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코로나가 불붙인 재난소득의 향방
[COVER STORY] 코로나 이후 한국경제 어디로- ① 소비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권순우 soonwoo@mtn.co.kr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 2020년 3월30일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과 교수·연구자들이 서울 여의도동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기본소득 촉구 교수·연구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월 아무것도 안 해도 누가 내 통장에 월급을 넣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유쾌한 상상이지만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이런 상상을 제도화하려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기본소득론자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부가 돈을 나눠주는 제도다.
이론적으로는 정기성·현금성·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 다섯 조건을 갖춰야 한다.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개인에게 지급해야 한다. 소득이나 나이, 수혜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와는 다르다.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노동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어,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주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사회 전반을 강타하면서 기본소득은 우리 삶 속으로 순식간에 들어왔다.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생산주체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 되는 ‘4차 산업혁명’ 때문이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고 나면 인간은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어진다. 기업은 소비자 구매력이 하락해 매출을 올릴 수 없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처럼 모든 이에게 구매력을 만들어줄 새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로봇이 인간 능력을 능가할수록 일종의 기본소득이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시도와 정책 실험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도 있었다. 2016년 스위스는 기본소득 국민 투표를 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캠페인 단체 ‘베이식 인컴 스위스’(BIS·basic Income Switzerland)는 “로봇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의 안전판 구실을 기본소득이 해줄 것”이라고 외쳤다. 결과적으로 스위스 국민 77%는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했다. 스위스 국민은 이미 체계화된 복지제도를 포기해야 하고 이민자가 급증할 것 등을 우려해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표를 던졌다.
핀란드는 2017년 세계 최초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25살부터 58살까지 실업수당 수급자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한 2천 명에게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4만원)를 주는 실험을 했다. 대상자는 일자리를 얻은 뒤에도 기본소득을 받았다. 핀란드는 구직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구직 의욕 변화를 확인해보려 했다.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복잡한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화할 근거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통한 경제 안정이 근로 의욕을 높인다는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고 기본소득 실험은 2년 만에 끝났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고, 기본소득도 이상향적 구호로 남았다. 기본소득을 단번에 현실로 끌어들인 건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 즉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통제되고 돈 흐름이 막히면서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라 코로나19가 일자리를 빼앗았다. 미국에서만 3주 동안 168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교수조차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맨큐 교수는 블로그에서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을 추려내기란 어렵고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일임을 고려할 때,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지 말고 전 국민에게 1천달러를 지급하는 게 좋다”고 했다.

보수 진영도 찬성한 ‘코로나 기본소득’
국내에도 기본소득 논의가 도둑처럼 찾아왔다. 일부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아니라 집행 권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 진영조차 기본소득에 찬성했다. 재정 곳간을 지켜야 하는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에 신중한 태도였다. 그러자 주민 피해를 직접 느끼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움직였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이어 기초 및 광역 지자체들이 제각기 재난소득 지원을 결정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이하 1400만 가구에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지원 형평성, 재원 여건 등을 고려해 지원 대상은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로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긴급재난지원금은 일회성 지원으로 현금을 정기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구분된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기본소득으로 논의가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국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역과 관계없이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국가가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정부와 발걸음을 같이했지만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평소 현 정부의 재정지출이 과도하다고 비판해온 야당도 ‘전 국민 현금 지급’ 대열에 동참했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 일주일 이내로 금융기관을 통해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게 하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듯, 재난소득 논의도 전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소득에 따라 2주 안에 현금 1천달러 내외를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고, 독일은 소상공인에게 680만원을 지원하는 즉시지원금제도를 시행했다. 홍콩은 18살 이상 영주권자에게 1인당 1만홍콩달러(약 156만원), 싱가포르는 1인당 600싱가포르달러(약 51만원)를 지급할 예정이다.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 제도와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실효성에도 문제가 있다. 재난지원금은 피해 본 사람을 위한 구호 성격과 민간소비를 촉진하는 성격이 있다. 피해 구호 성격이라면 코로나19로 실질적인 피해를 본 항공, 관광, 자영업자 등에 집중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다. 민간소비 촉진이 목적이라면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지급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중산층 이상은 추가로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특별히 소비 성향이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포괄하는 개념인데, 재난지원금은 일시적 경제 충격에 대응하는 차원의 정책이다.

   
▲ 경기도가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의 현장 신청이 시작된 2020년 4월20일 오전 수원시 권선1동주민센터 접수창구 앞에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기본소득과 다른 재난지원금 논의
그럼에도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논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이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비주류 영역이던 기본소득은 공론의 장에 던져졌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현재 논의되는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이 포괄하는 의료보험, 연금, 저소득층 소득 지원 등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제도가 아니라 실업급여 보완책이어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라는 생소한 제도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고, 유력 정치인들이 주장하면서 선택지에 올라가게 된 것도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기업이 줄도산하고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정책, 유례없는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조처가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수렁으로 가는 길을 막아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또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단행한 제로금리와 수천조원에 이르는 무차별적 양적완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경기 상황이 예상치 못한 경로로 흘러가면 사람들 주머니는 다시 텅 비게 되고, 기본소득은 다시 매력적인 카드로 떠오를 수 있다. 한 번이 어렵지 선례가 생기면 다시 하기는 쉽다. 세계경제는 어느 곳을 향해 갈까? 모든 사람에게 정부가 돈을 지급하는 재난소득이 추가로 발동할까? 막대한 정부 지출로 누적된 재정 적자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됐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5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