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대개의 경제학자들은 인센티브와 시간만 적절히 주어진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적 해법이 자연스럽게 발견·발명돼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의 신봉자라고 할까.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괴짜경제학>의 저자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 같은 경제학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와 공저자의 후속편인 <슈퍼 괴짜경제학> (2009)에서 지구온난화 경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세히 소개하는, 성층권에 황산염 입자를 인위적으로 뿌려 지구적 차원의 냉각 효과를 얻으려는 기술적 해결책(이 글에서 다루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 중 하나다)도 그렇다. 인센티브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기후변화 문제도 공학적으로 해결 가능한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2010년 12월6일 그린피스 등 환경주의자들이 멕시코 칸쿤에서 기후변화 행동을 촉구하는 수중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천재 경제학자, 레빗의 지구온난화 해법
‘천재 경제학자’라 소개되는 그도 기술혁신의 복잡한 과정을 다루는 혁신연구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 경제학 논의에서 기술이 블랙박스화된다는 지적에 충분히 수긍할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적절한 인센티브와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사 제공되더라도 원하는 기술을 얻거나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리라. 이 점이 바로 천재 경제학자가 안타까워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는 “지구온난화를 반전시키는 작업(을) 단순한 공학적 문제로 압축”하고 싶지만, 그 전에 “도덕주의나 공포심을 제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 고어부터 제물로 삼는다. 그가 펼치는 대규모 홍보·교육 캠페인은 “인류를 향해 소비를 줄여서 오염을 막자고 호소하는 고귀한 권유이지만, 동기유발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호소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한다. 오히려 “그 같은 변화에 필요한 심리적 요구를 대신할 공학이나 설계, 인센티브를 생각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적어도 레빗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구공학적 프로젝트를 시행할 수 있고, 지구온난화를 중단시키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 비용은 엘 고어가 대중 캠페인에 쓰고 있는 3억달러보다 5천만달러나 적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기술을 두고 전세계 국가와 사람들은 왜 지루한 기후협상을 이어가며 싸우는 것일까?
지구온난화가 과연 존재하는지, 그것이 인위적 영향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합의가 존재한다. 인식적 합의에 기반해 전세계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급격히 감축시키기 위해 정교한 협상 절차와 틀을 가지고 국제적 기후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의 절박성에 비해 너무나 느려터질 뿐만 아니라, 과연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뭔가 결론이나 낼 수 있을지 회의론이 점차 늘어나지만. 이 협상의 대략적인 틀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가 무엇인지 정하며, 그것을 어느 기간에 얼마나 줄여야 지구를 구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어느 국가가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협상하는 한편,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밀고 당기기를 한다. 과학과 정책이 뒤섞이는 과정이다.
많은 경우에 수치로 드러나는 국가별 의무감축량에 대한 협상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의외로 어떻게 줄일지를 둘러싼 협상들도 중요성을 가진다. 오히려 전체 협상의 프레임을 형성한다고 할까.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기후변화 국제협약의 논의 초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은 이른바 ‘포괄적 접근’을 주장했고, 또 일부를 관철했다. 포괄적 접근이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모든 온실가스를 포함시켜야 하고, 배출원 이외에 흡수원도 고려해야 함을 뜻하며, 이에 기반해 탄소배출권 거래제 같은 시장 기반의 감축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유럽연합을 비롯해 개발도상국, 그리고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 한마디로 미국 등이 자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살필 지구공학과 배출권거래제 등은 이런 접근의 일환이거나 연장선상에 있다.
　
국제기후레짐의 포괄적 접근 비판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이 포괄적 접근이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가장 비용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라고 끝까지 우긴 결과는 교토의정서의 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온실가스로 지목된 것 외에, 플루오르화탄소(HFCs) 같은 합성화학물질이 지구온난화지수(GWP) 등 과학적 개념에 힘입어 온실가스로 지정됐다. 포괄적 접근하에서 미국의 기술력으로 크게 줄인 HFCs 양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게다가 배출권거래제, 청정개발체제(CDM) 등 탄소시장을 위한 기반도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원을 줄이는 것을 넘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숲 같은 생물권을 보호·확대하는 것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안에 포함시켰다. ‘산림 전용과 산림 황폐화 방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REDD)이 그것이다. 교토의정서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틀지워놓고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은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공학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영국 왕립학회의 보고서.

