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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천하에서 독자적 시장 확보
[CULTURE & BIZ] 오디오 콘텐츠의 부활
[120호] 2020년 04월 01일 (수)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2016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미디어행사에서 필립 실러 애플 수석부사장이 에어팟의 가격 책정에 관해설명하고 있다. REUTERS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해 ‘소리’를 미디어로 만들었다. 이후 오디오 콘텐츠는 반세기 이상 문화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 형태로 군림했다.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전달되는 비디오 콘텐츠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말이다. 비디오는 시각과 청각 요소가 같이 들어 있는 복합 콘텐츠다. 더 많은 정보 제공의 장점을 내세워 오디오 콘텐츠를 비주류로 밀어냈다. 텔레비전은 라디오 자리를 차지했고, 비디오 미디어가 대중매체를 이끌었다.
1980년 영국 뉴웨이브 밴드인 버글스가 노래에서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외친 것처럼, 많은 이가 오디오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음악의 영상화를 이끈 음악방송 <MTV>가 개국 첫 노래로 이 곡을 선택한 것도 시대 변화를 상징했다.

짧았던 영광
한동안 비디오에 밀려 주목받지 못한 오디오 콘텐츠가 다시 관심을 끈 것은 디지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아이팟 같은 휴대용 디지털 오디오 기기가 대중화하면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MP3로 대표되던 디지털 음악 서비스는 오디오 산업을 근본부터 바꿔 놓았다. 오디오 콘텐츠는 디지털이라는 옷으로 바꿔 입으며 황금기를 맞이한다.
낮은 청취율로 방송사에서 계륵이던 라디오는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방식으로 디지털 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팟캐스트는 당시 미디어 혁명이라고 할 만큼 신선한 충격을 줬다. 대형 미디어그룹들은 팟캐스트 채널을 만들어 새 미디어 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 빠른 스타트업이나 출판사도 팟캐스트로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새 미디어 시대 주역이 되려 애썼다.
하지만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출현해 다시 디지털 비디오 콘텐츠와 경쟁해야 했다. 결국 짧은 황금기를 누린 뒤 새 시대의 미디어라는 이름을 유튜브(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내주며 비주류로 밀려났다. 과거 라디오가 텔레비전에 왕좌를 내준 것처럼.
이후 10년이 지나 2016년부터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매출이 갑자기 급상승한 것이다. 디지털 오디오 콘텐츠의 두 번째 황금기는 ‘스마트 스피커’로도 불리는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주도했다. 아마존·구글·애플 같은 정보기술(IT) 강자가 잇달아 뛰어든 스마트 스피커 시장은 차세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라는 음성인식 기술 시험장이 됐다.
IT 강자가 저마다 총력을 쏟아 2019년 기준(누적) 미국에서만 모두 1억 대 가까운 스마트 스피커가 가정에 보급됐다. 자연스럽게 음악은 물론 모든 장르의 오디오 콘텐츠 수요로 연결됐다. 현재 시장 상황만 보면 2000년대 초반 아이팟이라는 걸출한 오디오 플레이어 인기에 편승해 열린 ‘반짝 황금기’와 유사하다. 그래서 ‘수요를 이끈 기기의 인기가 시들면 지금의 열기도 사그라지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 오디오 콘텐츠 성장세는 첫 번째와는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 구글이 2018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본사에서 시판을 앞둔 구글 인공지능 스피커 홈 미니(오른쪽)와 스마트 스타터, 크롬캐스트를 선보였다. 연합뉴스

