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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시대, 세계화는?
[국내특집] 세계화
[122호] 2020년 06월 01일 (월) 박종현 ecohis@gntech.ac.kr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 교수

   
▲ 팬데믹으로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국제공항이 한산하다. 감염병은 국가 간 물자와 사람의 이동을 중단시켰다. REUTERS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가의 경제 장벽이 낮아지고 재화·서비스·돈·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부·초국적자본·엘리트는 세계화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세계화 흐름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커지면서 세계화에 불만인 사람이 늘어났다.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에 빠뜨린 코로나19 사태는 세계화와도 연관이 깊다. 코로나19와 세계화가 어떤 함수관계인지, 세계화 진로와 관련해 어떤 전망이 제시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세계화는 물자·돈·사람의 이동성을 높이고, 기업과 사람의 연결망을 넓히며, 상호의존성도 키운다. 번영의 기회도 늘어나지만, 개별 기업이나 특정 국가 차원에서 피해를 보거나 그 충격이 금융시장 전체로 파급돼 전세계로 전파될 위험도 크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이언 골딘 교수는 세계화가 사이버테러·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리스크(위험 요인)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계화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도 확대됐다.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내보내고 부품을 세계 곳곳에서 조달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도 늘어났다. 국지적으로 발생한 코로나19는 세계화를 바탕으로 심화된 상호의존성에 기반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중국의 생산 중단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지면서 전세계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가 일어났다.

코로나19 이후 나라마다 문 닫아걸어
각국 정부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감염이 악화하자, 세계를 향해 열었던 문을 닫아걸었다.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중단됐고 외출마저 금지됐다. 언젠가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인류가 새롭게 맞이할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2세기 말 천연두가 로마제국을 엄습하고 교역이 끊어지면서 약 1천 년 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렀던 반면, 14세기 중반 흑사병(페스트)이 생긴 이후에는 살아남은 농민의 높아진 교섭력과 생산성을 토대로 근대적인 경제성장 경로가 열렸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방향은 고대 로마제국의 장기 정체 경로와 중세 흑사병의 장기 성장 경로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코로나19 사태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진행 중인 세계화의 둔화를 재촉하리라는 전망이 많고, ‘글로벌 공급망’ 축소가 그 핵심으로 거론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기타 고피너스는 “팬데믹으로 세계화의 비용과 편익이 재평가되고 있으며, 비용절감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의 숨겨진 위험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효율과 비용절감’보다는 ‘회복력(Resilience)과 위험 절감’이 중시되고, 부품의 국내 조달 비중이 확대되며, 생산기지가 국내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 현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의 수전 헬퍼 교수는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춰 환경오염 등 비윤리적 경영도 서슴지 않던 ‘저진로 공급망’에서, 기업이 창출할 긍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고진로 공급망’으로 전환하길 기대한다.
세계화의 가장 큰 불만은 좋은 일자리를 없애버린다는 데 있다. 글로벌 공급망을 줄이고 공장을 국내로 되돌리더라도 똑똑해진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면 일자리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국제무역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일자리 소멸은 무역자유화 외에 노동 절약적 기술 진보, 서비스업 비중 확대, 노동의 교섭력 약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세계화 폐해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글로벌 공급망 축소에 더해, 서비스 부문 노동자에게 적정 수준의 급여, 건강보험, 연금, 단체교섭권 등을 줘야 한다.
불평등 문제를 전세계 학문 의제로 만든 토마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는 신선한 해법이 담겨 있다. 재화·서비스·돈·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되, 돈의 이동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책임성을 확보하고, 재산·상속·소득 관련 누진과세를 강화해 확보한 재원으로 ‘기본재산’을 모든 이에게 제공해 경제적 여력을 높여주며,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를 제도화해 자본 독주를 막자는 것이 뼈대다. 글로벌 공공재의 공급이나 탄소세 같은 의제는 글로벌 연방제 방식으로 관리하고, 일상 문제는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결정하자는 내용도 추가적으로 제안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에 대비하는 경제 계획으로 <글로벌 그린뉴딜>을 제안한 제레미 리프킨에게서도 확인된다. 그가 제안하는 세계화는 폐쇄적·집중형 인프라에 기반을 둔 채 위계적 대기업이 수직적으로 주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니라 개방적·분산형 인프라에 기반해 시민이 민주적·수평적으로 주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디지털 인프라로 세계인과 하나로 연결되어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며, 인프라를 지역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지역 중심, 사회적경제 방식의 세계화다.
이런 대안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그 토대인 디지털 인프라를 위한 대규모 사회투자와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세계화에 가장 비판적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린뉴딜’이 1930년대 대공황만큼이나 악화한 경제를 회복하고,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세우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지역공동체 복원과 시민 참여가 답
세계화 시대, 지역공동체와 시민 참여의 중요성은, 진보 경제학자로 결코 분류될 수 없는, 미국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라구람 라잔도 특별히 강조하는 논점이다.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한 라잔에 의하면, 세계화는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결함도 있다. 지역공동체가 무력화되거나 해체된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세계화에 반발하는 이유는 미래를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라잔은 세계화와 기술 변화가 던지는 도전에 대한 최선의 대답이 바로 지역공동체 복원과 시민 참여에 기초한 ‘포용적 향토주의’(Inclusive Localism)이며, 지역에서 다양한 공유자산 확보와 주민의 공동 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논의에는 세계화 전망과 희망이 혼재돼 있다. 경영자가 리스크 관리와 회복력을 중시하고 공급망을 축소하리라는 주장은 객관적 전망에 가깝다. 반면 강력한 재분배 정책, 기업 경영에 관한 사회 발언권 강화, 글로컬리즘(세계화와 지역화를 결합한 개념)이나 포용적 향토주의로 표현되는 절제된 세계화 같은 주장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한 권고안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근거가 희박한 백일몽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코로나19 사태에 우리가 겪은 특별한 사건과 체험이 이런 방향으로 변화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경제에 관한 기본 상식이 부정됐다. 시장은 마스크나 인공호흡기가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물자를 공급하지 못했고, 기업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지 못했다. 자유방임 경제의 상징인 미국에선 대통령이 긴급명령으로 민간기업의 인공호흡기 생산을 강제하거나, 모든 가구에 현금을 지원하는 대신 외부와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강제하는 조처가 나왔다.
경제문제는 시장이 효과적으로 해결한다는 믿음 위에 움직인 ‘시장 만능주의’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멈추는 순간 정부가 ‘자원배분 최종결정자’로 등장했고, 세상은 삐걱거리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류는 일상의 필요를 충족하는 단순노동에 우리의 안전이 크게 의존했다는 점, 그런데도 그 노동 가치 평가와 보상은 지나치게 박했다는 점, 코로나19 방역과 치료 과정에서 공동체와 시민 참여가 정부 서비스 품질을 높여준다는 점도 깨달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되면 “팬데믹과 싸우는 데는 큰 정부가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이 코로나19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찾아올 감염병과의 대결에서 ‘유능하고 민주적인 정부’와 ‘호혜적인 시민에 기초한 공동체’ 효능이 계속 체감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대기업과 시장 쪽에 일방적으로 쏠린 자원 배분의 무게중심이 정부와 공동체 쪽으로 옮겨가면서 적절한 균형이 회복되고, 그 과정에서 ‘절제된 세계화’를 향한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어갈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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