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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신자유주의 바꾸는 계기
[COVER STORY]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인터뷰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한겨레 자료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제대로 교훈을 도출하지 못하면 소용없죠. 우리나라는 메르스 때 잘못한 경험, 무엇보다 세월호를 통해 인명의 중요성을 깨달아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한 겁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 10돌을 맞아 4월20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금융 위기 이후 불거진 문제점의 트리거(방아쇠)가 돼 자본주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해야 했을 일에 플러스로 더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 경제가 온전히 옛날로 돌아가려면 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에서 코로나19 피해가 크다.
유럽연합(EU) 존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유럽연합에서 도와준 게 없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이탈리아를 발생 초기에 지원하지 못했다며 공식 사과까지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국가를 돕지 않는다면 ‘하나의 유럽’은 파국을 맞는다고 경고했다. 자기 편할 때만 같이하고 어려울 때 안 도와주는 게 무슨 연합인가.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시스템과 리더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역 당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반하는 얘기를 하거나, 주정부의 코로나19 조처 완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조장하는 말을 해 국민 건강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개인 지도자 한 명이 많은 국민의 건강권을 해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은가.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려면 치료 백신이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감염병 백신은 개발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일러도 12개월, 보통 18개월 걸린다고 한다. 언젠가 개발되겠지만, 18개월 뒤에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곧바로 경제는 좋아지지 않는다. 도산한 기업이 정비돼야 하고,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경제를 다시 바로 세우는 데 6개월가량 걸린다. 18개월 안에 백신이 나온다는 전제 아래, 경제가 온전히 옛날로 돌아가려면 2년 정도 걸릴 것이다.

“대공황 발언은 수치로 제시한 것”
교수님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이종우 애널리스트는 “경제에 도움은커녕 공포만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나는 객관적인 수치로 얘기했다. 막연히 공포를 조장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산 뒤 신규 실업자만 2200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미국 실업률이 30%를 넘어설 수 있다. 수치만 보면 대공황 때에 버금가는 위기다. 물론 대공황 때는 정부가 재정정책을 잘 안 하려 했고 중앙은행이 보수적이어서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일부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말대로 서너 달 지나 경제가 되살아난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 가운데 뭐가 더 심각하다고 보나.
글로벌 금융위기 자체는 금융시장 경색에서 왔다. 그 부분을 풀어주면 경제는 다시 좋아질 수 있었다. 이번 사태는 금융뿐만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있다. 생산 자체가 안 된다. 영국과 미국을 보면, 사람들이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배달도 안 되고, 유통도 안 된다.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다. 생산, 유통, 소비 전반에 걸친 위기다.

“코로나19 사태는 트리거”
금융위기 이후 여러 정부는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러다보니 금융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만 올라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 금리가 낮다보니 기업이 부채를 엄청 끌어 썼다. 10년 이상 항시적인 저금리 상태여서 돈을 안 빌리는 기업이 바보가 됐다. 미국 기업 부채가 엄청 늘었다. 기업은 돈을 생산적인 데 쓰는 대신 인수·합병을 하거나 배당금, 자사주에 썼다. 실물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됐다. 기득권층이 진정한 개혁을 하기 싫으니 돈을 풀어 경제를 부양하는 방법을 쓴 거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졌다. 코로나19가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다.
교수님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브렉시트, 극우 득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현상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한숨) 진보적 경제정책으로 문제를 풀려면 재정정책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해야 했다. 돈을 찍어 은행에 주니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고 자산 거품만 불러왔다. 경제는 회복된 게 아닌데 주가는 오르고, 주택시장에 돈이 몰려 부동산에도 거품이 꼈다. 실물경제에 돈이 안 들어가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었다. 법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플랫폼노동자도 증가했다. 미래에 희망이 없다보니 미국이나 영국같이 세계를 지배한 나라에서는 찬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병을 조장하며 극우가 세력을 확장했다. 영국 브렉시트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서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를 푸는 방식 가운데, 중앙은행의 금융정책과 정부의 재정정책 가운데 무엇이 효과적이라고 보나.
재정정책이 효과가 있지만 잘 디자인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게 이끌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 보조금을 줄 때 ‘친환경 투자를 더 많이 하라’ ‘사회에 필요한 연구개발을 더 많이 하라’ ‘사회적 약자 처우를 개선하라’ 같은 조건을 붙여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걸 기회로 삼아 우리가 어떻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지 생각하며 투자해야 한다.

“재난 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와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주목하는 현상이 있다. 영국에서는 ‘키워커’(Key Worker), 미국에선 ‘에센셜 임플로이’(Essential Employee)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의료진, 슈퍼마켓 노동자, 배달 노동자다. 코로나19 사태로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최소한 안전마저 확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또한 많은 사람이 가사노동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먹거리와 건강을 챙기는 일이 우리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가사노동 가치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본원적 시장주의 문제가 드러났기에 지난 금융위기 때와 달리 신자유주의 전체를 놓고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나.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제대로 교훈을 도출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우리나라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잘못한 경험,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로 인명의 중요성을 깨달아 이번에 잘 대처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어 희생자에게 보답해야 한다.
영어로 ‘케어 이코노미’(Care Eco nomy)라고 하는 돌봄경제는 가사노동을 기반으로 해 교육, 양로, 생필품 조달, 배달하는 분야다.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는 분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의 최저임금을 더 올리거나, 그런 분야엔 규제를 강화해 노동조건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현재 많은 나라가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책을 쓴다. 영국 같은 나라는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시장주의의 선봉에 섰다. 그런데 영국은 직원을 자르지 않으면 정부에서 직원 임금 80%까지 보존해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엄청난 얘기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월급을 정부가 내준다는 게 상식 밖이다. 자영업자가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란 말이냐”고 하자, 자영업자에게도 지난 3년 소득 기준으로 80%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자본주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지난 10년 동안 했어야 할 일에 더 해야 하는 일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문제로 재정 투입에 다소 소극적이다.
한국은 재정이 엄청 건전한 나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비율이 40%다. 이게 제일 낮은 곳이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나라로 35~4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보수적인 기관에서도 오죽하면 한국은 돈 좀 더 써도 된다고 할 정도다. 주목할 점은 복지정책을 제일 잘하는 북유럽 나라들이 재정건전성에서 세계 최상위라는 점이다. 복지지출을 많이 한다고 재정을 엉성하게 운영하지 않는다. 재정건전성을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은 GDP 대비 국채 비율이 100% 넘는다. 복지정책이 제일 센 나라가 재정도 건전하다.
논란 중인 재난지원금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재난 지원금은 일단 전 국민에게 다 주어야 한다. 말 그대로 재난이 있으니 긴급 지원을 하는 것인데, 개개인별로 소득이 상위 몇%냐 이런 것을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저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이니 재난 지원금 같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설사 상위 20~30%는 안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상황이 안정되었을 때 세금으로 상위 소득자한테서만 재난 지원금 해당 부분을 걷어가면 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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