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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민국가 부활시켰다”
[SPECIAL REPORT] 독일 사회학자 아르민 나세히 인터뷰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토비아스 라프 economyinsight@hani.co.kr

 아르민 나세히(Armin Nassehi·60) 독일 뮌헨종합대학(사회학) 교수는 독일의 대표적 사회학자다. 그는 인터뷰에서 “팬데믹은 의료체계, 경제, 사회적 공생에 최악의 스트레스 시험”이라며 “우리 사회를 전쟁 없는 전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토비아스 라프 Tobias Rapp <슈피겔> 기자

   
▲ 독일의 대표적 사회학자인 아르민 나세히 교수는 “지금은 전쟁 없는 전시 경제 체제”라고 진단한다. 위키피디아 제공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1년 전 “나는 당신들이 패닉에 빠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슈퍼마켓마다 진열대가 텅텅 비었고,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이 패닉인가. 우리는 사회 전체가 멈춰 서는 걸 지켜 보고 있다.
기후변화와 전염병 대유행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생존이 달린 상황에 놓여 있고, 물건을 사재기하거나 자택격리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위기를 일대일 비교하기는 어렵다.
왜 그런가.
기후변화는 먼 미래에 나타날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바이러스도 눈에 보이지 않고, 대다수 사람은 전염병을 언론을 통해 접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존재와 관련된 문제다. 바이러스 위협은 오래 지속하겠지만 찰나의 문제다. 현재 겪는 제재 사항은 머잖아 끝날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는 무엇을 목도하고 있나.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학자들의 지속적인 경고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권위적 통치 같은 건 불가능하다고 지난 수십 년간 믿어왔다. 물론 정치인을 비롯해 권위적 통치를 원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권위적 통치가 불가능해진 것은 현대 문명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늘날 최악의 재앙은 폭력적인 철권통치가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전염병 대유행으로 권위적 통치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경제가 멈췄고, 자동차업체는 생산을 중단했다. 루프트한자 항공기 대부분이 지상에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왜 현대사회에서 권위적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권위적 통치를 한다면 모든 게 붕괴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일상생활이 대부분 중단됐다. 사회에서 곧바로 이뤄지는 것이 갑작스레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됐다. 사적 영역, 공적 영역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은 곧 끝날 것이다.
무슨 뜻인가.
셧다운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만약 다른 대안이 있는데 사회활동을 정지시켰다면, 사회가 자유권을 제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사람들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걸 알기에 이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 독일에서 의사와 구조요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헬기에 태우기 위해 후송하고 있다. REUTERS

의사 지시받는 환자 등 예외 상황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의료사회학에는 ‘환자 역할’이라는 개념이 있다. 환자는 치료받는 동안 자주권을 내려놓는다. 아침이면 일어나고, 정오면 점심을 먹어야 하고, 치료받는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의료진의 지시를 받는다. 우리 사회가 현재 이런 상황이다. 임시 해결책을 동원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위기 대응책은 기후변화 해결 모델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지배체제에 대한 실험이 될 수 없다.
예외 상황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에 비상상황이 작동하는 것인가.
그렇다. 기존 구조에 너무나도 종속적이었다는 것을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소 눈에 보이지 않게 어디에선가 작동하던 구조가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아이들이 더는 학교에 갈 수 없고 사람들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면, 어떤 상태가 기존 상태를 대체하게 될까.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관계를 수없이 맺는다. 출근하거나 자유시간을 보낸다. 장도 보러 간다.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 이 모든 일이 너무 표면적이기에 괴로워할 때도 많다. 우리가 오로지 가족만 접촉하며 지내야 하는 요즘, 이전에는 표면적으로 여겼던 사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다. 외출이 금지된 지금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비평가가 많지만, 정확히 그 반대 상황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집에 지내면서 더 잘 알게 되는 게 아닌가.
이렇게 가족만 접촉하도록 내몰린 상황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동안 가족 문제와 번잡한 일상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 느끼고 있다.
평소 느끼지 못한 감정 속에 살고 있다. 자신의 존재가 통계에서 숫자로 규정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몸은 집단 공동체에 예속돼 있다. 자신이 인구 전체를 감염시키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을 활용하는 바이러스 숙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우리 생존이 적절한 집단면역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단면역이란 말 자체가 우리 자존감에는 치욕스럽다.
우리가 난생처음 가족과 가까이 지내고, 학교가 휴교하고, 연인과 종일 함께 지내면 무엇이 달라질까.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것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면 부모는 현대적인 삶을 누리기 불가능할 것이다. 일부 부모는 자녀의 학습 교사가 되기엔 자질이 부족하다. 코로나19 위기는 가족과 국가 그리고 기업에 모두 스트레스를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언론, 정부기관, 정치인, 전문가를 향한 신뢰가 없다면 이 위기는 극복되기 어렵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건 상대를 정확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교통법규를 인지하고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정확히 들여다본다. 구글에서 ‘코로나’를 검색하면 전문가와 비판적인 시민의 여러 견해가 검색된다.
독일인은 8천만의 전염병 전문가다. 마치 월드컵이 열리면 8천만의 국가대표팀 감독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사회의 여러 토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태양열 렌즈로 들여다보듯이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정부가 지시하는 것을 실제 국민이 행하는지에 따라 어디에 권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국민이 지금 따르고 있나? 정치권이 아무리 말해도 국민이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권력 수단은 더 극단적으로 관철해야 할까? 정치인들 기자회견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많은 국경이 봉쇄됐다.
국경 봉쇄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징적인 효과는 상당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분열이 가속됐다. 코로나19 위기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현대사회는 하나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리가 기능 차이라고 하는 건 자체적인 논리로 움직이는 다양한 원심력을 말한다. 정치, 경제, 언론, 학문, 사법 등은 거의 연계돼 있지 않다. 이는 사회 기능을 확고하게 개선해주는 동시에 조정도 어렵게 한다.

