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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공습’ 세계화에 치명타
[COVER STORY] 세계경제 여파- 금융
[120호] 2020년 04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3월18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구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철도차량을 싣는 작업을 순찰 중인 경찰과 항구 노동자가 지켜보고 있다.

‘카오스 이론’이 현실로 바뀌고 있다. 중국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전세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이러스가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간다. 공중보건과 경제가 위태롭다. 절망적인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 인류는 언제나 그랬듯 해법을 찾아내고 바이러스를 물리칠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 공포가 우릴 지배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드리운 불확실성은 공포로 이어지고, 우리의 신체와 영혼, 경제에 심각한 상처를 낼 것이다. 이미 진행되던 인류 진보의 정체 현상은 바이러스 공습이 더해져 깊어지고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러스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진행돼온, 누구도 부정할 수 없던 흐름 하나를 급속히 역전시키고 있다. 이미 그 흐름은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지만 이번 돌발 사태로 전환이 빨라졌다. ‘세계화’가 바로 그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세계화는 그 속도를 높여 이제 ‘탈세계화’로 내달리고 있다. 이로써 세계는 격랑 속에 던져졌다.

탈세계화 국면
우리는 세계화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19세기 후반부터 꾸준히 이뤄진 흐름이다. 세계화는 상품과 서비스 교역량 증가를 뜻한다. 글로벌 경제 성장에 맞춰 세계화는 가속됐다. 특히 다른 나라에 앞서 성장을 이룬 국가들의 필요로 세계화는 빨라졌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세계화가 일관되게 연속해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모든 진보가 그렇듯 세계화 역시 일종의 정체기 또는 휴지기를 겪으며 발달했다. 보통 이 시기를 ‘탈세계화 기간’이라고 한다.
경제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세계화를 세 번째로 본다. 3차 세계화는 기술 진보의 결과물인 운송수단 현대화를 등에 업고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다. 동시에 값싼 비용을 찾거나 고수익을 노린 자본의 이동으로 급격히 확산했다. 그 덕택에 이른바 제3세계는 성장의 단맛을 볼 수 있었다. 강대국의 필요로 이뤄진 것임에도 말이다.
현재 3차 세계화는 그 끝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고 세계화가 멈춘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4차 세계화는 불가피하다. 다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일정 기간 탈세계화 국면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불을 댕긴 것이 중국을 상대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이다. 자국 우선주의는 급격히 세계로 퍼져 증가하던 교역량을 정체시켰다. 이제 그 흐름을 가속하는 돌발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 사태로 탈세계화의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공급체인 붕괴
중국에선 사태가 진정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경제 마비 현상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 마비는 바이러스를 따라 동아시아, 유럽, 북미로 옮겨붙고 있다. 그 핵심에 ‘공급체인’ 붕괴가 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아시아를 휩쓸고 빠르게 세계로 퍼졌다. 당시에도 우려는 컸다. 하지만 생각보다 경제적 피해는 적었다. 이번은 다를 것이다. 중국 경제는 더 커졌고 세계는 더욱 통합됐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2003년보다 4배 늘었다.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0배나 커졌다.
전세계 대부분 기업이 중국산 부품과 원재료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에서만 조달할 수 있다. 중국 외에서 조달 할 수 있다고 해도 비싼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현대 제조 공정은 재고를 필요 이상 보유하지 않는다. 적정 수량을 보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세계의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 공장과 항구가 문을 닫았거나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체 부품이나 원재료 구비율이 99%라도 의미가 없다. 부품이 하나라도 없으면 생산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블랙스완’이라고 부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 강도는 더 세다.
중국 공장 셧다운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다른 나라 기업이 정상 작동해도 그 거래처가 중국이라면 수출이 중단된다. 중국이라는 거대 생산·소비 시장이 멈추면 타격은 연쇄적으로 번진다. 반도체 등 생산재 기업은 물론, 제조·여행·숙박·항공·해운 등 거의 모든 산업이 그 영향권에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주요 생산기지이자 거대 수출국이다. 이들 국가의 수출품은 글로벌 생산과정의 투입물이다. 중국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글로벌 공급체인 혼란은 불가피하다. 바이러스는 동아시아를 감염시켰다. 유럽에서 바이러스 확산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통합이 깊어진 이상 공급망으로 일어나는 충격은 전방위적일 것이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중국 못지않은 공급체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역전쟁으로 경제성장은 이미 약화됐다. 1단계 합의를 했지만 상황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2019년 세계 성장은 10년 만에 가장 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 2020년 성장률을 낮췄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덮쳤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는 ‘테일(꼬리) 리스크’,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사건이 터졌다. 평균값을 크게 벗어난 확률이었기에 충격 강도가 세다. 게다가 빠르게 세계 전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공급체인 붕괴는 필연적으로 지역화를 가속하는 요인이 된다. 이번 사태로 유기적 결합과 통합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세계화가 내포한 위험을 간과한 세계는 화들짝 놀랐다. 이에 각국은 유기적 결합 정도를 낮추려 할 것이다. 적어도 독자 생산 체계를 꾸려야 할 필요를 절감했을 것이다. 동시에 바이러스로 물자와 사람 이동은 줄어든다. 국경을 넘는 교역량 감소는 지역화 가속을 뜻한다. 외부 요인이지만 지역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 2020년 3월20일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인 관계자가 나오는 바람에 객장을 폐쇄하기로 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주가 표지판에 또다시 폭락한 지수들의 종가가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다.

