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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다”
[FOCUS] 전 르노·닛산 회장 카를로스 곤 인터뷰- 개인사
[12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시몬 하게 economyinsight@hani.co.kr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회장 카를로스 곤은 그가 일하고 집에 오면 아내가 집에 있어야 하는 등 아내가 지켜야 할 규칙 목록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호기심 많고 자동차를 좋아했던 그가 ‘공포와 야망의 회장’이 된 배경엔 개인사가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인생을 만끽하고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몬 하게 Simon Hage
브리타 잔트베르크 Britta Sandberg
요나탄 슈토크 Jonathan Stock
비란트 바그너 Wieland Wagner
<슈피겔>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식에서 샤를 드골 동상을 쳐다보고 있다. 그는 경제부 장관 시절 카를로스 곤이 지나치게 많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REUTERS

최근 몇 년 동안 카를로스 곤은 주로 르노·닛산 연합을 관리했다고 관찰자들은 말한다. 그는 한 달에 세 번만 도쿄에 갔고, 파리와 뉴욕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갔다. 일본 공장을 방문하는 횟수도 줄었다. 닛산 경영진에게 그는 야심찬 매출 목표를 남겼다. 하지만 이 목표는 높은 할인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수익이 줄고 그의 경영 방식에 의혹이 불거졌다.
수년 동안 곤을 지켜본 일본 경제 전문 기자 이노에 히사오에 따르면, 곤은 부하 직원이 제출한 서류를 찢어버리고 대신 “나는 당신만 믿는다”는 말로 직원에게 구두로 보고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닛산에선 ‘예스맨’에 둘러싸여 있었고, 지인에게는 주식 옵션으로 보상했다. 반론을 제기하면 “나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화냈다. 그를 비판하는 경영진은 제거됐다. 곤 자신도 그런 비난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곤은 집에서 아내가 지켜야 할 규칙 목록을 만들었다. 곤이 일하고 집에 오면 아내가 집에 있어야 했다고 아내는 책에 썼다. 그는 큰일에만 관여하고. 네 자녀 교육은 대부분 아내에게 맡겼다. 하지만 곤은 일본 TV방송에서 자녀 교육 문제를 얘기하곤 했다.
2011년부터 회사에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많았다. 닛산 직원은 르노에서 파견된 직원이 받는 특별수당을 부러워했다. 유능한 직원의 의욕이 저하되며 닛산 안에서 불만이 커졌다. 처음 이 불만은 주로 곤의 대리인인 사이카와 히로토를 향했다. 아내와 이혼한 뒤 곤은 베이루트 출신 미국인 여성 캐럴 나하스와 사귀었다. 이 기간에 곤이 닛산을 개인적인 ‘황금 당나귀’(동화에 나오는 황금똥을 싸는 당나귀)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곤을 비판하는 이들은 수백만달러가 곤의 자녀 계좌로 흘러갔다고 의심한다.
자비 없는 비용 감축으로 유명한 곤이 회삿돈으로 추정되는 자금으로 1200만달러짜리 요트를 사들였다. 버진아일랜드 계좌로 자금이 흘러갔다. 베이루트에 와인저장실을 지었고, 캐럴이 감독한 부동산 리모델링에도 수백만달러가 쓰였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치른 결혼식에선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테마로 한 만찬이 열렸다.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2017년 10월에는 무자격 직원이 출하 전에 품질검사를 한 것이 적발돼, 닛산자동차 리콜이 실시됐다. 곤이 추진한 비용 감축 결과로 나타난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부하 직원 사이카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회사 자금 유용 혐의 강력 부인
닛산과 르노는 당신에 여러 혐의를 제기한다. 그중 하나가 회사 자금 유용이다. 당신은 베르사유궁전에서 60살 생일 파티를 열었다. 프랑스의 스타 요리사 알랭 뒤카스가 요리했고, 불꽃놀이도 했다. 이를 위해 회사는 60만유로를 냈다.
내 생일 파티가 아니라, 르노·닛산 연합 15주년 행사였다. 생일 파티에는 케이크, 촛불, 생일 축하 노래가 있다. 나에 대한 연설이 아닌, 르노·닛산 연합에 대한 연설을 했다. 나는 이 연설 장면을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이 행사는 3월9일, 당신 생일에 열렸다. 르노·닛산 연합 15주년 기념일은 원래 3월27일이었다. 초청객 대부분은 당신 지인이다.
당시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토요일에 행사를 해야 한다. 목요일 저녁에는 초청객이 외국에서 방문할 수 없다. 주말에 행사를 해야 사람이 올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행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토요일이 3월9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은 좋지 않다. 3월9일에는 내 생일 파티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타협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쪽에서 나에게 “베르사유에서 행사하고 싶으면 3월9일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15주년 행사일을 3월9일로 정하고, 3월10일 파리의 다른 장소에서 나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파티 비용은 내가 냈다.
2년 뒤 당신 결혼식과 아내 생일 파티도 베르사유에서 열었다. 대관료가 5만유로였다. 르노를 통해 진행됐다. 르노는 당신이 회사를 개인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고 비난한다.
그 내막은 이렇다. 르노는 베르사유궁전을 후원한다. 르노가 이 일을 한 이유는, 좋은 시민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어느 날 베르사유궁전 박물관과 국유재산 관리소 대표 카트린 페가르가 나에게 “언젠가 개인 행사를 이곳에서 치르고 싶다면, 기꺼이 베르사유궁전 홀 중 하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예로운 일이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제안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몇 달 뒤 아내가 나에게 곧 50번째 생일이 온다며 친구들이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마침 잘됐다. 얼마 전 베르사유궁전 홀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한 번 물어볼까?” 그렇게 베르사유궁전 홀을 빌리게 됐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그걸 선의의 제스처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알았다면 대관료를 냈을 것이다.
당신은 몇 년 동안 휴가를 갈 때 회사 소유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가족도 데리고 갔다. 닛산 보고서에 따르면, 비용이 500만유로가 넘었다.
나는 1년에 세 번 목적지와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퍼스트클래스로 여행할 권리가 있다. 내 계약서 내용이다. 9·11 사태가 일어난 뒤 민항기 이용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사람들은 나에게 “더는 민항기를 타면 안 된다. 개인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말했다. 당시엔 나에게 “당신 아이들이 회사 비행기에 탄 걸 보았다”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계약서를 봐라. 이 문제로 소송이 제기되면 나는 필요한 모든 서류를 제출할 수 있다.
베이루트 집도 회삿돈으로 샀다. 이 집 구매와 수리에 1500만달러가 들었다.
아 좀… 아니다. 아니다. 회사에서 왜 나한테 이 집을 제공했을까. 내가 사퇴하고 가버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계속 회사에 머물도록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집도 사주고, 자녀 신발도 사주겠다고 말해야 한다. 거래의 일부분이다. 이 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른 임원도 전부 확인했다.

