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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몰아보기’에 빠지게 하라!
[CULTURE & BIZ ]기술과 경제학이 만들어낸 즐거운 중독, 넷플릭스 ①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2019년 11월25일 부산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행사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으로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콘텐츠를 제공하는 오버더톱(OTT)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세계 미디어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시장 확대 견인차는 미국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알고리즘 기술, 행동경제학 등을 활용해 시장을 선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넷플릭스에 담긴 기술과 경제학 세계를 두 번의 연재로 살펴보려 한다.

넷플릭스와 행동경제학
내 학부 전공은 인류학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20여 년 전 입학했을 때 이 학문은 많은 사람에게 생소했다. 신입생에게 전공을 소개하던 선배들은 여러 설명 끝에 미국 유수 기업에선 인류학자를 채용해 활용한다며 가능성이 많은 학문이라 덧붙였다. 상아탑에만 갇힌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 신입생 마음을 살짝 달뜨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업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도통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이것은 흡사 도시 전설인가” 하는 푸념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기업에서 활용하는 경우는 아직도 흔치 않다. 사회과학 꽃이라는 경제학도 경제 동향을 조사하는 것을 빼면 기업에서 특정 분야를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최근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융합’이 화두가 되면서 실리콘밸리에선 경제학자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에어비앤비 등 가장 뜨고 있다는 IT 기업에선 모두 경제학자 채용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들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소비자 행동 변화를 읽는 것이 전보다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IT 기업은 과거에 없던 새 상품을 선보이기보다 기존 상품을 더 손쉽고 편하게 선보여 수익을 올린다. 그래서 ‘소비자 행동’을 먼저 읽고 이들을 움직이는 ‘인센티브’를 찾거나 적합한 ‘가격’ 방식을 도입하는 등 경제학 연구를 활용하는 게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기업이 데이터를 쌓은 덕에, 학자들의 연구를 확인하고 적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리콘밸리로 달려가는 경제학자들
예컨대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에서 에어비앤비로 옮긴 피터 콜스는 이용자 행동을 분석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공유 시스템을 연구한다. 계량경제학자인 패트릭 바자리는 아마존에서 팀원 120명을 이끌며 가격 책정, 공급망 운영, 구매 정책 등과 관련한 인공지능(AI) 기술을 연구한다. 아마존은 자체 경제학자 사이트를 만들어 경제학 박사 이력서를 받고 있을 정도다.
기업이 주목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그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를 규명하는 분야다. 과거 주류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온전히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여러 선택지가 있을 때 사람은 언제나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봤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사람을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거나 때로 감정적인 존재로 본다. 이 때문에 사람은 종종 이성적이지 않아 보이는 결정을 내린다. 행동경제학은 그런 현상을 찾고 그 행동 기저에 깔린 경제적, 심리적 이유를 밝혀내려 한다.
기업은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사람들의 비이성적 선택 기제에 관심이 많다. 이를 역으로 활용하면 ‘합리적이지 않아도’ 자사 상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서다. 이를 잘 이용한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화면 구성부터 마케팅까지 행동경제학 논리를 적극 활용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거론된다.
한 달간 무료 이용을 제공한 뒤 유료 가입을 권하는 체험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외에 많은 기업이 활용하는 이 기법 뒤에는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의 ‘소유 효과’ ‘현상유지 편향’ 등이 숨어 있다. 소유 효과는 일단 자기 것으로 인식한 것은 소유하기 전보다 더 큰 가치를 두는 현상이다. ‘현상유지 편향’은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변화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심리다.
일단 한 달 동안 넷플릭스 무료 서비스를 누린 사용자는 해당 서비스를 ‘내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해진다. 이를 해지하면 내 것을 잃는 손실로 느껴 유료 가입을 유도하기 쉽다. 또 한 번 서비스를 맛보면 원래 상태인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편향이 강해, 굳이 해지하지 않고 유료 가입으로 더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몰아보기’에 담긴 행동경제학
넷플릭스가 현재 지위를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되는 ‘몰아보기’도 행동경제학의 숨은 손길이 있다. 몰아보기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의례’로 자리잡았다고 여겨지는 시청 행태다. 2015년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세계 미디어 사용자의 약 78%가 몰아보기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얼마나 오래 보는 것이 몰아보는 일인지의 정의는 분명치 않다. 대략 설문을 보면 중국 사람은 평균 3.8시간, 한국은 3.7시간, 미국은 3.6시간 몰아보기를 한다고 답했다.