미국이 관철한 ‘포괄적 접근’을 가지고 레빗의 ‘지구공학’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실 레빗이 소개한 황산염을 성층권에 뿌려 지구에 들어오는 태양광을 일부 차단한다는 구상은, 교토의정서에서도 반영되지 못한 좀더 대담한 포괄적 접근이다. 교토의정서의 포괄적 접근은 모든 온실가스와 배출원·흡수원을 포함시키는 것이지만, 태양에너지를 조절한다는 원대한 생각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공상과학(SF)이라는 조롱도 받고 있지만, 대담한 과학자들과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지원하는 정부와 기업들의 보폭은 과감하다. 1991년 필리핀 피나보투 화산의 폭발로 성층권까지 황산염이 퍼진 결과 관찰된 지구 냉각 효과를 모방한 이른바 ‘인공화산’ 프로젝트에서부터, 심지어 10년간 5분마다 8천 개 로켓을 쏟아올려 우주 공간 밖에 그늘막을 설치해 태양에너지 복사량을 줄이려는 계획까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구상을 ‘태양복사관리’(Solar Radiation Management)라고 한다.
한편 교토의정서는 기껏 육상생물권에 나무 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것만 고려했으며, 해양생물권은 탄소순환에 불충분한 지식과 불확실성으로 제외됐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공학적 구상의 큰 두 줄기 중 하나(온실가스 교정)로 ‘해양 흡수원’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해양에 대한 ‘철분 시비’(Iron Fertilisation)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바다의 플랑크톤이 활발히 광합성 작용을 하도록 일종의 철분 비료를 해양에 살포해 이산화탄소를 대거 흡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육상에서 숲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한다는 계획이 교토의정서에서 승인됐으니, 해양에서라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문제가 있더라도 기술적 해결책은 나올 것이다. 적어도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외에도 ‘자연적인’ 숲이 아니라, 높은 이산화탄소 흡수력을 가진 인공 나무를 개발하려는 계획도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런 지구공학에 관한 논의는 영국의 왕립학회와 미국의 과학아카데미 등에서 세부적인 과학적·기술적·재정적 사항까지 검토한 보고서가 제출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의 의회 내에서 정치적 지지도 모이는 상황이다. 몇몇 프로젝트는 그것을 사업화하려는 기업이 이미 설립돼, 연구·개발과 그만큼 중요한 합법적인 법제도를 만들기 위한 로비에 나서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2010년 12월 칸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구공학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국제협상을 통해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합의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이런 ‘간단한’ 기술적 해결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는 기존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의 기후협상이 붕괴되고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이뤄질 때를 대비한 ‘플랜B’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공학이 플랜B인 셈이다.

대담한 혹은 무모한, 지구공학적 해결책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반대론자들은 더 이상 SF라고 조롱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반격은 지난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이뤄졌다. 반격의 장소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아니라 생물다양성협약이라는 것이 의아스럽지만, ETC 그룹이라는 캐나다에 기반을 둔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주도한 반대 진영은 지구공학이 지구 생태계에 혼란을 주고 생물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큰 공감을 얻어 이 회의의 결의문에 사실상 지구공학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지구공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탄소포집저장(CSS·Carbon Capture and Storage)이 이 모라토리엄에서 제외됐으며, 무엇보다 생물다양성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미국 때문에 결의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ETC 그룹 등 반대론자들이 지구공학을 반대·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구공학 옹호론의 대부분은 국제·일국적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을- 안타깝다는 표정은 짓겠지만- 전제하고 있다. 게다가 좀더 솔직한 이들, 예를 들어 버진 그룹의 백만장자 리처드 브란슨은 “지구공학을 이용할 수 있다면, 코펜하겐 협상은 필요 없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계속 몰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실제로 지구공학의 기본 구상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신 태양광 복사를 제한하거나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정당성을 가진다.
