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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신흥국, IMF에 구제금융 문의
[FINANCE] 코로나19 금융시장 여파
[12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있는 환전소. 코로나19 사태 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25% 정도 떨어졌다. REUTERS

바이러스 공습에 세계는 속수무책이다. 카메라 앵글은 주요국에 맞춰 있다. 이른바 선진 경제대국이 속절없이 흔들리는 모습이 연일 보도된다. 서유럽, 미국, 일본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힘이 있다. 바이러스는 언젠가 퇴치되고, 선진국은 심한 내상에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00개국 이상 신흥국이 구제금융을 신청하거나 문의했다고 한다. 취약국은 앵글 바깥에 있다. 이들에게 바이러스는 훨씬 치명적임에도 말이다. 신흥국 외환보유고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0년 3월 신흥국 외환보유고는 하루에 약 15억달러씩 줄었다.
가장 고통받는 나라는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이다. 4월24일 기준 브라질 헤알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2019년 말보다 약 30%, 남아공 랜드화는 27%, 멕시코 페소화는 25% 정도 떨어졌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하면 이들 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공중보건 위기가 외환·금융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체질이 강한 신흥국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외환보유고는 3월 한 달 동안 270억달러 줄었다. 유가 하락 여파는 산유국을 흔들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 측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흥국이다. 3조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다. 단, 미국 달러 표시 부채 또한 천문학적이다. 외환보유고의 60%에 이른다. 실제 외환보유고는 현재의 40% 정도로 보는 게 맞다. 인도 역시 강한 나라지만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원자재 등 상품의 거대 수입국인 인도는 이동 제한과 낮은 상품가 덕분에 아직은 건실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외환보유고 붕괴 원인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무역과 경제활동 위축이 원인이다. 코로나19는 대부분 국가 경제를 ‘올 스톱’시켰다. 이동 제한과 봉쇄가 표준이 됐다. 인간 활동이 곧 경제행위인데, 활동이 줄면 경제는 멈춘다. 글로벌 무역도 급격히 줄었다. 2020년 전망은 처참할 정도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20년 세계무역 규모는 13~32%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2021년에는 약간 되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만, 2023년까지도 2019년 규모를 회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무역 규모가 줄어든다는 건 원자재 등 상품과 노동집약적 품목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꾸려가는 나라가 치명상을 입는다는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소비와 생산마저 멈춘다. 신흥국의 달러 마련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특히 원자재 등 상품시장의 가격 붕괴는 이들 생산국의 무역수지를 파괴하고 있다. 수요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줄었고, 재고는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린 이런 현상을 원유시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점은 원자재 등 상품 과잉생산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과잉생산과 과잉재고는 원유나 천연가스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석탄·알루미늄·구리 같은 원자재는 물론 대두 같은 농산물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원자재와 농산물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 현상은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보유고가 줄면 신흥국 통화는 붕괴 위험에 빠지고 해당국 중앙은행의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금융위기 때 신흥국 중앙은행이 나름 잘 대처했다. 외채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지켜냈다. 코로나19 위기에는 어떨까. 이번 위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블랙 스완’이다. 신흥국은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반면, 신흥국 달러 부족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신흥국 중앙은행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보유 달러를 내다 파는 수밖에 없다. 외통수에 걸린다는 걸 알지만 피할 도리가 없다. 중앙은행 개입에도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고 통화가치는 약세를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신흥국이 불균형의 위험을 무시해왔다.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로 경제를 꾸려왔다. 재정과 무역 적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달러의 유혹에 빠졌다. 투자자는 미국 달러 표시 부채를 선호했다. 신흥국 통화가치 불안정을 피하려는 목적이었다. 신흥국 차입자 역시 달러 빚을 원했다. 금리가 낮고 쓰임새가 자국 통화보다 다양해서다.
이 때문에 달러 표시 부채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앞으로 2년 안에 약 2조달러에 이르는 달러 표시 부채 만기가 돌아올 것이다. 의미는 명확하다. 이들 채권을 발행한 신흥국이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해결 방법은 새롭게 달러 빚을 내거나 무언가를 팔아 달러를 마련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연준의 무제한적 달러 공급으로, 초저금리 달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풀릴 것이다. 그렇다고 달러 고갈이 해결되리라 믿는다면 어리석다. 달러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이동할 가능성은 작다. 달러의 국경 이동은 ‘캐리트레이드’를 전제로 한다. 캐리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달러를 빌려 높은 이익을 얻는 신흥국 자산을 사는 형태의 투자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투자 방식이다. 이번에는 어떨까. 기대하기 어렵다. 신흥국이 생각보다 취약하기 때문이다. 자칫 신흥국에 투자했다간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2020년 3월에만 투자자들은 신흥 금융시장에서 1200억달러나 빼냈다. 신흥국 위기가 잠잠해지지 않는 한, 달러 캐리트레이드는 재개되기 어렵다.

   
▲ 브라질에서 이동통제가 실시된 5월11일 리우데자네이루 남부 니테로이시 입구에서 방역요원들이 차량 운전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외화 고갈이 금융위기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REUTERS

‘달러 가뭄’ 언제까지
‘서든스톱’이란 예상치 못한 외국자본의 유입 중단에 이은 대규모 외자 유출로 외화유동성이 고갈되는 현상을 말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1999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가 대표 사례다. 이런 현상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 신흥국 가운데 특히 재정과 무역, 통화 불균형이 생기는 나라에선 자본 유입이 멈췄고 유출이 본격화됐다.
달러 가뭄을 해소하려면 다른 통화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중국 위안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효과는 있겠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워낙 굳건해서다. 위안화가 충분해도 서든스톱에 직면한 나라에는 미국 달러가 필요하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위안화를 팔 것이다. 역외뿐 아니라 역내 위안화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위안화 표시 자산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며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는 자본 유출 가능성을 높인다.
최악은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은행이 달러를 매도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위안화 하락폭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중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 놓고 중국이 위안화를 공급할 수 없는 이유다. 서든스톱을 완화하려면 세계가 정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투자자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캐리트레이드를 재개해야 신흥국의 달러 가뭄이 해소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1분기 GDP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침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다. 대부분은 이번 침체가 상대적으로 단기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하강 속도와 정도는 구조적 침체보다 심하겠지만 그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으리라는 기대다. 이번 침체의 방아쇠는 바이러스로 인한 공공보건 위기다. 구조 요인이나 전통적 원인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아니어서 금융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더욱이 역사상 유례없는 통화·재정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터진 둑을 짧은 기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글로벌 경제는 바닥을 친 것으로도 보인다. 소비지출은 여전히 줄었고 감소 속도도 느려졌지만, 소비자심리지수는 개선되고 있다. 미국에선 신용카드 거래 건수와 액수가 최근 다시 늘었다. 중국의 경제 최저점은 2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4월로 본다. 코로나19 위기는 경제 측면에서 정점을 지나는 듯 보인다.
세계경제가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4~8분기 정도 기간이 소요되리라고 전망된다. 금융위기 때 6~14분기가 걸렸으니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이다. 하지만 신흥국이 견디기에는 긴 시간이다. 라틴아메리카, 중동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신흥국이 앞으로 1~2년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가 닥치면 약한 나라나 사람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국가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지만 각국은 각자도생에 바쁘다. 주요국이 안정을 찾아가는 사이 카메라 렌즈 밖에선 신흥국이 무너지고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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