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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진출 교두보, 다이내믹 제조 강국
[세계는 지금] 이탈리아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정봉기 mil0702@kotra.or.kr

 정봉기 KOTRA 밀라노무역관 관장

   
▲ 이탈리아는 과거의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관광 대국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이 높은 경제 강국이자, 최근 역동적인 도약을 도모하는 나라로 한국 기업이 주목할 만하다. 로마 유적지 콜로세움. 연합뉴스

이탈리아를 찾는 한국 사람 가운데 이탈리아에 고정관념이 있는 분이 제법 있다. 특히 ‘조상 덕에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평가를 들으면 난감할 때가 많다. 물론 이탈리아에는 고대 로마문명과 르네상스 발생지로서 많은 문화유산이 있고, 피자와 파스타 같은 먹거리를 즐기거나 쇼핑하러 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관광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근접할 정도로 관광산업이 발달한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축소판
그러나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독일에 이어 2위 제조 강국이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패션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연간 242억유로에 이른다. 독일은 물론 영국의 3배, 프랑스와 5배 이상 차이 나는 패션 강국이다. 또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도시국가로 발전해 지역마다 고유문화와 특화 산업이 발달해 지역별 소득 격차가 심하다. 이탈리아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의 기원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정복지 주민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문화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더해갔다.
요즘 이탈리아는 상황이 좋지 않다. 2017년 경제성장률이 1.5%로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뒤 계속 둔화해 0%대에 머물고 있다. 실업률도 장기간 11%대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 역시 불안정하다.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정당은 과거 북부 지역 독립을 주장했던 극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추구하는 동맹당이다. 동맹당의 반난민 정책과 세금 감면, 반유럽연합(EU) 정책 등이 살림살이가 각박해진 이탈리아 국민의 불만을 파고들어 호응을 얻고 있다. 국가부채를 개선하려는 개혁이 필요한 이탈리아 정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탈리아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변화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2019년 3월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트리에스테 항구 개발을 포함한 200억유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불안정한 정치·경제
이탈리아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아시아·중동·아프리카의 유럽 관문이자, 동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최단거리 물류 경로에 자리잡고 있다. 동유럽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항만물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독일 함부르크에 집중됐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뒤 스페인반도를 둘러 가는 북대서양 항로여서 지름길인 지중해 항구를 이용할 때보다 최소 7일 이상 걸리고 내륙운송 거리도 멀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항구는 물류 전략에서 볼 때 시간과 비용에서 훨씬 유리하다.
독일이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 항구 개발 프로젝트를 극구 반대한 배경에는 유럽에서 이탈리아 중심 지중해 물류 시대가 열리면 자국 물류 산업에 피해가 생길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변화의 선두, 밀라노
이탈리아에서 도약을 위한 다이내믹한 변화를 시도하는 선두 도시는 밀라노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수도로 그동안 패션산업을 중심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사회기반시설이 노후화돼 파리·런던 등 유럽의 주요 도시와 비교하면 세련미는 떨어졌다.
그러나 2015년 밀라노 엑스포를 계기로 인프라 구축, 시내 정비, 도시 재생사업이 단행되면서 도심 미관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밀라노에서 가장 열기 있는 지역은 도시재생 사업으로 탄생한 주상복합단지 시티라이프(CityLife)다. 옛 밀라노 전시장과 인근 지역을 고급 주상복합 지구로 개발한 곳이다. 2019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를 비롯해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지은 ‘3개의 탑’(Tre Torri)을 비롯한 신축 건물이 밀라노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이곳에 머물 때면 여기가 정말 이탈리아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초현대식 건물에 둘러싸였다.
또 하나의 변모는, 스타벅스가 커피의 본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 입점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중국 상하이와 미국 시애틀에 이어 세 번째로 2018년 9월 밀라노 두오모 근처에 원두를 볶는 대형 로스팅 기계를 설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점을 개설했다. 스타벅스 창업자가 1983년 밀라노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커피문화를 가져와 미국에서 커피사업에 성공한 뒤 밀라노로 재입성하는 데 3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스타벅스와 커피문화
이탈리아 커피문화는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선 채로 홀짝 마시고 금방 나오는 식이다. 물에 탄 미국식 커피(아메리카노)를 비싼 가격을 내고 앉아 마시는 방식과 맞지 않아 스타벅스는 실패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여러 차례 인터뷰하고, 이탈리아 전통 커피문화를 존경하는 자세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매장에 들어서면 ‘R’자가 새겨진 화려한 대형 로스터기가 커피를 볶고 한쪽 천장에서 내려오는 신기한 유리관에서 드립커피가 만들어지고 있다. 매장의 모든 기자재는 이탈리아인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산을 썼다. 여러 볼거리가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본 듯한 고급 대형 커피공장에 들어선 느낌을 들게 한다.
밀라노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는 성공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두오모와 함께 꼭 들러야 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2026년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
밀라노는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 2026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1956년 겨울올림픽 개최 경험이 있는 스키 휴양도시인 코르티나담페초와 공동 개최 형식으로 기존 시설 93%를 재활용해, 평창겨울올림픽의 10분의 1 수준의 개최 비용만으로 올림픽을 치를 계획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미래지향적인 정책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예로 이탈리아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Ind4.0’ 금융지원 정책을 추진하며 법률에 따라 노후화된 기계설비 교체와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지원책(기계설비 구매·리스 금융 혜택)에 힘입어 2018년 한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은 금속공작기계(43.7%), 산업용 전기(17.7%), 기계 요소(11.0%)에서 늘었다. 중간재(철강판, 합성수지, 고무·플라스틱 제품, 정밀화학 원료) 수출도 대폭 늘었다.

자동차·소비재 협력 유망
이탈리아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디젤자동차에 주력해,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 같은 미래차는 초보 단계에 있어 이 분야에서 협력하는 게 유망하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공동 연구개발을 하면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6월 내놓은 ‘소비재 수출 활성화 방안’ 5대 소비재(패션·의류, 화장품, 농수산식품, 생활·유아용품, 의약품)의 명품화를 위해 이탈리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는 소비재 분야에서 명품 브랜드가 많고, 유력 전시회를 열어 ‘소비재 협력’에 이상적인 나라다.
패션·의류 분야에서 이탈리아는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국가다.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업체와 디자인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섬유·직물 시장 진출 확대와 한국 제품 고급화를 유도해야 한다.
화장품은 매년 3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화장품 전시회 코스모프로프(COSMOPROF)가 열린다. 이 중 매년 100여 곳이 참가하는 한국관은 최근 ‘케이뷰티(K-Beauty) 붐’에 힘입어 인기관으로 꼽힌다.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이탈리아의 코스모프로프를 미국·홍콩·인도 외에 한국에서도 유치할 경우, 한국 화장품산업은 한류와 시너지효과를 내서 한층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국내 전시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제약 생산 분야도 유망
이탈리아는 제약 생산액이 유럽연합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다. 전세계 신약 개발 가운데 7천여 건이 이탈리아 기업 또는 연구기관 개발로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제약회사는 희귀 질환과 암 치료제, 알츠하이머 제약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기술 수요가 높다. 한국 제약회사가 적극적인 기술협력으로 제약 강국 도약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유럽 시장은 보수적이지만, 전세계로 납품할 수 있는 보증수표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렵더라도 미래 성장을 향한 장기적 안목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관광 대국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이 높은 경제 강국이자, 역동적인 도약을 도모하는 이탈리아는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자체 시장의 매력뿐만 아니라 유럽 진출 교두보로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최근 이탈리아의 역동적인 대외 움직임을 모니터링해 적극적으로 대이탈리아 사업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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