 눈으로 세계를 볼 기회를 준다는 면에서 유용하다. 그중 흥미로운 부분은 ‘입법 동향’이다. 어떤 법령이 공포되고, 그 입법 취지와 추진 배경을 살펴보는 일은 마치 윈도나 리눅스 등 컴퓨터 운영체제(OS)의 버그 패치 항목을 읽을 때의 기분과 흡사하다.
다양한 소관 부처에서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입법을 추진하려 하지만, 컴퓨터 OS에서 볼 수 있는 정확한 사태 파악으로 인한 신속한 대응은 거의 없었다. 커뮤니티 연대에 의한 사회적 공조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가 제도 설계자로서 일개 글로벌 기업이나 오픈소스 커뮤니티보다 미숙했던 것인가?
 
사회를 운영하는 OS로서 정부
인간이 만든 범용 시스템은 그것이 무엇이든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효율적으로 진보하는 컴퓨터 OS에 비해 사회를 운영하는 체제인 정부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된다. 프로그램도 법률도 모두 결국은 ‘코드’다. OS의 코드를 짜는 이들이 인간 역사의 제도 설계 과정에서 어떤 혜안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제도적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소프트웨어도 인간도 모두 욕망의 목적을 지닌 개체고, 체제란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면 두 세계의 OS에서 동조화가 일어나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컴퓨터 OS에도 마치 작은 정부와 같은 ‘마이크로 커널’(Micro Kernel·커널은 OS의 기본적 기능을 제공하는 핵심 부분)이 있고, 큰 정부에 해당하는 ‘모놀리틱(Monolithic) 커널’이 있다. 기판에 놓인 반도체라는 국지적 자원과 이를 이용하는 소프트웨어 간의 관계를 운영하는 체제로서 OS란, 영토라는 국지적 자원과 이를 이용하는 국민 간의 관계를 운영하는 체제로서 정부를 어느새 은유하고 있다.
한편, ‘프로토콜’이란 통신 규약이기에 앞서 ‘외교 의례’를 뜻하는 말이었다. 느슨하지만 공멸하지 않는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OS 간에 외교 의례를 약속하고 나누는 것이 바로 인터넷 프로토콜과 웹표준의 역사였다. 이런 유사성은 단지 은유적 수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컴퓨터 OS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한정된 하드웨어 자원을 합리적으로 소프트웨어에 할당할 것
2) 통신 및 파일 관리 등 기본적인 공통 하부 기능을 추상화해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로 제공할 것
3) 사용자 인증 및 침입 방지 등 보안
여기서 1)은 분배 및 규제 등 경쟁 유지와 보호, 2)는 외교통상을 포함한 사회간접자본, 3)은 안보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이 국가나 정부에 기대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지금껏 OS가 응용프로그램들에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보다 소중한 인간과 사회라는 자원을 관리하면서도 왜 늘 정부라는 OS는 주먹구구일 수밖에 없을까? 모든 컴퓨터 OS는 자신이 어떤 용도인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PC용인지, 스마트폰용인지, 태블릿에도 쓸 수 있는지. 그러나 정부는 자신이 어떤 용도를 위해 체제를 가동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물론 헌법이야 있지만, 정부 자신의 커널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하는지, 어떤 API를 열고 어떤 것은 허락하지 않는지, 또 어떤 경우에 보안을 강제하고 허락하는지 설명이 늘 부족하다.
 
정부 OS의 수많은 허점
국가는 정부가 처한 시대적·지정학적 상황, 그리고 국민의 보편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마이크로 커널을 채택해 유연성을 높이고 대외 통신 관련 API를 특히 강화했으며, 대외적 보안은 충분히 강화하는 대신 모듈 간 보안은 간소화했다”는 식으로 정책을 설명할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 결과 그때그때 당시 담당 국회의원과 관료의 취향에 따라 버그 패치와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혹은 아무런 조처도 취해지지 않은 채 버그는 스펙(버그가 수정되지 못한 채 아예 해당 프로그램의 특성처럼 굳어져버리는 것)이 돼간다. OS의 근간에 해당하는 자원관리도 부자 감세에서 극단적 포퓰리즘까지 즉흥적으로 이뤄진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OS는 내일 바꿀 수 있지만 정부는 내일 바꿀 수 없다. 이처럼 OS로서 정부란 실로 버그투성이다. 처세술이란 것, 한 겹 벗겨보면 이 버그를 잘 활용하라는 것이기도 하다. 세금·복지·정책·연금 등 곳곳에 산재한 시스템의 허점을 이해할수록 인생은 편해진다.
이처럼 인터페이스의 투명성도 자원관리의 효율성도 모두 버그투성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부분들의 백도어를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은 달콤한 권력을 얻었다. 해킹을 하면 PC에서는 악성코드, 혹은 트로이목마이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처세의 달인이 되었다. ‘정권 교체’라는 기회를 통해 재설계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역시 OS의 용도에 대한 설명이 선거 전후에 바뀌는 일이 허다하니 이마저 쉽지 않다.
   
2009년 4월 민생민주국민회 등 사회단체들이 부자감세 철회 등을 요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어쩌면 성공적인 컴퓨터 OS들의 전략에서 배워야 할 정부 운영 전략이 있을지 모른다. 성공적 컴퓨터 OS의 공통점으로 이런 것들이 있었다.

1)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 사용자를 참여시켜 베타테스트하기
2) 용도별로 버전 다중화하기
먼저 베타테스트를 보자. 현재의 정치 지평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비전 제시’와 ‘베타테스트’일 것이다. 다음에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는 극비여서 비전 제시는 할 수 없더라도 베타테스트가 없는 OS는 없다. 새로운 정책 방향이 어떻다는 것을 증명할 사고 실험조차 없이 밀실에서 나온 정책을 강행하려고 하니 사회적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다음은 ‘다중 버전’이다. ‘윈도7’와 ‘윈도폰7’은 용도별로 다른 OS고, ‘iOS’와 ‘맥OS’도 같은 회사의 다른 버전이다. 리눅스도 용도마다 서로 다르다. 즉, 다뤄야 할 자원의 상황에 특화된 버전을 여러 벌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다중 버전이란, 운영 대상의 성격에 따라 다른 정책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성장산업 전략, 세대 간 격차에 대한 정부 역할 등 같은 철학 아래에서 다른 운영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이는 OS마다 버전이 있는 이유다.
각각의 상황에 최적화된 여러 버전을 구비하고, 이 각각을 베타테스트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 제공하는 일. 컴퓨터 OS는 이렇게 완성된다. 그 결과 좋은 OS에는 좋은 응용프로그램이 생기고, 그렇게 이 두 쌍은 시대를 이끌고 문화를 만들어간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OS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하드웨어라는 한정된 자원에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공존하도록 돕는 일이다. 소프트웨어란 결국 욕망인 것이다.
 
정부를 베타테스트하고 다중 버전화하자
이렇게 컴퓨터 OS에 비춰보면 정부의 기능이란 실로 단순하다. ‘분배’라는 리소스 할당, ‘사회간접자본’이라는 API, ‘안보’라는 보안. 이 세 가지 기본 역할을 충실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 위에서 돌아가는 다양한 욕망이 공존하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공한 OS에서는 이 욕망의 공존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만약 부족하다고 느끼면 철저하게 이 부분을 강화한다. 시장 기능이 부족하면 앱스토어나 마켓플레이스를 덧붙여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것이다. 그렇다! 정부란 OS였다. 정치가에게 사회학·인문학적 소양은 없었더라도 정보기술(IT) 교양만 있었다면 버그 교정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goodhyu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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