몰아보기가 넷플릭스 고유 발명품은 아니다. 넷플릭스 이전에도 유명 드라마 시리즈를 내려받아 종종 돌려봤다. 하지만 여러 사이트를 뒤져 파일을 찾아 내려받고, 한편이 끝날 때마다 새 파일을 다시 구동해 보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넷플릭스는 이런 시청자를 끌어안으며 기존 텔레비전 시청과는 다른 형태를 만들려 했다. 무엇보다 ‘구독 서비스’ 형태가 최근 화두였다. 구독 서비스는 한번 돈을 내면 중단하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이 역시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는 ‘현상유지 편향’ 덕이다. 하지만 구독자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줘야 구독 중단을 막을 수 있다. 넷플릭스는 서비스를 더 많이 활용하는 사람일수록 만족감이 높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더 오래 플랫폼에 머무르게 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넷플릭스는 2012년 드라마 시리즈가 자동 연속 재생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드라마 시리즈를 시청할 때 한 편이 끝나면 드라마 앞뒤의 주제가나 엔딩 크레디트 등을 건너뛰고 바로 다음 편이 재생되도록 한 것이다.
물론 다음 편으로 넘어가도 보기 싫으면 중단 버튼을 클릭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순순히 다음 편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이번 편만 보고 내일 봐야지’라고 마음을 먹어도 자동 연결되는 다음 편 앞에서 무너지기 일쑤다. 더군다나 자동으로 다음 내용으로 연결되면 이야기 몰입도도 높아진다. 사람은 넷플릭스가 편리하게 유도하는 몰아보기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넷플릭스와 관련한 많은 미디어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몇 시간씩 드라마를 몰아본 뒤에는 적잖은 죄책을 느끼곤 한다. ‘몰아보기’의 영어 표현(binge)에 폭음, 폭식 같은 약간 부정적 의미가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런 죄책감을 없애는 게 필요했다. 이를 위해 시리즈를 한번에 몰아볼 때 최상의 가치를 느끼도록 홍보 작업을 했다. 2015년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대표작 <하우스 오브 카드>를 공개할 때는 시즌 전체를 한꺼번에 내놓기도 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보는 것이 더 즐거운 경험이 된다는 의미에서다.
이후로도 넷플릭스는 몰아보기에 최적화된 다양한 구조를 개발했다. 한 시리즈를 6회 정도 구성한 것도 몰아보기 최적화를 위해서다. 아마 현실적으로 한 시리즈를 한번에 모두 보는 것은 어렵고, 두 번 정도 나눠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 네덜란드 연구팀은 5편 이상 몰아보기를 할 경우 즐거움이 반감되고 죄책감이 늘어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몰아보기를 위해 드라마 서사 구조에도 변화를 줬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코리 바커 교수 연구팀이 쓴 책 <넷플릭스의 시대>를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서사 구조에는 비슷한 유형이 있다. 한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를 겹쳐 넣고, 한 회에 해결되지 않는 커다란 퍼즐까지 넣어 진행하는 것이다.
이 구조는 시리즈를 한꺼번에 연속해 봐야 재미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드라마를 한 주에 한두 번 보는 형태라면 연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 이런 이야기 구조가 많이 도입된 것도 넷플릭스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사람이 여러 편 드라마에 편안하게 빠져드는 장치를 강구했다. 이를 위해 사람의 숨겨진 행동 편향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은 자기 편향을 스스로 물리치려 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사람을 위해 첨단 과학기술인 알고리즘을 덧붙였다. 플랫폼을 떠나려는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다음호에선 넷플릭스가 우리의 무의식 형성을 위해 애쓰는 일을 살펴보겠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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