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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기술로 ‘경험’ 극대화
[CULTURE & BIZ] 코로나 시대 영화관의 살길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2020년 6월4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입구에 체온 측정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빠진 산업이 많다. 여행·관광·레저·서비스업 등이 주로 언급되는데 영화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가득 모인다는 특성 때문에 ‘거리 두기를 할 장소’로 분류된 탓이다. 새 영화들이 개봉을 늦추며 역병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렸다. 6월이 되자 용기 내어 개봉하는 영화가 생겨나 반갑다. 하지만 영화관에 가도 될까, 나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 영화 관계자 속은 타들어가기만 할 터이다.
숫자는 이런 상황을 더 쉽게 보여준다. 코로나19가 한국에 퍼지기 시작한 2월부터 5월까지 넉 달간 영화관 관람객은 1170만 명이다. 2019년 같은 기간 6840만 명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5월 관람객은 153만 명으로, 2019년(1800만 명)의 10분의 1 이하다.
영화를 보지 않는 건 아니다. 코로나19를 피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온라인으로 더 많은 영화를 보았다. 덕분에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큰 혜택을 입었다. 2020년 4월 국내 넷플릭스 카드 결제는 역대 최고치인 439억원으로 추정됐다. 전년(185억원)보다 137% 이상 늘었고, 3월(362억원)보다 21%나 많았다. 유료 사용자도 328만 명으로 증가했다. 2018년 4월 28만 명에서 2년 새 300만 명이나 늘었다.
OTT 서비스에 따로 가입하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TV(IPTV)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2월 3대 IPTV(SK·KT·LG)와 디지털 케이블사를 통한 주문형비디오(VOD) 영화 이용은 670만 건 정도다. 2020년 2~5월 월평균 영화관 관람객 수가 약 290만 명이었으므로, 코로나19 확산 기간에 극장 영화의 2배 이상을 VOD로 본 셈이다. 중복 가입자 등으로 단순 합산은 어렵지만 OTT 서비스 이용까지 합하면 3배를 넘는다.

위기 극복의 역사
코로나19 확산은 특별한 상황이다. 2019년 우리나라 영화관 월평균 관람객은 1890만 명 정도다. 가장 비수기인 4월에 1330만 명, 가장 성수기인 8월에 2480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2019년을 통틀어 2억2670만 명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오프라인 영화관이 온라인보다 2배 이상 동원력을 가진 셈이다. 영화표 가격은 더 비싸, 시장 규모 차이는 더 크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영화표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70~80% 수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추세가 역전되자 영화관의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었다. 뭐든 처음 시도가 어렵지, 한번 경험하면 익숙한 방식을 쉽게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과거에도 여러 번 존재 위기를 겪었다. 1950년대 텔레비전(TV), 1970년대 중반 비디오 등장이 대표적이다. 두 시기 모두 영화관은 기술이란 무기로 ‘영화관 경험’을 극대화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TV가 등장한 초반에는 영화관 타격이 아주 컸다. 1950년대 연간 30회가 넘던 미국인의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4~5회 아래로 떨어지고 영화 제작도 줄었다. 영화 제작사가 많은 제작비를 들여 TV용보다 고품질 영화를 만들어 대응하면서 영화관 수는 다시 회복했다. 비디오가 등장했을 때도 영화관은 디지털 기술로 위기를 극복했다.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영화 품질을 높이면서 상영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였다. 비용 절감으로 영화관 요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해, 사람들을 계속 영화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런 대응이 가능한 것은 영화관이 지닌 몇 가지 독보적 지위 덕분이다. 가장 큰 힘은 개봉 영화 ‘홀드백’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새 영화를 내놓으면 먼저 극장에서 개봉한 뒤 2~3주 이상 유예기간(홀드백·Hold Back)을 거쳐 VOD 등으로 공개한다.
홀드백은 오랜 시간 영화산업을 함께 이끌어온 영화사와 영화관이 지켜온 신사협정이다. 만약 영화사가 VOD 등에 영화를 먼저, 혹은 동시에 제공하면 영화관이 상영을 거부하곤 한다. 영화사로선 새 영화를 극장에 걸지 못한 채 VOD만 팔아서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없어 홀드백 협정을 철저히 지켜왔다.

