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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진화 방식을 바꿔라
[COVER STORY] 한국경제,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②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홍기빈 tentandavia@naver.com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서울의 부동산중개소 앞에 한 시민이 부동산 광고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대 한국 지배층 내부에선 ‘금융 주도 성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세계경제 위기를 거친 ‘대침체’의 지난 10년 동안 이런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있다. ‘지구화·도시화를 통한 최대한의 고도성장’이다. 앞으로 10년간은 이런 패러다임의 현실성과 타당성이 모두 도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여기에 슬기롭게 대처해 새 패러다임을 찾아나가는 게 한국경제의 주요한 과제다.
지난 반세기는 지구화와 도시화 모두가 미증유의 기세로 진행된 기간이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모델은 두 현상(지구화와 도시화)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먼저 두 현상이 동전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화의 시원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지만, 산업활동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공급사슬’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지구화는 분명히 최근 30년 동안 본격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지구화는 도시화와 함께 진행돼, 이제는 전 인류의 절반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단순히 도시가 인구와 면적을 넓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몇 개의 거대 도시가 연결된 ‘지구적 도시’ 네트워크를 형성해 각자의 인근 지역보다 더욱 긴밀해졌으며, 그 결과 그보다 작은 도시나 심지어 농촌 지역마저 ‘지구적 도시’ 네트워크와 관계를 맺을 때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도록 모든 지역을 흡수해버렸다.

지난 10년, 수출과 부동산이 가져온 불평등
인류 역사에 새롭게 나타난 이 반세기 동안의 지구화·도시화 현상에서 대한민국은 최선두에 올라탄 나라 중 하나이며, 그 놀라운 비약적인 성장도 큰 요인이 된다. 한국 대기업들이 지구적 생산의 가치사슬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수도권 지역의 엄청난 팽창, 부동산 관련 자산 가격 상승으로 축적되고 분배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한국 자본주의는 ‘수출’과 ‘부동산’이라는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 일정한 속도로 달려야 한다. ‘빨리빨리’라는 세계적인 한국어가 상징하듯, 한국 자본주의는 계속 바퀴 두 개를 연달아 돌리며 달려왔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좀비들도 빨리 달린다.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킹덤>을 보라.)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지구화·도시화의 장기 추세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생태 위기의 한 증후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산업문명이 스스로 서식지(habitat)의 깊이와 넓이를 무한히 팽창해나가면서 생겨난 생태 위기는 빙하 소멸,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위기, 각국의 기근, 기후위기 등 무수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설령 코로나19 치료약과 백신이 조속히 나온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혹은 능가하는 예측 불능의 재앙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지구화·도시화의 기세는 꺾일 수밖에 없다. 이미 지구적 가치사슬은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기존 도시도 근본적인 재구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최소한 당분간 세계경제 전체의 성장과 팽창도 둔화할 수밖에 없다.
지구화와 도시화는 극심한 불평등을 가져온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지구적 도시’ 네트워크 형성은 거기에 편입되지 못한 지역과 물과 기름처럼 병존한다. 종속이론에서 나오는 ‘이중구조’를 형성한다. 한국도 지난 50년간 ‘20 대 80의 분리’라는 이중구조를 형성해왔다. 이는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구 격감과 여러 사회적 비용 폭등으로 나타나, 경제시스템 전체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앞으로 10년, ‘거대한 전환’ 필요
앞으로 10년간은 지구화와 도시화(거칠게 말해 수출과 부동산)라는 두 바퀴 자전거로 오로지 경제성장 하나만을 향해 달린다는 기존 한국 자본주의의 진화 방향을 근본적으로 선회하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돼야 한다. 생태 위기, 지구적 경제 변화, 도시화 쇠퇴, 인구 감소, 사회적 비용 폭증 등의 조건에서 지금 같은 방식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성장으로 후생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존 방식도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파괴하지 않거나 더욱 풍요롭게 하는 대안적인 지구화와 도시화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같은 수치의 성장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buen vivir)을 증진하는 대안경제 성장 방식,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등이 ‘도넛 경제학’이라고 불렀던 바를 발전시키고 이에 따라 사회와 경제 모델을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와 범위의 변화가 가능할지, 그것도 10년 안에 가능할지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먼저 2020년 이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하던 대로’(business as usual)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그리하여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정도의 큰 변화가 벌어질 때 한국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의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이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기둥이 부러지고 서까래가 내려앉는 상황에서 기존에 해오던 이런저런 자잘한 ‘미세 조정’ 방법이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향후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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