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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칫돈 들고 아파트 대신 주식으로
[국내특집] ‘동학개미운동’의 명암
[122호] 2020년 06월 01일 (월) 박종오 pjo22@edaily.co.kr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2020년 5월14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15.46포인트(0.80%) 내린 1924.96에 거래를 마친 서울 명동 KEB 하나은행 본점 거래룸.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의 지속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코로나19 타격을 크게 줄였다. 연합뉴스

개미(개인 투자자)가 떼 지어 돌아왔다. 국내 주식시장 얘기다. 그냥 개미가 아니다. 뭉칫돈 수십조원을 들고 외국인과 기관이 던진 우량주를 쓸어담는 이른바 ‘동학개미’다. “내가 알던 그 개미가 맞나?” 서울 여의도 증권가 직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동학개미 매수세와 자금력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2020년 들어 5월13일까지 코스피(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주식 32조3576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019년 한 해 동안 5조4937억원을 팔아치운 것과 딴판이다. 개인은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1월20일부터 이날까지 77거래일 가운데 63거래일 동안 주식을 순매수했다.

전례 없는 순매수
외국인과 기관은 달랐다. 외국인은 같은 기간 23조9285억원, 기관은 10조2452억원어치 주식을 각각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위험 자산인 주식을 처분하고 안전 자산인 채권으로 갈아탔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액은 4월 말 기준 140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학개미는 이런 ‘팔자’ 공세에 국내 증시를 떠받친 주인공이다. 코스피 지수는 3월 연중 바닥(1457.64)을 찍고 한 달여 만에 1900선을 회복했다. 각국 정부의 돈풀기 정책과 개미의 주식 열풍 덕분이다.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개미가 몰리며 증권사도 이례적으로 붐비고 있다. 국내 주식거래 계좌는 4월 말 기준 3127만 개로 연초(2936만 개)보다 200만 개 가까이 늘었다. 국내 경제활동인구(2773만 명) 1명당 1.1개꼴이다. 국내 증시 기록도 새로 썼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4월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20조7804억원을 찍었다. 사상 최대다. 전년 같은 달(9조6284억원)과 비교하면 2배 넘게 급증했다. 동학개미 투자 실탄은 아직 두둑하다. 주식거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보관 중인 예탁금은 40조원이 넘는다. 기존 투자금을 합치면 동학개미 군단의 주식투자 재원이 70조원을 넘는 셈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렸지만 금리가 워낙 낮고 부동산 규제도 세서 돈이 갈 데가 없는 상황”이라며 “주가가 많이 빠지면서 이 기회에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하려는 자산가가 증시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가 보유한 현금·수시 입출금식 예금과 만기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유동자금은 3월 기준 1524조원에 이른다. 눈에 띄는 것은 2019년 말부터 달마다 10조원 안팎으로 불어나던 가계 보유자금이 3월엔 1조원 느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3월 한 달 새 현금성 예금 30조원을 쌓아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기준금리를 3월 1.25%에서 0.75%로 0.5%포인트 낮추며 시장금리가 내려가자 은행 예·적금에서 증시로 빠져나간 자금이 많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시중은행 만기 1년짜리 예·적금 금리는 역대 최저인 0~1%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부동산과 펀드에 돈을 넣기도 마땅치 않다. 부동산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데다 정부 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등 투자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큰손’ 재테크 상품으로 주목받던 사모펀드는 2019년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과 라임자산운용 원금 손실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투자자 불신이 커졌다.

달라진 투자 성향
동학개미는 자금력뿐 아니라 투자 대상도 이전 개미와는 아주 다르다. 2020년 들어 5월13일까지 개인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은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다. 순매수액이 9조3573억원에 이른다. 우선주(1조9323억원)를 포함한 전체 투자액은 11조원이 넘는다. 전체 동학개미 투자금 3분의 1가량이 우량주인 삼성전자 주식에 쏠린 셈이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개인투자자 순매수액이 큰 종목은 SK하이닉스(1조2461억원), 현대자동차(1조2361억원), SK이노베이션(6770억원) 차례다. 모두 국내 최상위 우량 대기업 주식이다.
예전엔 달랐다.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개미는 폭락장에서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당시 주로 매입한 것은 중·소형주와 변동성이 큰 테마주였다. 2008년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지금과 정반대다. 현대차, 포스코, SK하이닉스,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주식도 주로 처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동학개미가 우량주에 주로 투자하는 것은 부동산으로 치면 서울 강남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동학개미 등장은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에 휘둘리며 국내 증시에서 수동적 주체에 불과했던 개인투자자 위상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우량주 중심의 투자,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바꾸는 공부 열기, 모바일·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기관 못지않은 정보력 등은 동학개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인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4월 초 “우리 기업에 대한 애정과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으로 적극 참여해주신 투자자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현금인출기’라는 별명까지 붙은 한국 증시 체질을 바꾼 개인투자자의 힘을 금융 당국도 인정한 것이다. 부동산에만 쏠렸던 가계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면 기업 자금조달이 수월해지고 투자가 확대되는 경제 선순환도 가능하다.

   
▲ 2020년 5월6일 국제 유가가 20%대 폭등세를 보인 연합인포맥스 유가 전광판. 코로나19 사태로 유가가 널뛰기를 거듭하면서 유가 관련 파생상품의 투자 위험이 커졌다. 연합뉴스

‘묻지마 투자’ 우려도
단점도 있다. 동학개미가 받아들 투자 성적표는 아직 미지수다. 코로나19로 증시 불확실성이 여전해서다. 자칫 투자 손실이 확대되면 국내 증시를 향한 배신감만 커질 가능성이 있다. 1457.64로 연중 바닥을 찍고 반등한 코스피지수는 4월29일 1947.56까지 오르며 단기 고점을 기록했다. 지수 상승률은 33.6%다. 하지만 이 기간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인 삼성전자 주가는 16.4% 오르는 데 그쳤다. 반등장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이다. 같은 기간 2위 종목인 현대차는 42%, 3위 셀트리온헬스케어는 47.9% 각각 올랐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4월 말 쓴소리를 했다. “비트코인 문제를 전후로 한국에 상당한 투기성 세력이 존재한다. 그게 동학개미, 유가선물 상장지수 증권 투자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단기투자 중심의 동학개미 군단은 일부만 돈을 벌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동학개미라는 이름이 붙은 개인투자자 집단 안에 단기 차익을 노리는 ‘묻지마 투자’도 상당한 만큼 장밋빛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3월 말 6조원대였으나 한 달 만에 2조원 넘게 불어났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빚으로 주식에 투자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금융파생상품인 ‘원유레버리지 상장지수 증권’은 과거 암호화폐 열풍을 방불케 하는 투자 과열 논란을 불렀다. 이 상품은 투자 수익률이 국제 유가 등락률의 2배로 움직이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미가 몰려들었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급기야 4월에는 초유의 거래 정지 사태까지 빚었다. 금융 당국이 고위험 상품의 투자 문턱을 높이는 등 정부 차원의 투기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선 배경이다.
동학개미 투자열기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면 정부 차원의 투자자 보호 강화, 증시 육성 정책 등과 함께 기업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정보공개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성장 과실을 오너 개인이 아닌 주주와 나누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시행한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 금지 등 개인투자자 보호 정책은 예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던 만큼 도입 시점이 늦은 감이 있다”며 “시장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시장 조성자 제도 등 기존 투자자 보호 방안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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