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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스틱과 알고리즘이 부르는 ‘무의식 클릭’
[CULTURE & BIZ] 기술과 경제학이 만들어낸 즐거운 중독, 넷플릭스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2019년 1월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가 ‘격리경제’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집 안 여가활동을 늘리다보니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도 크게 늘었다. 유럽에서는 이용량 폭주로 접속 장애가 빈번히 일어나 화질을 낮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정책을 바꿨을 정도다.
나도 넷플릭스를 제대로 탐독해보려 가입하고 구석구석 살펴봤다. 외국드라마 시리즈 이어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넷플릭스는 금은보화로 가득한 창고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시간 탓에 시리즈물에 발 담그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겐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상의 편안함
넷플릭스 역시 자사 콘텐츠가 무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다. 큰돈 들여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든가, 가입자가 자사 콘텐츠를 최대한 열심히 보도록 만들든가. 사업자 관점에서 첫 번째 방법은 늘 중요하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두 번째 방법을 열심히 한 덕에 ‘혁신기업’ 대열에 들어섰다. 이른바 직관적인 휴리스틱과 알고리즘을 통해 적은 재고로 더 많은 이용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에서는 ‘휴리스틱’ (Heuristics)이란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 뜻은 시간이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혹은 굳이 합리적 판단을 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이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을 말한다. 사람들이 매 순간, 모든 정보를 활용해 판단하고 선택해야만 한다면 인지적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는 순간이라면 저마다 직관 도구를 꺼내 빠른 판단을 하곤 한다.
이런 정보처리 과정을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은 ‘시스템1’과 ‘시스템2’로 설명한다.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보면, 시스템1은 별 노력 없이 자동으로 신속한 결정에 이르게 하는 심리기제, 시스템2는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판단을 위한 심리기제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두 시스템은 동시에 발생하지만 ‘무의식적 영역’인 시스템1이 먼저 발동할 때가 많다. 인지 부담을 덜어주는 휴리스틱이 나도 모르게 먼저 가동되는 것이다.
시스템1은 특정한 상황에서 더 잘 가동되곤 한다. 예컨대 수치 비교에서 특정 기준 숫자를 가지고 있다면 시스템1이 먼저 도와준다. 여러 사건 가운데 구체적 상황을 잘 떠올릴 수 있는 일이 섞여 있으면 시스템1이 쉽게 가동된다. 특히 자주 접해 낯익은 게 있으면 인지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이런 상황에도 시스템1이 잘 발동해 무의식적 선택을 유도한다. 넷플릭스는 인지적 편안함에서 오는 편향을 적극 활용해 더 많은 콘텐츠를 보게끔 이끈다.
시작은 첫 화면 구성부터다. 로그인하고 들어선 넷플릭스 첫 화면은 보통 환한 바탕이 대부분인 포털 사이트와는 조금 다르다. 까만 배경에 여러 카테고리별로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가 빽빽이 줄 서 있다. 이 화면에서 뭔가 연상되는 게 있을까? 바로 티켓을 산 뒤 서성이던 극장 안 풍경이다. 붉은 카펫과 좌석 너머 어두운 조명이 흐르고, 복도에 영화 포스터가 쭉 줄지어 있던 그 극장 말이다.
