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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볼보와 사브, 다른 출발 같은 운명?
[하수정의 오로라를 따라서]
[121호] 2020년 05월 01일 (금) 하수정 stokholm@naver.com

 

   
▲ 2020년 2월6일 벨기에 브뤼셀 볼보 자동차 회사에서 열렸던 ‘2019 회계연도 재무결과 미디어 콘퍼런스’를 앞두고 볼보 로고 뒤에 볼보 차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 사브보다 좋은 차는 없어.”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베가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평소 말수가 없던 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은 오베에게 당부처럼 하던 말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오베는 차 시동을 켜놓은 채 튜브로 배기가스를 흡입하려고 시도한다. 이때도 오베는 말한다. “사브는 날 배신하지 않아.” 또 오베 절친이 새 차를 샀다며 볼보를 보여주었을 때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흘러 화해한 뒤 어느 날 보여준 친구의 새 차가 베엠베(BMW)인 것을 확인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헤어진다.
스포츠팀 열혈 팬과 같은 애정이다. 스웨덴 사람에게 볼보와 사브는 어떤 의미일까? 볼보는 미국 포드를 거쳐 중국 자동차 기업 지리에 매각됐다. 사브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매각된 뒤 몇 차례 부침을 겪다 201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둘 다 더 이상 ‘스웨덴 차’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볼보와 사브를 스웨덴 차로 기억한다.

조선소에서 태어난 볼보
볼보는 1926년 스웨덴 남쪽 도시 예테보리에 첫 공장을 열었다. 당시 예테보리에 있던 조선소에서 남는 부품을 모아 조립해 만든 것이 시초다.
자동차 좌석마다 달린 안전벨트가 볼보 발명품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세기 중반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교통사고도 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동차 사고는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다보니 인명 피해가 커지자 자동차 회사마다 안전장치를 구상하는 데 열심이었다. 당시에도 안전벨트는 있었다. 그 시절 안전벨트는 요즘 비행기 안전벨트처럼 생겨 허벅지만 감싸는 2점식 벨트였다.
튼튼한 자동차로 인기를 얻으며 자리를 잡아가던 볼보는 전투기 제조사인 사브의 비상탈출석을 개발한 엔지니어 닐슨 볼린을 영입해 안전장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59년 볼린은 새 차량용 안전벨트를 선보였다. 볼린이 발명한 안전벨트는 어깨에서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다시 한번 배를 감싸는 3점식 안전벨트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안전벨트와 똑같다. 볼린의 3점식 벨트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전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에서 내가 왜 저 생각을 못했나 땅을 치며 후회할 정도였다. 볼보가 특허권으로 얻는 수입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볼보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되는 이유로 3점식 안전벨트의 특허권을 포기했다. “이 발명은 인명과 관련된 기술이라 우리만 갖고 있을 수 없다”며 “이익보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볼보는 모든 자동차회사가 3점식 안전벨트를 장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공개했다. 그 덕에 모든 자동차 제조사는 즉시 볼보의 3점식 안전벨트 디자인을 채택할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역시 볼린이 개발한 3점식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조립 과정이 산업혁명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볼보는 1974년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벨트 조립 대신 10명가량의 기술자가 팀을 이뤄 자동차 한 대를 일괄 조립하는 인간 중심 공정을 채택했다. 팀 방식으로 조립하는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은 한때 전세계 자동차 공장의 필수 견학지였지만 1990년대 초반 경제 불황으로 적자가 계속되자 볼보의 승용차는 일괄 매각 대상이 된다.
당장의 이익보다 인류의 안전과 인간을 우선하는 볼보의 경영철학이 시장에서 통한다는 증거가 됐으면 좋았으련만 선한 의도만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세상이 녹록지 않다고 해야 할까?
경영 위기를 거치며 볼보그룹은 포드에 승용차 사업을 매각하고 트럭과 중장비에 집중했다.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에 흔들린 포드는 중국 지리자동차에 볼보를 매각했다. 하지만 볼보를 중국차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여전히 포드가 볼보 기술 저작권을 갖고 있으며 엔진 등 주요 부품도 포드가 납품한다. 지리자동차는 생산과 브랜딩, 관리와 공급을 책임진다.
부모님은 한국인이지만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있다. 그는 스스로 소개할 때 자신은 볼보 같다고 하면서 하드웨어는 아시안이고 소프트웨어는 스웨덴산이라고 한다. 실제 볼보 공장은 대부분 중국에 있지만 연구개발(R&D) 센터는 여전히 예테보리에 있다.

항공기 회사 줄임말 사브
볼보와는 대조적으로 사브는 ‘스웨덴의 삼성’이라는 발렌베리재단 소유 기업이다. 사실 사브는 자동차보다 전투기로 유명한 회사다.
사브라는 이름 자체가 ‘스웨덴 항공기 주식회사’(Svenska Aeroplan AktieBolaget)의 줄임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기 수요가 줄어들자 자동차나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항공기 엔지니어가 모여 만든 사브는 상자를 얹어 만든 것같이 딱딱한 볼보와 달리 전투기처럼 둥글고 날렵한 차체로 인기를 모았다. 사브 승용차 모델명은 숫자 9로 시작하는데 사브 제품 중 폭격기는 ‘1’, 공격기는 ‘2’, 전투기는 ‘3’, 승용차는 ‘9’를 이름 앞에 붙이는 전통이 있다.
항공기처럼 튼튼하고 빠른 차로 알려진 사브는 기술력과 안전 기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 자동차 최초로 터보 엔진을 장착해 시속 198㎞를 자랑하는 사브99를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시장이 연비 좋은 소형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사브의 입지는 좁아졌고, 2000년대 들어 GM그룹 전체가 흔들리면서 사브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러다 2016년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함으로써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 속의 차가 됐다.

* 경쟁보다 협업을, 투쟁보다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북유럽은 어떻게 높은 경제성장률과 사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까? 오로라의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머나먼 겨울왕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은 복지제도뿐 아니라 혁신산업과 창업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오로라를 따라서’는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북유럽 비즈니스는 물론 이를 가능케 한 북유럽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가본다. 동시에 북유럽이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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