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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 성공의 조건
[LIFE] 전직의 꿈- ② 실행조건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콜랴 루트치오 economyinsight@hani.co.kr

 직업을 바꾸는 데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원래 영어 선생님이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독일 지사장으로 오래 일한 알렉산더 디벨리우스는 외과의사였다. 직업을 바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는 목수가 된 나사렛 예수다.

콜랴 루트치오 Kolja Rudzio <슈피겔> 기자

   
▲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은 본디 영어 선생이었다. REUTERS

라이프니츠하노버대학 1209건물 002강의실 금요일 오후 수업을 예로 들어보자. 강의실에는 남성 3명과 여성 4명이 둥글게 앉아 있다. 탁자에는 이름을 쓴 종이가 세워져 있고, 장미도 중앙에 놓여 있다. 그 옆에는 두꺼운 비즈니스 책이 쌓여 있다. 트레이너인 마르크 부덴직이 종이를 나눠줬다. 오늘은 ‘인생 직업 계획’이라는 집중 세미나 여섯째 날이다. 12일 동안 진행되는 이 대학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대기업에서 홍보를 맡고 있는 프란치스카, 화학회사에서 일하는 얀, 직원 수를 줄이려는 회사에 다니는 스테파니가 탁자에 앉아 있다. 이름은 가명이다. 아무도 그들이 이 수업을 듣는다는 걸 알아서는 안 된다. 이날 오전에는 프란치스카, 얀, 스테파니, 다른 수업 참여자들이 그룹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이들은 특정 직업이 있는 사람과 얘기하고 그 직업이 실제 어떤지를 물으며 직업을 탐구한다.
이날은 인터뷰 연습을 했다. 수업 참가자들은 자신이 관심 있지만, 일하고 싶지 않은 분야를 찾았다. 보트 제조, 정원 관리, 오래된 자동차 복원 등이 있었다. 인터넷과 전화번호부에서 기업을 찾았고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나섰다. 연습 과정이어서 미리 업체와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 문을 두드려 간단한 것을 물었다.