둘째,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분 시비 프로젝트를 보자. 교토의정서에서 해양생물권을 흡수원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대기와 해양 사이 탄소순환에 관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커서, 제안된 철분 시비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어떤 영향이 벌어질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 컸다. 우선 기대한 만큼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해양생물권으로 흡수돼 장기간 고정될지 확신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해양 산성화를 불러와 생태계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가 해소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인공화산 프로젝트의 경우 성층권에 뿌려진 황산염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물순환에 큰 영향을 주는 몬순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돼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반대론자는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학적 ‘실험’이 무모한 시도라고 믿고 있다.　
　
지구공학에 대한 찬반 진영의 논리
셋째, 비판론자들은 지구공학과 관련된 거버넌스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구공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시행될 수 있어, 개별 국가나 기업, 심지어 (빌게이츠 같은) 부유한 개인이 시행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지구공학의 효과-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는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게 되겠지만 그에 관한 결정은 일부 국가, 과학자, 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정당한지 묻고 있다. 결국 기후변화를 다루는 유엔의 다자주의적 접근은 위축되고, 몇몇 선진국에 의한 일방주의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유엔의 옷을 벗고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주요 20개국(G20)끼리 논의하자는 유혹과 연계된다면, 이런 우려는 현실화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비판들이야말로 ‘괴짜경제학자’인 레빗이 제거하고 싶어한 ‘도덕주의나 공포심’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가 도입하고 싶어했던 인센티브는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되는 행위가 ‘돈 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 감시하고 위반했을 때 벌칙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출권이라는 자산을 만들어내고 이를 획득하고 거래함으로써 누군가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더 혁신적인 감축 방안(심지어 수많은 로켓을 쏘아대는 방식까지도!)이 마련되고 시행될 것으로 믿고 싶어한다. 이것이 교토의정서에서 도입된 배출권거래제와 청정개발체제 등 제도 도입의 논리이며, 레빗이 강조한 인센티브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2005년부터 발효된 교토의정서하의 배출권거래제 등의 성과는 어떨까? 유럽 배출권 시장의 성과는 초라하거나 논란에 휩싸여 있다. 시범운영 기간 초기에 무려 t당 5만원까지 치솟던 가격이 마지막에는 15원까지 폭락했다. 게다가 무상으로 나눈 배출권으로 기업들은 별 노력 없이 엄청난 이윤을 얻었다. 영국 발전사들은 과다 할당된 배출권 덕분에 이 기간 내에 연간 5억파운드(약 9천억원)의 이윤을 내는 횡재를 했다. 이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과연 얼마나 감축됐는지 그 효과는 불투명하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과다 할당된 배출권을 조정하고, 무상으로 나눠진 것을 유상 경매하도록 전환하는 등의 보완책이 나오고 있다.
　
탄소배출권, 또 다른 투기상품화?
배출권거래제는 더 근본적인 쟁점이 있다. 배출권의 확립과 거래란 결국 대기라는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이자 결과인데, 그에 따른 사회적 승자와 패자의 문제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도 설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까지 대규모로 온실가스를 배출한 국가 혹은 기업들의 그 배출량이 책임의 크기가 아니라, 새로운 자산의 크기로 변모할 수 있다. 배출권이 금융자본의 또 다른 투기상품화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이들도 있다. 금융자본의 무모한 투기로 엄청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마당에 섬뜩한 경고다. 한편, 시장 메커니즘의 하나로 도입된 청정개발체제는 배출권이 만들어지는 방식의 성격으로 인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고비용이 드는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비용효과성과 개발도상국의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받는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지만, 또 다른 ‘환경제국주의’라는 비판은 잦아들고 있지 않다. 결국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시장주의적 접근이 공정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인지 묻는 것이다. hancl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