다양한 세력이 연계할 때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위기 때는 다양한 세력이 연계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비상상황에서만 성공했다. 대부분 비상상황은 전시상황이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다.
여러 유사점이 있다. 현재 국가는 다른 기능 시스템에 개입하고 있다. 국가가 평상시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는 지금 학문의 자유에 개입할 수도 있고, 대학병원에 코로나19 환자만 치료하라고 할 수도 있다. 국가는 기업에 사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 민간기업을 국영화할 수도 있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극약 처방을 내놓고 있다.
마치 조율한 듯이 일사불란하게 이런 대책이 나오고 있다.
예외 상황임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전쟁 없는 전시 경제 체제다.
그러나 사회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상상황에서 달라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 보고 있다. 의학 관점에서 접촉 금지 전략이 답이지만, 경제 관점에서 접촉 금지 전략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자유권을 잠시 해제하는 건 정치 관점에서 적절할 수도 있지만, 법이나 헌법 관점에선 문제다. 학문은 정치적 결정에 필요한 답변을 제시할 수 없다. 현대사회의 근본 구조가 그렇게 짜였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인다”고 표현했다. 이 전쟁은 어디서 왔을까.
코로나19 확산을 누구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극우세력에는 절대 좋은 시절이 아니다.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잘못도 아니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과거에 자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간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사람 간 연대는 강화될까.
사회학자들은 그렇다고 본다. 이웃은, 가족은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이기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 사회학 연구조사로 보면 그렇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챙긴다. 형제자매가 아니더라도 연대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장점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자유로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생긴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 상황에선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한 표어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다.
우리는 평소보다 거리를 더 두면서 동시에 서로 가까워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 시스템이 작동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잘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비판도 있지만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가.
아니다. 자유권을 멈춰야 하고, 모든 분야에서 부담이 엄청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가 연구, 의료, 정치, 행정, 경제, 사법 등 여러 분야에서 차별화된 수단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비가 잘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 안 돼 있기도 하다.
위기가 우리를 변화시킬까.
섣부른 미래 전망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말해두겠다. 사회구조는 여러 사건에 어마어마한 저항력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20세기에 큰 사건들이 있었지만, 생각만큼 근본적인 사회구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이 지나가면 일상은 금방 다시 돌아온다. 대대적으로 변화하리라 내다보는 진단에는 의문이 든다. 자본주의, 글로벌화, 신속한 세계 등은 금방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돌아올 것이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행정 시스템은 분명 변화할 것이다. 보건 체계와 관련해서는 일정 부분 더 강력하게 공적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신속하게 큰 변화를 이루기에는 사회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따라서 코로나19 위기를 기후 위기와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

   
▲ 독일의 한 교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텅 비어 있다. REUTERS

열린 사회와 공산체제의 대응 차이?
이동의 자유 제약이 오랫동안 지속하고 감염인 수가 줄어든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일부 계층의 생명이 얼마큼 가치가 있는지 질문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실업자를 감수하고, 어느 정도 경제성장률 감소를 감수할 것인가. 사회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지뢰밭에 발을 내디딘 것처럼 위험하다. 윤리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 생명은 고귀하지만, 솔직히 통계치 카테고리에 등장하는 생명이 고귀한 건 아니다.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딜레마다. 이 고민이 현안으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공론화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사례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중국에서 시작됐다. 열린 사회와 공산주의 체제 사이에 코로나19 위기 대응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강력하게 통제되는 중국에서 강제 방역을 하는 것이 더 손쉽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대응 방식과 중국 공산당 대응 방식은 분명하게 차이가 나지만, 그런데도 독일처럼 열린 사회에서도 극단적인 대응책을 실행하는 게 생각보다 쉬웠던 것 같다. 우리는 오만을 버려야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우리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 반대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국가의 존재가 위기 상황에서 합법성을 갖게 되는 건가.
한편으로는 그렇다. 국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대적인 위기 시대에 국가와 국가 차원에서 보장된 인프라 없이는 사회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보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국민국가의 재등장을 뜻하기도 하는데, 유럽의 귀환은 아니다. 유럽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지금까지는 상당히 멈춰 섰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유럽이 이탈리아를 지원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국민국가는 지금 이 순간 초국가보다 훨씬 강력해 보인다.
코로나19 발병 이전에도 지난 몇 년간은 엄청난 위기 상황으로 느껴졌다. 현재는 지난 몇 년간의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위기감은 현대사회에 빠질 수 없는 영역이다.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음을 설명하는 개념이 사회학에 있다. 정상적인 위기가 지금은 무력화됐다는 점이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대목이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 적응한다. 위기 상황에선 계속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물 흐르듯 이뤄지거나 조율되기 어렵기에 힘들게 느껴진다. 현재 우리는 완전히 다른 위기를 겪고 있다. 평소 접하지 않은 조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일상적으로 위기가 온다면 심지어 안도할 것 같다.

ⓒ Der Spiegel 2020년 14호
Ausnahmezustand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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