두 번째 황금기
이전에는 디지털 오디오 콘텐츠 선택이 기기에 좌우됐다. 아이팟이 있으니 콘텐츠가 필요했다. 지금은 미디어 환경과 사용자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다. 대표 사례가 최근 오디오 콘텐츠의 소비 경향이다. 음악이 중심이던 과거에 견줘 오디오북, 팟캐스트 등 다른 콘텐츠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는 15년 전과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한다. 아침에 눈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 대부분 시간을 다양한 미디어 활동으로 보낸다. 한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인 미국 성인이 하루 소비하는 시간이 ‘31시간28분’이라고 한다. 하루 24시간 이외의 7시간28분은 둘 이상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 시간이다. 멀티태스킹 대부분은 미디어 소비라고 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출근길이나 학교, 직장, 집에서 스마트폰을 얼마나 많이 들여다봤는지를. 잠깐씩 뉴스를 보거나 페이스북·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음악·동영상·게임 등을 즐겼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생활에 밀착된 모바일 환경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미디어를 소비하는 생활양식을 낳았다. 여기에서 나온 사회현상이 ‘미디어 멀티태스킹’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멀티태스킹이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미디어를 동시에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싫든 좋든 미디어 멀티태스킹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효율적인 멀티태스킹 수요가 생겨났다. 여기에 부응해서 성장한 것이 바로 오디오 콘텐츠다.
오디오 콘텐츠의 가장 큰 특성이자 최대 장점은 멀티태스킹이다. 오디오 콘텐츠 소비에는 청각만 사용된다. 들으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동원해야 하는 비디오 콘텐츠에 비교우위가 있다.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87%가 오디오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유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점’을 꼽았다.
오디오 콘텐츠 장점에 우호적인 미디어 환경이 맞물리면서 오디오북 판매가 크게 늘었다. 미국 오디오출판협회(APA)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오디오북 판매 규모가 9억4천만달러(약 1조1684억원)에 이른다. 7년 동안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 스마트 스피커 보급이 빨라진 2016년 이후에는 해마다 20~30% 성장률을 보인다.
이런 성장은 오디오북 사용자의 급속한 증가에 힘입었다. 12살 이상 미국인의 50%가 오디오북을 청취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종이책을 포함한 전체 출판시장 점유율은 4%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오더블’ 서비스는 해마다 1만 개 가까운 오디오북 타이틀을 생산한다. 이미 포화상태로 여겨지는 텍스트 출판시장과 비교하면 성장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질적으로도 오디오북은 계속 발전했다. 이전 오디오북은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TTS(문자음성 자동변환 기술)나 무미건조한 단순 낭독 수준이었다. 요즘은 저자가 설명을 곁들여 직접 읽어준다. 소설은 전문 성우가 목소리에 감정을 넣어 라디오 드라마처럼 들려준다. 스릴러는 음악이나 효과음을 넣어 긴장을 배가한다. 로맨스는 마치 주인공이 귀에 대고 속삭이는 느낌을 준다. 주로 청각으로 쾌감을 주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하는 등 시대에 맞게 진화해간다.

독자 영역 구축
최근에는 명상, 달리기, 피트니스 등을 보조하는 오디오 전용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앱)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볍고 패션 감각도 갖춘 에어팟 같은 무선 이어폰 열풍과 맞물려 다양한 분야에서 앱이 출시될 전망이다. 교육, 자기계발, 뉴스브리핑 등에서 오디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작자도 늘어나 오디오 콘텐츠 선택과 활용 폭이 넓어지고 있다.
오디오 콘텐츠 진화에 따라 정보 습득 욕구가 높은 35살 이하 젊은층에서 오디오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화면에 집중해야 하는 비디오 콘텐츠와 달리, 오디오 콘텐츠는 운전·산책·달리기·피트니스 등 일상활동을 하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여러 분야 사업자가 전혀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잡는 디지털 오디오 콘텐츠와의 융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동영상 광고에 치중해오던 광고업계도 오디오 콘텐츠 광고에 발을 들여놓았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나 자극보다 오디오로 전달하는 정보의 집중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가 2019년 말 일종의 라이브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인 ‘NOW’를 시작하는 등 국내 기업의 참여도 본격화하고 있다. 유튜브가 미디어 생태계를 근본부터 바꾸고 다양한 비디오 콘텐츠가 천하를 호령하는 상황에서 오디오 콘텐츠로의 회귀는 역설적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말한다. 사람들이 너무 지쳐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냐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오디오 콘텐츠가 다시 주목받는 데는 다른 측면이 작용한다. 흔히 말하는 ‘힐링’이나 ‘워라밸’같이 생활에 여유 또는 휴식을 준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오디오 콘텐츠는 비디오 콘텐츠 시대에 자신만의 장점으로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 많은 진화 여지와 함께 성장 잠재성이 큰 시장으로 주목받는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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