정확한 직업정보 파악이 중요
프랑크 미하엘 셸레가 “약속 없이 갔는데도 선뜻 문을 열어줘 놀랐다”고 수업 시간에 보고했다. ‘어떻게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기업들은 기꺼이 문을 열어줬다. 부덴직은 플립차트(한 장씩 넘기며 보여주는 차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21번 대화를 시도했고 그중 19번 성공했다. 여기서 성공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직업 정보를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정중하게 물으면 대부분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설문지를 들고 가서 개인적으로 하는 직업 인터뷰는 ‘인생 직업 계획’ 수업의 고정 요소다. 학생은 인터뷰에 성공하면 그 결과를 짧은 이야기로 쓰고 목표 순위를 정리하고 결정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목표는 개개인 성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다. 이 방식은 1970년 미국 목사 리처드 넬슨 볼레스가 개발했다. 그의 책 <꿈의 직업을 향해 시작하기>는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다.
원래 콘셉트에는 참여자들이 꽃모양 다이어그램에 능력이나 관심사를 적어넣게 돼 있다. 볼레스는 덧붙여 설명했다. “로키산맥 언덕의 특정 높이에는 특출나게 아름다운 꽃이 핀다. 많은 등산객이 이 꽃에 홀려, 꽃을 파내 자기 집 정원에 심는다. 하지만 꽃은 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꽃은 특정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덴직은 하노버에 있는 ‘인생 직업 계획’ 집중 코스 트레이너다. 그는 꽃모양 다이어그램이 이단 종교 표시처럼 보일까 걱정했다. 그래서 부덴직은 수업 참여자에게 꽃모양 그림 말고 원그래프를 사용하도록 했다. “원그래프가 독일에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우리는 엔지니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자랐으니까.”
‘인생 직업 계획’ 수업은 효과가 있을까. 저녁에는 이전 수업 참가자들이 세미나룸을 방문했다. 부덴직은 정기적으로 이전 학생을 모임에 초대한다. 이번 금요일에는 여성 19명과 남성 3명이 초대에 응했다. 그들은 ‘인생 직업 계획’ 수업이 좋았다고 했다. 몇몇은 직업을 바꾸지 않았고 몇몇은 새 직업에서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른 경험을 한 사람도 참여했다. 파트리샤는 이 수업을 들을 당시 직업도, 방향도 없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정보기술(IT) 쪽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다.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 IT 분야에서 일할 것이다.” 목수였던 안나는 건축을 공부했고 이제 베를린에 있는 독일 무역연합의 연방 이사회에서 수공업 정책 책임자로 일한다. 비서로 일하면서 사회복지 공부를 한 사람도 현재 첫 면접을 치렀다. 몇몇 참가자에게 새로운 시작을 향한 꿈은 현실이 됐다.
수업, 책, 코칭은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 망설이는 사람을 도와준다. 자신을 잘 파악하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된다. 프랑크 미하엘 셸레처럼 말이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셸레는 추운 월요일 아침, 검은 피아조 오토바이를 타고 베를린 거리를 달렸다. 로커처럼 보이는 검은 금속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앞에는 ‘바티카노’라고 쓴 은색 표지를 달았다. 셸레는 하일리히-크로이츠 교회에 멈추었다. ‘십자가 밑의 마리아’라는 가톨릭 교구에서 그는 신부님으로 일한다. 셸레 이야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20대 중반까지 그는 세례도 받지 않았다. 대학 입학 자격도 없었다. 그런데도 셸레는 49살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전에는 다른 일을 했다.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실행해야
성당 옆 교구 사무실에서 셸레는 담배를 피우며 인생을 돌아보았다. 최근엔 오래된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문레이커>를 다시 보았다. “영화에서 본드는 콩코드기를 타고 여행한다. ‘와, 나도 그걸 탔잖아’라고 생각했다.” 셸레는 고급 초고속 제트기를 탄 정도가 아니라 그걸 타고 몇 번이나 세계일주를 했다. 그는 이전에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독일의 여행부서를 총괄했다. 셸레는 이 신용카드 회사와 협력하는 여행사들을 맡았고, 콩코드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상품을 만들었다. “최상위 고객을 위한 여행상품이었기에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했다. 나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괜찮은 독일식 빵을 먹을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미리 가서 호텔을 점검했다.”
셸레가 여행업에 발을 내디딘 것은 우연이었다. 어머니의 지인이 그에게 여행사 수습생 자리가 비어 있다고 귀띔했다. 셸레는 그 자리를 잡았고 여행상품을 파는 사람이 됐다. 그는 이 직업을 좋아했지만 뒷날 바꾸었다.
셸레가 직업을 바꾼 이야기는 그가 어린 소년의 대부가 돼야 했던 데서 시작한다. 당시 23살인 셸레는 뒤늦게 세례를 받고 싶었지만, 개신교에서 받아야 하는지 가톨릭에서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여러 예배와 미사를 가보고 여행상품을 만들 듯이 장단점을 적은 목록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가톨릭에 가장 많은 점수를 줬다. 셸레가 예수회 교리 수업을 듣는 데 6개월이 걸렸고, 스스로 신부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셸레는 종교생활을 계속했다. 갈 수 있는 곳에선 항상 미사에 참여했다. “가톨릭의 좋은 점은 세계 어디서나 성당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퇴근 뒤 부제(사제를 도와 강론, 성체 분배 등을 하는 것)가 되는 4년짜리 교육을 받았다. 권한이 제한적인 부제직은 부업으로도 할 수 있었다. 이후 셸레는 자신처럼 대학 입학 자격이 없지만 직업교육을 마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독일 본에 있는 사제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마쳤다.
셸레는 가족이 없었고 사업가로 활동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루프트한자 시티센터라는 큰 여행사를 운영했다. 신을 위해 여행업을 포기하는 결정은, 수도원 한 곳을 방문하고 야고보의 길 순례를 하면서 무르익었다. 순례길에서 걷기보다 차로 다닌 때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셸레는 2009년부터 빌머스도르프에서 신부님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직업을 바꾼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반대다. “장례 미사를 준비할 때, 유족에게서 고인이 인생 내내 불행했고 항상 다른 일을 하기 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슬프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으니까.”
크리스티안 아비, 리에자 베르니케, 프랑크 미하엘 셸레는 그들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들에게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디즈브록이나 부덴직 같은 컨설턴트들은 근본적인 새 출발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한다. 그들의 고객 대부분은 작은 변화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같은 직업에서 다른 임무를 맡거나 그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독립한다. 이 역시 종종 큰 영향을 끼친다. 일하는 즐거움이 새로 생긴다. 이들의 공통점은 꿈만 꾸는 게 아니라 바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직업을 바꾸는 데 성공한 이들>
알렉산더 디벨리우스
사람들은 의사가 높은 수입과 평판을 얻고 생명을 구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의사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독일 지사장으로 오래 일한 알렉산더 디벨리우스처럼 말이다. 그는 외과의사로 프라이부르크대학병원에서 일했다. 그러다 경영학 쪽으로 방향을 돌려, 매킨지와 골드만삭스에서 완전히 다른 수술을 맡았다.
마윈
중국 인터넷 대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이자 전세계에서 돈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인 마윈은 원래 영어 선생이었다.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오랫동안 항저우에서 공짜로 여행객을 안내했고, 영어 선생이 됐다. 뒷날 그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인터넷 공화국을 세웠다.
뤼디거 그루베
과거 독일 철도 최고경영자였던 그도 원래 선생이었다. 처음에 그는 메서슈미트-뵐코브-브롬(MBB) 자회사에서 비행기 금형 제작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경제교육학을 공부했다. 함부르크 직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박사학위를 딴 뒤 2009년 철도업에 발을 들였다.
스테판 라브
정육업 수습생, 법학과 중퇴, 광고음악 작곡가(블렌다 메드 치약 광고), 음악방송 비바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그는 진행자와 엔터테이너로 일한다.
홀거 슈타이슬라브스키
많은 축구 선수가 원래는 수공업에 종사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은 제빵사였고, 로타 마테우스는 인테리어 업자였으며,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지붕 수리자였다. 홀거 슈타이슬라브스키도 마찬가지다. 마사지사였고, 축구선수였다가 트레이너를 했다. 지금은 함부르크 레베 슈퍼마켓 체인 운영자다.
나사렛 예수
예수는 직업을 바꾼 사람 중 가장 유명하다. 주의 사랑을 전하는 자이기 전에, 목수로 일했다.(마가복음6, 1-6)

Ⓒ Die Zeit 2020년 7호
Sehnsucht nach Plan B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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