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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추방 ‘보이지 않는 손’친환경에너지로 재원 조달
[TREND] 기본소득실험실, 프랑스 그랑드생트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안 페리즈 economyinsight@hani.co.kr

 노르파드칼레 노르주 그랑드생트는 프랑스에서 처음 기본소득을 실험한 도시다. 인근 케르크시로 출근하는 철강 노동자를 위한 거주지였던 이 도시는 어떻게 환경정책으로 사회 재분배를 실현했을까.

안 페리즈 Anne Fairis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그랑드생트시 주민들이 초록빛이 완연한 시내 중심가를 걸어가고 있다. 그랑드생트는 프랑스에서 처음 기본소득을 실험한 도시다. 그랑드생트시 누리집

기본소득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프랑스 북부 케르크시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 그랑드생트에서 2019년 4월부터 사회보장최저소득(MSG) 실험이 진행 중이다. 프랑스에서 유일한 이 기본소득 실험이 지방선거가 끝나고도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실험이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소득지원제 개혁과 정반대 길로 향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프랑스 정부는 간소화를 명분으로 지원 규모를 줄이려 한다.
남쪽으로 A16번 고속도로, 북쪽으로 거대 철강산업 시설로 둘러싸인 그랑드생트는 사회임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전형적인 위성주택 도시였다. 1960년대 철강업 발달로 늘어난 이주노동자를 위해 다미앵 카렘 전 시장이 임대주택 건설을 이끌었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현재 그랑드생트 시의회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랑드생트가 초록도시로 탈바꿈하도록 앞장선 사람도 카렘 전 시장이다. 사려 깊은 재개발로 갑갑하던 지역에 숨통이 트이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다. 무료 버스가 다니고, 43㎞ 자전거도로가 뻗어 있다. 인구 2만4천 명의 작은 도시는 사회적 경제의 본보기가 됐다.
그랑드생트는 친환경에너지 정책으로 절약한 돈(소비 에너지의 75%가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나온다 -편집자)으로 2019년 봄부터 사회보장최저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소득 하위 17.2%인 주민에게 매달 하위 빈곤선 기준액 855유로(약 111만원)를 1~6개월간 준다. 기간은 연장할 수 있다. 카렘이 10년 시장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 직전 도입한 제도를, 2019년 5월부터 사회당 출신 마르시알 베이야르 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시행 중이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첫째는 재원 마련 방법이다. 1년 예산 120만유로의 40%는 공공시설 전구를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하면서 절약한 돈으로 마련했다. 나머지는 공공기초의료기관 운영에 쓰인 시예산을 도시 간 협력기구인 도시공동체(CU) 예산으로 대체하고, 지역긴급사회지원금 예산을 조정하면서 충당했다.

   
▲ 환경과 공존하는 초록도시로 탈바꿈한 그랑드생트. 무료 버스가 다니고, 43㎞ 자전거도로가 뻗어 있는 인구 2만4천 명의 이 작은 도시는 사회적 경제의 본보기가 됐다. 그랑드생트시 누리집

불안정한 삶의 고리를 끊어내다
그랑드생트의 사회보장최저소득은 국회에서 기본소득법안 통과가 좌초된 뒤 도입됐다. 13개 진보 데파르트망(행정구역)에서 지지한 법안이었다. 릴대학에서 사회·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는 클레망 케이욜은 “국가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다미앵 카렘은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법률과 시예산에 맞춰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케이욜은 사회보장최저소득 실험 연구를 위해 시에서 고용한 인물이다. 2018년부터 준비한 실험은 2020년 3월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카렘 전 시장은 대표적인 기본소득 지지자다. 기본소득의 보편적 도입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려면 일단 법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에 맞춰야 했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은 소득에 따라 선별 지급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이지 않다. 그러나 13개 데파르트망이 제안한 전환소득과 달리 다른 사회복지제도를 대체하지 않는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무소득자 대상으로 1인당 월 73만원 정도 지급되는 적극적 연대소득 등 다른 지원금이 깎이지 않는다. 지급 대상마다 세심하게 금액을 결정해 오히려 보완적이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이란 이름은 카렘 전 시장이 지었다. 그의 아버지 르네 카렘이 적극 추진했던 1988년 최저편입소득(RMI)을 생각나게 한다. 사회당 출신이던 르네도 1971~92년 그랑드생트 시장이었다.
사회행동시공동체센터(CCAS)는 붉은 벽돌로 지은 그랑드생트 시청에 있다. 사회지원금 수령자, 노동 빈곤자, 퇴직자, 25살 미만 청년 등 월 855유로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에서 사회보장최저소득을 신청할 수 있다. 2019년 지원자 1091명 가운데 728명이 도움을 받았다. 이미 사회지원금을 받고 있던 유자녀 가정의 68%가 사회보장최저소득을 받았다. 16살 딸이 있는 브리지트는 CCAS에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지급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9년 12월까지 CCAS 센터장이던 후안마누엘 델포소는 사회보장최저소득을 두고 “다르다”고 평가했다. “‘보이지 않는’ 시민을 위한 제도다. 나라의 도움을 받기보다 차라리 끼니를 거르거나 난방비를 아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까지 생각한다.” 델포소 전 센터장은 그랑드생트의 기본소득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의 뒤를 이은 신임 센터장 크리스토프 마다시는 “소득 여부가 아닌 가난을 문 여는 열쇠로 생각하면 모든 게 변한다”고 말했다. 사회보장최저소득 수혜자 브리지트 역시 “낙인찍지 않는다”며 만족해했다. 그랑드생트의 기본소득 실험에 관심이 높다. 북부 파드칼레주에 있는 진보주의 지역 살로민에서는 그랑드생트에 세 차례나 대표단을 보냈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은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꺼리는 부정적 인식을 바꾼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을 두루 품는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리인 사회권을 가진 시민이면 된다. 급여, 사회지원금, 주거지원금 등을 받고도 최저빈곤선에 못 미치는 소득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각 가정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누구도 더는 궁핍하지 않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 빈곤 굴레를 끊는다. 주거, 고립 등 실타래처럼 엉킨 어려움을 풀고 직업교육이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아직 그 성과가 얼마나 크고 실제로 취업에 성공했는지를 따지기는 이르다. 하지만 마다시 센터장은 지원 대상자와 담당 사회복지사 관계에 안정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원이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은 사회복지 패러다임을 바꾼다. 수급자의 주체적인 소비를 존중한다.”