   
▲ 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 개봉을 못하고 2020년 4월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독보적 지위 흔들
영화관은 홀드백 제도로 새 영화를 선점해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수 없었던 것도 이 제도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자사 플랫폼과 영화관의 동시 개봉을 추진하자 영화관들은 상영을 거부했다. 개봉 수익을 넷플릭스와 나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홀드백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관이 힘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채널과 서비스가 등장해 홀드백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미국 개봉 영화의 홀드백 기간은 1998년 평균 6개월 정도였는데 2017년에는 3개월 반 정도로 줄었다.
영화관의 두 번째 독보적인 장점은 사회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말에 영화나 보러 갈까”라고 할 때 특정 영화만 보는 것을 지칭하지 않는다. 연인·가족·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면서 식사도 하고, 팝콘도 먹고, 쇼핑도 한다. 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르다. 어쩌면 영화는 핑계일 뿐, 영화관에 가는 것을 하나의 의식 같은 사회활동으로 여긴다. 이런 경험은 오직 영화관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관람에 최상의 환경을 갖추는 것도 영화관의 독보적 지위를 보장해왔다. 대형 스크린, 더운 여름철 시원한 냉방, 강력한 음향 시스템, 안락한 의자 같은 물리적 환경에선 영화관이 단연 최고다. 3차원(3D), 4차원(4D) 영화가 늘면서 몰입감을 높여주는 여러 부가 기능도 영화관만이 지닌 장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스트리밍 서비스 확대 등으로 영화관의 독보적 지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 영화 <사냥의 시간>과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트롤> 등은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홀드백이 무너진 것이다. 물론 역병의 시대에 생긴 특별한 사건이었지만, 한 번 생겨난 균열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미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 업체들은 다양한 오리지널 영화를 선보이며 영화관에 맞서려 한다.
이런 변화에 대응할 회심의 카드가 영화관에 없을까. 최근 리처드 질 캐나다 퀸스대학 경영대 교수 등 다국적 연구진이 내놓은 연구 결과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화관이 과거 기술 채용으로 위기를 극복했듯이, 새 기술로 ‘영화 보러 가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 영화관 생존의 길이라고 연구진은 주장한다. OTT 업체들이 빅데이터 기술로 ‘개인화’에 성공한 것처럼, 영화관도 빅데이터 기술로 영화관만의 특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의 질 높이기
언뜻 영화관에 빅데이터를 어떻게 접목할까라는 의문도 든다. 연구진은 영화관 예약을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는 것에 착안한다. 예전처럼 영화관에 가서 즉흥적으로 표를 사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대부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사전 구매를 한다. 영화표를 사는 사람의 취향, 구매 빈도, 형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연구진은 2014~2018년 유럽의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 3만9천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들은 데이터를 활용해 영화관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영화표 구매자는 한번에 평균 2.24장을 샀다. 3분의 2 정도는 팝콘이나 기념품을 1년에 평균 2.6번 샀고, 구매품 절반 이상은 팝콘이었다. 영화표 판매의 40% 이상은 주말 오후 5~9시에 몰렸고, 화요일에 방문이 가장 적었다.
이런 데이터를 층층이 쌓아 분석하면 방문자에게 더 풍부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데이트족에게 더 맛깔스러운 간식을 팔거나 더 한적한 때 영화관을 찾도록 유도할 수 있다. 가끔 고급 브이아이피(VIP) 스크린을 권하고, 오페라나 스포츠 경기를 영화관에서 보도록 제안할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자인 토머스 길로비치 미국 코넬대학 교수는 사람들이 물질재보다 경험재를 살 때 더 행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여행·콘서트·영화 등의 표를 사면 구매 전부터 즐거움을 기대하고, 구매 뒤에도 더 많은 추억을 갖게 된다. 내 차를 남과 비교하기는 쉽지만, 내가 다녀온 여행을 다른 사람의 여행과 비교하지는 않는다. 경험은 자신의 것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다.
영화관도 경험재 측면이 더 부각될 때 생명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는 1년에 평균 4.5번, 세계에서 영화관에 가장 많이 가는 국민이었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영화관에 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엔 정말 영화관에 가고 싶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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