   
▲ 영국 선더랜드에 있는 닛산 공장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가운데 마스크를 쓴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REUTERS

곤, 그는 구원자인가 희생자인가
2018년 내·외부 조사기관이 닛산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특정 현금흐름과 재정 지원에 주목했다. 닛산 경영진에 압박이 커졌다. 하지만 카를로스 곤은 먼 곳에 있었다. 내부자에 따르면 당시 닛산의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었고, 조사기관 수중에 떨어진 그들을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일본에 있는 곤의 적대 세력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들은 닛산이 프랑스 르노그룹에 더욱 강하게 통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곤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주려 했다.
곤은 구원자인가, 희생자인가? 아니면 범죄자인가? 프랑스 경제 전문 기자 얀 루소, 일본의 자동차 전문 기자 이노에 같은 세심한 관찰자는 곤이 모두에 조금씩 해당된다고 말한다. 곤은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법제도 희생자가 됐다. 유교적 가치에 기반을 둔 일본의 법 관행은 피고인을 처벌하고 소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본 언론은 교통법규를 위반한 범칙자마저 이름과 나이, 직업, 거주지를 공개한다. 그래서 범칙자가 실직하는 일이 자주 있다. 집단적 유죄판결은 이미 법정 밖에서 이뤄지고, 소송 결과에는 누구도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본 검찰은 승소가 확실한 사건만 기소한다. 기소 뒤 유죄판결 비율이 99%에 이른다. 반드시 곤이 무죄라는 소리는 아니다. 수사기관은 수천 개 내부 문서, 전자우편, 은행계좌 내역서를 증거로 확보하고 있다. 어떤 죄목이 그에게 적용되느냐는 수년 동안 법정에서 다투게 될 것이다. 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 또 하나 문제는 윤리적 측면이다.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

