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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지 않으려면
[박중언의 노후경재학]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 2019년 11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 국제돌봄엑스포’에서 행사 관계자가 치매선별검사 시연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다른 사람의 돌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치매는 또 하나의 악몽이다. 치매 공포는 노이로제나 다름없다. ‘노인이 곧 치매’로 등치될 만큼 그 공포가 과대 포장돼 있는 반면, 그런 우려에 비례할 정도의 예방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는 건 치매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지만, 개인 스스로 노력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다. 중견기업 P부장도 건망증이 만만치 않다.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거나 뭘 하려 했는지 금방 까먹는 일이 흔하다. 외국어 단어 외우기는 정말 힘들어졌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에 다가가거나 여러 사안을 종합해서 보고 통찰을 얻어내는 능력은 50대 들어 한결 나아졌다고 느낀다. 지적 능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체감한다.

나이의 역설
정상적으로 나이 드는 과정에선 뇌세포 손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게 여러 연구의 결론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실험에선, 쥐가 나이를 먹어도 대뇌껍질 신경세포 수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자 그대로의 기억은 청년기가 지나면 쇠퇴하기 시작하지만 ‘요점 기억’은 그대로 유지되고 심지어 노년 후반에 이를 때까지 더 좋아진다”는 미국 코넬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나이와 두뇌의 관계에 관한 책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를 보면 치매 불안을 줄이고 긍정 마인드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의학전문기자였던 바버라 스트로치가 정리한 이 책에 따르면, 사고의 폭, 사안을 보는 관점, 문제 해결 능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나아진다고 한다.
알다시피 우리가 쉽게 느끼는 기억력 감퇴는 입력되는 정보가 너무 많은 탓이 크다. 새로 알고 배우는 많은 것이 두뇌 창고 안에 마구 쌓인다. 기억을 못하는 건 저장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꺼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장서가 꽉 들어찬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이가 사고력을 증진한다는 주장에는 생물학적 근거도 있다. 사람은 평소 뇌 일부밖에 쓰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까다로운 문제를 마주치면 뇌 양쪽을 모두 쓰는 ‘양측편재화’(Bilateralization) 현상을 보이는 것이 관찰됐다. 무거운 물건을 들기 위해 두 손을 모두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말해, 뇌세포의 크기·수·연결망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이라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변화가 생긴다. 사람 뇌세포 역시 여느 세포와 마찬가지로 노화돼 기능이 쇠퇴하지만, 보완 또는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내 적응해나간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치매 환자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다수가 발병 이전에 사망했다.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를 보면, 요양보험 수급자가 앓는 주요 질병으로 치매(57.2%)가 고혈압(60.3%) 다음으로 많았다. 중앙치매센터는 2018년을 기준으로 65살 이상의 10%인 75만 명을 환자로 추정했다. 2050년에는 3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기억을 완전히 잃는 중증환자 비율은 15% 정도다. 65살 이상 100명에 1.5명인 셈이다. 절대적으로 많은 수치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중증은 85살 이상 초고령기에 많이 나타난다. 중증 치매로 고통받는 기간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뇌 근육’ 키우기
문제는 예방과 치료다. 수술 같은 외과적 처치는 불가능하다. 아직은 개발된 치료약도 없다. 진행을 늦추는 약물이 있을 뿐이다. 되도록 일찍 진단받고 대처해나간다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방이 안 된다면 발병 시기와 진행 속도를 되도록 늦추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제대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건강한 일상이다.
음식은 몸에 좋은 것이 뇌에도 좋다. 스트레스는 줄이는 게 당연히 바람직하다.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우선 ‘뇌 체조’라는 두뇌 운동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에서 뇌의 인지기능을 부지런히 쓰는 것이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니, 인지기능 퇴화를 막는 게 핵심이다.
P부장은 여러 방법 가운데 외국어 학습을 최고로 친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P부장에게 외국어 학습은 취미, 건강, 실용 등 다목적으로 쓰인다. 외국어를 배우고 익히는 데는 암기와 이해의 합작이 필요하다. P부장은 영어·일본어·중국어 외에 여러 외국어 공부를 시도했다. 물론 어휘는 기억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각 외국어의 구조나 구성 원리 등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외우지 못하고 까먹는 것에 부담이 줄었다. 더 많이 외우면 좋겠지만, 외국어 숙달이 궁극적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외웠다가 잊어먹는 과정 자체가 좋은 인지기능 강화 훈련이다. 학습은 단순 계산이나 암기, 게임보다 더 건강한 자극을 준다. 이처럼 목표가 아닌 과정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은 나이가 주는 지혜다. 기억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동안 치매에 대한 우려를 잊고 지낼 수 있다. 공부든 대화든 인지기능이 필요한 활동이 둔화될 때 치매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뇌를 건강하게 하는 다른 방법은 운동이다. 치매 예방을 위해 ‘뇌 근육’을 키운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운동, 특히 유산소운동이 뇌 기능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미국 임상뇌심리학회장인 캐런 포스털은 <뉴욕매거진> 인터뷰에서 “새로운 뇌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진 유일한 방법이 유산소운동”이라며, 30~40분 운동을 하면 학습과 기억에 관련된 영역인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새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걷거나 뛰면 몸과 함께 뇌도 건강해지고, 뇌의 노화 속도가 더뎌진다. P부장이 평소 잘 풀리지 않던 문제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았던 것은 대부분 운동하거나 잠자는 때였다. 뇌세포가 가장 활성화됐거나 충분히 재충전했을 시점이다. 이와 함께 똑같은 일상의 반복보다는 적절한 긴장이 좋다. 조금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 머리를 더 쓰도록 한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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