중앙은행이 해결사?
각국 중앙은행이 잰걸음을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0.5%포인트나 예고 없이 내린 게 대표적이다. 이번 충격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는 신호다. 각국은 연이어 금리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작동할지는 불명확하다. 금리 인하가 공장을 가동할 수는 없다. 여행 수요를 부추기고 소비를 늘리지도 못한다. 돈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장애물이다.
주머니에 돈이 넘쳐도 공포는 사람을 주저앉게 한다. 불안은 저축 심리를 강화한다. 금리 인하로 자본지출이 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한, 기업은 돈값이 싸다고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금리 인하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데는 자산시장뿐이다. 이미 거품 논란에 휩싸인 자산시장을 부양하는 데 얼마나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부의 효과’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 또한 바이러스가 잠잠해져야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과잉부채 상황이 통화정책 작동을 막는다. 오늘을 사는 사람 대다수는 빚쟁이다. 은행과 채무자 관계는 정교한 시곗바늘처럼 작동해야 한다. 채권은 채무자의 정상적 활동을 전제로 한다. 불가능하다면 채권은 휴지와 다름없다.
채무자 수백만 명이 일시에 상환 압박을 받고 실제로 상환을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상한 상상이 아니다. 은행이 대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은행 또한 빌려준 돈 전부를 되돌려 받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금을 쌓아둔다.
그러나 수백만 명이 일시에 채무불이행이 되는 상황을 상정하진 않는다. 게다가 은행도 빚쟁이다. 중앙은행이 지원에 나설 수는 있다. 이것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부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 한 누군가는 손실을 보게 된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 때 처리 방식이 재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여력이 소진됐다. 또 은행 구제는 대중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4차 세계화
통화정책 도구는 이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중앙은행은 보유한 도구를 이용해 수요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 공습엔 속수무책이다. 소비와 투자 주체인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지역화를 막을 수도 없다. 통화정책이 물자와 서비스 교역을 확충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는 결국 지나가겠지만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을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 교역, 인적 교류가 줄어들었다. 무역전쟁으로 빨라진 탈세계화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세계는 성장의 단맛을 당분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기간이 얼마일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다 해도 그렇다. 바이러스 확산은 주춤하던 세계화에 치명타를 날렸다.
인류는 분명 4차 세계화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 동력이 살아나려면 자국 우선주의로 일어나는 폐해와 단절에 따른 피해가 충분히 쌓여야 한다. 그 부작용을 각국이 절감할 때 비로소 4차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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