당신의 급여를 놓고 비판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받은 연봉은 1500만달러(약 184억9500만원)가 넘었다. 프랑스 정부, 특히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신이 받는 금액을 여러 번 날카롭게 비판했다. 2016년 프랑스 정부는 주주총회에서 당신 연봉을 감축하려 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경영자 연봉에 논란이 많다. 폴크스바겐그룹의 경우, 2017년 경영진 연봉을 최대 1천만유로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당신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2009년 나는 GM에서 이적 제의를 받았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쪽에선 내 연봉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했다. 그때 갔으면 이 모든 재난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독일에서 경영자 연봉 논란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해주겠다. 능력 있는 사람은 미국이나 중국으로 갈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스스로 돈을 더 적게 받는 자리에서 일하겠다는 경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인가.
급여는 내가 아니라 감독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모든 것이 감독위원회를 통해 결정됐다. 새로 온 르노 회장의 급여를 봐라. 같은 자리에서 15년을 일한 나보다 많다.
당신은 감독위원회 일원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 급여는 주주에게도 통보됐다. 당시 주주도 내 급여에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내가 하던 일을 5명이 나눠서 한다. 나는 닛산 회장이자 감독위원회 위원, 르노 회장이자 감독위원회 위원, 미쓰비시 감독위원회 위원이었다. 내 후임자 5명 연봉과 출장비를 합한 금액을 보면 당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회사에 좋은 거래가 아니다. 나는 가성비 좋은 경영자였다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 이제 인터뷰 시간이 15분 남았다. 그 후에 나는 간다.
일본은 기업 경영자에게 ‘겸손’이라는 덕목이 높이 평가되는 나라다. 그곳에서 당신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이해하는가.
급여를 수백만달러 받는 것이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GM 회장이 돼 연봉을 1600만달러만 받는다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전임자는 2500만달러를 받았다. 누구라도 최소 2500만달러는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더 좋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당신이 잘못한 게 있지 않은가. 당신은 다르게 행동했어야 하지 않나.
합법적인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이 있다. 그것이 비즈니스다. 하지만 도덕은 개인 문제다. 여기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있다.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믿었다. 나는 더 무자비하고 가혹하게 행동했어야 한다. 닛산이나 르노에서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을 제때 해고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 그들이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 나는 사람들과 너무 많이 공감했다. 지금 그 대가를 비싸게 치르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등 내밀한 개인사
곤의 할아버지는 걸어서 산악지대를 빠져나와 베이루트로 왔다. 가난한데다 아랍어만 할 수 있었던 할아버지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배를 탔다. 정글로 가서 자동차 타이어 재료인 고무로 돈을 벌었다.
곤은 할아버지와 자신이 거둔 성공을 즐겨 얘기한다. 한 가지 문제는 일생 동안 침묵하고 있다. 6살 때 어머니와 함께 브라질에서 레바논으로 왔을 때, 아버지 조르주 곤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프랑스 언론인 레지 아르노와 얀 루소는 1960년 사건을 한 레바논 신문의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무역업자인 곤의 아버지는 한 성직자 살인에 관여했다고 한다. 당시 성직자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구매자에게 눈에 띄지 않게 전달하는 배달 인력으로 이용됐다. 다이아몬드 거래 뒤 성직자가 아버지에게 줘야 할 돈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레바논에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유명한 사건이었다. 베이루트 현지에선 공개적인 비밀이었지만, 국제 언론에는 수십 년 동안 이 사건이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정말 성직자를 죽였는지는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곤의 아버지는 두 번 탈옥을 시도했다. 사형선고는 나중에 사면됐다. 카를로스 곤의 프랑스인 전기작가는 곤이 가족사 얼룩에도 레바논 엘리트 계층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계속 싸웠다고 했다. 레바논에 거액을 투자하고 부자와 권력자와 교류하고, 영향력 있는 친구를 만들고, 레바논 역대 대통령과 가까이 지냈다.
당신은 이제 어떤 미래를 구상하고 있나.
영입 제안을 많이 받고 있지만, 우선 내 결백을 밝힐 것이다. 그 뒤 적대 세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르노와 닛산을 고소할 계획이다. 그들은 나에게 주식, 피해 보상, 성공 보수를 빚지고 있다. 대략 1500만달러다.
어린 시절의 레바논, 1960년대 베이루트를 당신은 햇살이 가득한 파라다이스로 묘사했다. 지금 이 나라는 국가부도 일보 직전이다. 실업률이 35%에 이른다. 당신은 신임 경제부 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레바논은 지금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새 직장을 찾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기꺼이 명예직으로 내 경험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 조언을 구하는 모든 이를 도울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가능성을 본다.
프랑스 언론에선 감옥에 대한 당신의 공포와 야망이 과거 당신 아버지가 오랫동안 수감된 일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당신 아버지는 베이루트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사다. 나는 언제나 남달랐다. 호기심이 많고 자동차를 좋아했다. 아이였을 때도 야심만만했는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큰 회사 회장이 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인생을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다.

ⓒ Der Spiegel 2020년 8호
“Ich bin kein Diktator”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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