자선 아닌 ‘자립’을 돕다
사회보장최저소득은 그저 현대판 자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건설하도록 자립을 돕는 지렛대다. 이런 점에서 그랑드생트의 기본소득 사업은 카렘 전 시장이 추진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이 꼽은 ‘지속발전 본보기’ 도시 그랑드생트는 주거, 에너지, 대중교통 등 환경문제를 빠짐없이 고려해 도시를 재정비했다. 모든 재정비 사업에 기업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랑드생트는 프랑스 최초 ‘에너지 플러스’ 도시이기도 하다. 풍력에너지로 시에서 쓰는 전력량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 시내에 있는 ‘화가의 섬’에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로 낮춘 ‘패시브하우스’가 에너지 구멍이던 사회임대주택 단지를 대신한다. 자재의 83%를 조립·재활용할 수 있는 건강센터가 2021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랑드생트는 2011년부터 ‘변화하는 도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모두가 지지할 수 있는 연대 발전을 위해 시민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시에는 엄청난 도전이다. 평균 실업률이 10.6%를 웃돌고, 시민 31%가 상위 빈곤선 1060유로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그래서 시는 물질적 삶의 조건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생각하는 변화를 꿈꿨다. 이야기와 지식을 나누는 창, 공동구매 시설과 수리 시설 ‘리페어카페’가 문을 열었다. 나무로 지은 패시브하우스에 자리잡은 ‘시민대학’에선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다.
그랑드생트 시민대학 지도강사인 쥘리앙 미에르제예프스키는 “건강과 식품 분야는 시민 참여를 높이는 좋은 지렛대”라고 말했다. 주체적인 생각은 물질적인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랑드생트에선 조금 특별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170가구가 농약 없이 여섯 개의 공유 텃밭을 가꾼다. 건물 앞에 마련된 도시 텃밭이다.
시의 ‘친환경 사회적 전환 사업’을 이끌었던 장크리스토프 리포박은 말했다. “중요한 건 시민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도시’라고 선언했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변화하는 도시는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다.” 그랑드생트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11년부터 시내 모든 학교 급식이 100% 유기농이다. 0.40~1.85유로(약 500~2500원)면 먹을 수 있다. 자전거 구매도 지원하는데, 시민 참여로 모은 예산이 50만유로에 이른다.

   
▲ 이라크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온 쿠르드 난민들이 임시 보호시설인 그랑드생트의 체육관에서 쉬고 있다. 그랑드생트의 사회보장최저소득은 기존 지원금을 보완한다.REUTERS

‘이례적’ 수준의 시 예산
퍼줘도 너무 퍼주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역설적인 사실은, 그랑드생트가 철강산업과 이별하고 사회적 도시, 친환경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철강업계에서 받은 ‘공돈’ 덕이었다. 1972년 당시 시장이던 르네 카렘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던 기업(위지노르, 현재는 아르셀로미탈)에 부과하는 지방세를 두 배로 늘렸다. 전기기술자이자 프랑스민주노동연맹 위원이던 그가 시장으로 있으면서 아들 다미앵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2018년 아르셀로미탈이 낸 세금은 인구 4만 도시에 필요한 예산과 맞먹었다(전체 세수입 6500만유로 중 63%). 현재 그랑드생트 인구는 그 절반을 조금 넘는다.
지역재정감사원은 최근 그랑드생트 시 예산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덕에 규모가 큰 투자를 받고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친환경 도시로 전환하는 데 드는 자금을 모았다. 시는 저렴한 문화·스포츠 공공서비스(수영장 입장료 1유로 미만)를 포기하지도, 일자리를 줄이지도, 시민에게 필요한 사회안전망을 없애지도 않았다. 이제는 이런 전환을 공고히 다지는 일만 남았다. 탈산업화가 일어나는 그랑드생트에서 공돈이 말라버리기 전에 사회보장최저소득은 ‘또 다른 시장’이 돼야 한다.
리포박 역시 “그랑드생트의 기본소득이 가진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차기 시장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재선을 준비 중인 마르시알 베이야르 시장은 기본소득 실험을 이어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2월호(제398호)
Grande-Synthe, laboratoire du revenu universel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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