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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정의란 무엇인가
[편집장 편지]
[120호] 2020년 04월 01일 (수)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주를 휩쓸었습니다. 뒤이어 폭리 논란이 불붙었습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는 2달러짜리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기까지 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900원쯤 하는 생수를 4500원에 파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폭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일부 자유시장 경제학자는 법 규제에 반대했습니다. 얼음 가격이 올라가면 시민은 소비를 줄이고, 제조업자는 얼음을 더 많이 만들어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는 거죠. 이성이 작동하는 합리적인 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었죠.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맨 처음에 나오는 사례입니다. 샌델은 이런 주장이 두 가지 이유에서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첫째는 공급자를 북돋아 많은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부지런히 만들수록 사회 전체에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값어치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샌델은 이런 주장을 정치철학자 시각으로 ‘박살’ 내는데요. 첫 번째 주장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비롯됐다며, 공리주의는 인간 삶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것까지 계량화하거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을 비판합니다. 두 번째 주장은 존 롤스의 ‘자유주의’ 태도에서 비롯됐는데, 샌델은 돈만 내면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처럼 서로 합의하면 괜찮다는 태도는 잘못됐다고 꼬집습니다. 자유주의는 사회구성원에게 위화감, 불공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샌델은 대안으로 공동체주의를 내놓습니다. ‘공동체 선’에 적극 참여하고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무사항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논란의 중심에 선 지금 이 책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마스크 가격이 뛰어오르고 마스크를 사재는 곳이 늘어나자, 정부는 5부제로 가격과 수량을 통제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보수 인사는 정부가 시장에 강제로 개입해 생산과 가격을 통제하고 사회주의 국가처럼 국민을 줄 세우게 한다고 비난합니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010년 5월 1쇄가 나온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2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을 끝까지 읽으면 ‘마스크를 어떻게 다뤄야 정의가 서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분이 많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데요. ‘사회적 거리 두기’ ‘나는 괜찮으니 당신이 먼저’ 같은 서로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샌델이 말하는 공동체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철학이 골치 아프다면, 경제논리로 따져 볼까요.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걸 연구하죠. 효율적 배분을 위해 최적화한 곳이 시장입니다. 하지만 시장과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공공재입니다. 국민 건강, 국방, 치안 부문이 그것인데요. 이성과 효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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