이화여대 최선영 교수 연구팀은 ‘넷플릭스 미디어 구조와 이용자 경험’이라는 연구에서 “넷플릭스 화면의 극장 메타포는 온전히 스크린에 몰입하는 극장 경험을 유도하고 인지적 편안함도 향상시킨다”고 설명한다. 극장에 오셨으니 영화를 한번 골라보시라 이야기하는 셈이다.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전문가도 넷플릭스의 어두운 바탕 화면이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밝은 화면은 단시간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어두운 화면은 무언가를 계속 보게 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극장에 입장했다면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콘텐츠가 있어 선택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면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미국 사회행동학자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역설’ 상황인 셈이다. 최근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우스개 이야기도 이런 상황 때문에 생겨났다. 넷플릭스에 들어가 무엇을 볼지 뒤지며 한두 시간을 훌쩍 보내다 결국 보지 못하고, 다음날에도 이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개인화 추천
이런 이용자를 위해 넷플릭스가 꺼내든 것이 ‘개인화 추천’ 시스템이다. 고도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용자 취향에 최적화된 메뉴를 구성해주는 것이다.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영화나 방송 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수익모델을 가졌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영화나 방송은 특정한 시간대와 기간에 사람을 대규모로 끌어모으는 게 중요한 비즈니스다. 제한된 시간 안에 티켓 또는 광고 수익을 최대로 올려야 한다. 따라서 동시대 목표 대상층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코드를 활용해 크게 한판 모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OTT 서비스는 특정 시간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더 많은 구독자를 모아 더 오래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면 된다. 구독자가 특이한 선호와 취향을 가졌더라도 그에 맞는 상차림을 제공하면 된다. 한 콘텐츠에 여러 명이 모이는 게 아니라, 한 가입자가 여러 콘텐츠를 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화의 궁극적 목적은 선택 기로에 놓인 구독자에게 최상의 인지적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낯선 것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법이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가 가득한 밥상을 내주면 어디에도 젓가락을 대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장르, 스토리로만 꾸민 메뉴판이어야 눈도 편하고 클릭도 늘어난다.
차림표를 보이는 방식도 색다르다. 넷플릭스는 카테고리별로 콘텐츠의 얼굴 격인 포스터, 즉 섬네일만 빽빽이 보여준다. 카테고리는 ‘지금 뜨는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님의 취향 저격 콘텐츠’ 등 다양하다. 사용자가 다르면 카테고리 분류도 달라진다. 같은 사용자라도 어제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어떤 날인지 등에 따라 카테고리가 계속 바뀐다.
심지어 구독자 시청 이력에 따라 콘텐츠 섬네일 이미지도 변한다. 드라마 <킹덤>이나 <하이에나>를 본 사람에겐 주지훈, <비밀의 숲>을 본 사람에겐 배두나, 이렇게 나오는 포스터가 뜨는 식이다. 넷플릭스 연구자 의견으론, 구독자 시청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시각 이미지다. 섬네일을 보며 콘텐츠를 선택할 때 겨우 1.8초를 소비한다. 이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으로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가장 익숙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 취향의 영화를 골라내는 추천 기술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크게 두 형태를 조합한다. 하나는 취향이 비슷한 집단을 찾아 공통으로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협업 기반 필터링’이다. 다른 하나는 배우, 장르, 감독, 스토리 특징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놓고 과거에 본 콘텐츠와 유사한 것을 추천하는 ‘내용 기반 필터링’이다. 이런 조합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대부분 기업이 사용한다. 세세하게 어떤 알고리즘 규칙으로 조합하는지가 그 기업만의 특화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내용 기반 필터링을 발전시키면서 ‘넷플릭스 양자이론’이란 것을 개발했다. 콘텐츠 특성을 마치 인수분해하듯 세밀하게 쪼갠 마이크로 ‘양자’로 분류한 뒤 이를 조합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면 원작소설이 있는지, 여성이 주도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지, 감정이 밝은지 혹은 어두운지, 어떤 결말인지, 주인공이 아웃사이더인지, 장소와 시대는 어떤지, 대상 연령층은 누구인지 등을 7만~8만 개의 미세한 ‘양자 태그’로 정리하고 조합한다. 영화 한 편의 태그 양이 30쪽 넘을 정도라고 하니, 영화를 얼마나 세밀하게 정리하는지 알 수 있다.
넷플릭스 추천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내가 이미 가진 취향 안에 계속 갇히는 단점도 있다. 뜻밖에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넷플릭스로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 쉬워졌다. 나도 모르던 내 취향을 더 세밀하게 쪼개 기록하기 때문이다.
물론 넷플릭스가 있기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DVD 우편배달 서비스를 하던 넷플릭스는 2011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넷플릭스는 이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운영 방식으로 공분을 산 전력이 있다. 새 서비스 안착을 위해 기존 요금을 대폭 올려 이용자 반발을 샀다. 수습을 위해 두 서비스를 나누면서 기존 이용자도 사이트에 다시 가입하도록 해 엄청난 불만을 낳았다. 파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주가가 폭락한 뒤 겨우 재정비할 수 있었다. 누구나 헛발질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배우고 변했는지가 중요함을 넷플릭스 사례에서도 배울 수 있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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