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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지친 ‘한국노동’의 생애
[기획]한국의 노동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김유선 economyinsight@hani.co.kr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되고 근로빈곤층이 양산되면서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에 관심이 없다. 파트타임·파견근로·기간제 등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고용의 양과 질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대학을 마치고도 매달 70만 명의 젊은이가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일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다. 고용의 질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고용의 양도 늘리기 어렵다.
   
한국의 저임금계층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아파트에서 청소하고 있는 임시직 노동자들.

 
여성·청년 고용률 바닥권
전통적으로 고용의 양적 지표는 경제활동참가율과 실업률을 사용해왔다. 2009년 경제활동참가율은 6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5등이다. 실업률은 3.8%로 노르웨이 다음으로 2등이다. 하지만 실업률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 달리 한국의 실업률이 낮은 것은, 고용 사정이 양호해서가 아니라 구직 활동을 포기한 실망실업자나 잠재실업자가 많아서다.
그래서 요즘은 경제활동참가율이나 실업률보다 고용률을 많이 사용한다.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가 얼마인지를 뜻하는 고용률은 62.9%로 OECD 회원국 중 20등이다. 남성은 16등, 고령자는 8등으로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데, 여성(25등)과 청년(27등)은 바닥권이다.
청년실업은 일자리가 없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아르바이트는 쉽사리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일할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거다. 정부는 청년실업의 원인으로 대졸자가 너무 많고 학생들 눈높이가 높다고 강변한다. 그렇지만 설령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 하더라도 이미 높아진 대학 진학률을 낮출 수 있을까? 차라리 전 국민 대학 교육을 지식 기반 사회에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무의미한 말을 반복할 게 아니라,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어쩌다 여벌로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게 다는 아니잖은가?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안정의 대위변수로 근속연수를 사용한다. 근속연수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가 OECD 평균 33.4%인데 한국은 16.5%로 가장 낮다. 근속연수 1년 미만인 단기근속자는 OECD 평균이 17.0%인데 우리는 37.2%로 가장 높다. OECD 근속연수 평균은 9.7년인데 한국은 4.9년으로 가장 짧다(<그림1> 참조). 일본 옆에 위치한 나라다 보니 사정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장기근속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한국은 장기근속이 아닌 ‘초단기근속’의 나라로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나라이다.
 
장기근속 최저, 단기근속 최저
정부가 OECD에 보고한 임시직 비율은 21.3%로 폴란드·스페인·포르투갈에 이어 4등이다. 하지만 장기임시근로를 합치면 50%를 넘어 압도적직 1등이다(<그림2> 참조). 파트타임은 9.9%로 OECD 국가 중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파트타임이라고 다 같은 파트타임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파트타임이 36.7%로 가장 높지만 비자발적 파트타임은 1.6%밖에 안 된다. 한국은 비자발적 파트타임이 6.2%로 세 번째로 높다.
   
 

연간 노동시간은 2200시간대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노동시간은 길어도 연간 임금총액은 26개국 중 21등이다. 동유럽 체제 전환국이나 멕시코, 터키 정도만 우리보다 임금총액이 적다. 임금불평등(임금수준 하위 10% 대비 상위 10% 임금)은 5.2배로 멕시코 다음으로 높고, 저임금 계층은 25.4%로 가장 많다(<그림3> 참조). ‘산재 왕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은 중대재해율이 0.7명인데 우리는 18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남녀 고용률 격차는 21.4%로 OECD 30개 회원국 중 5등이다. 터키·멕시코·그리스·이탈리아만 한국보다 그 격차가 크다. 남성 임금을 100이라 할 때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이 38.8%로, 조사에 응한 26개국 중 가장 크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한국인의 생활만족도는 30개국 중 26등이고, 직업만족도는 27개국 중 27등이다. 노조 조직률은 10.3%로, 터키와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낮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ILO는 ‘양질의 일자리’ 지표를 만들면서 ‘고용의 양’을 9개 범주 중 하나로 계산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용의 질은 뒷전이고 고용의 양만 강조하는 처지에, 이는 고용의 양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고용의 양’과 ‘고용의 질’ 지표를 각각 산출한 뒤 이를 종합하는 것으로 했다. 서로 성격과 단위가 다른 측정지표를 종합하려면 표준화가 필요한데, UNDP 인간개발지수와 ILO가 사용한 표준화 방법을 사용했다.
   
 

 
저임금노동자 가장 많은 한국
<표>는 고용의 양 지표(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실업률·공식고용비율)와 질 지표(근속연수·비정규직·임금·노동시간·산업재해·고용평등·만족도·노사관계·사회보장)의 세부 측정지표를 표준화해서 관련 고용지표를 산출한 뒤, 국가 유형별로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첫째, 고용의 양 지표는 ‘노르딕(북유럽) › 유럽 대륙 › 앵글로색슨 › 동유럽 › 남유럽’ 순이며, 한국은 22등으로 동유럽 수준이다. 둘째, 고용의 질 지표는 ‘노르딕 › 유럽 대륙 › 앵글로색슨 › 동유럽 › 남유럽’ 순이며, 한국은 30개국 중 30위로 최하위다. 멕시코와 터키보다 낮다. 셋째, 고용의 양과 질 지표를 종합해도 ‘노르딕 › 유럽 대륙 › 앵글로색슨 › 동유럽 › 남유럽’으로 순위가 동일하다. 한국은 30개국 중 29위로, 터키만 한국보다 낮다. <그림4>는 <표>에서 고용의 양 지표를 횡축, 고용의 질 지표를 종축으로 해서 고용의 양과 질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살펴본 것이다. 고용의 양과 질은 상관계수가 0.68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졌다. 한국은 고용의 양과 질의 괴리가 가장 심한 나라다. 즉, 한국은 저임금 비정규직의 확산 등으로 고용의 질이 매우 낮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UNDP는 2010년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 12위, OECD 국가 중 11위다. 노르딕이나 앵글로색슨 국가보다는 낮아도 유럽 대륙 국가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불평등이 없다면 실현할 수 있는 ‘잠재적’ 인간개발지수를 의미할 뿐이다. 불평등을 고려한 실제 인간개발지수는 OECD 28개국 중 24위로 뚝 떨어진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폴란드·포르투갈·멕시코·터키 네 나라뿐이다. 이는 고용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일자리 늘리기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앞서의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노동시장 정책은 중소영세업체·비정규직·여성 등 이른바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해소해야 하고, 최저임금제를 보완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임금정책은 임금피크제와 연봉제, 성과배분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와 정규직에만 정책이 매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동정책 수단은 두 갈래 트랙이 필요하다. 법률의 제·개정뿐 아니라 기존에 만들어진 법령을 해석하고 잘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초과근로가 만연해 있고, 최저임금 적용에서 탈법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가 다수 존재하는 등 법률의 사각지대가 무궁무진하다. 있는 법을 제대로 지키게 하는 노동정책과 집행이 매우 중요하다. klsi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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