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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과 불신 커져… 세계경제 ‘암울’
[FINANCE] 미-중 무역합의 이면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2020년 1월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안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15일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이 마침내 이뤄졌다. 시장은 환호했다. 세계경제 역시 들썩였다. 18개월 동안 지속하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힐 거란 생각에서였다. 이때 코로나19란 돌발 변수가 생겼다. 희망은 한순간 불안으로 바뀌고 세계경제는 다시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바이러스란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2020년 1분기는 희망으로 가득한 시간이 됐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환호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1단계 무역합의의 불완전성 때문이다.
합의는 의미가 있다. 대결 일변도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의 소통이 재개됐다는 것과 무역전쟁 확산을 막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체적으론 기분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 우린 ‘합의’란 겉포장에 환호하며 세부 핵심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합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전쟁 전으로 원상회복된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해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확실성 증폭이 그의 협상 기술 요체다. 이것이 경제주체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이유다. 그는 언제든 자기 말을 뒤집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번 합의 역시 언제든 무효가 될 수 있는 불안을 안고 있다. 그의 말과 합의를 믿고 과연 얼마나 많은 경제주체가 투자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을까? 선뜻 손뼉 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번 합의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 관세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무역전쟁을 시작하기 전, 미국의 중국 제품 평균관세는 3%였다. 이번 합의는 19% 정도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품목 3분의 2가 관세 대상이다. 합의에 따라 2월14일부터는 조금 낮아지겠지만 관세 부과는 계속된다. 언론은 이번 합의를 정전이나 휴전으로 표현한다. 과연 그런가? 교전 수가 줄고 총성이 약해진 걸 휴전이라 하진 않는다.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왜곡된 사회주의
트럼프는 미-중 공정무역을 주장하며 대통령직에 올랐다. 중국이 규칙을 어기고 미국 기술을 탈취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이란 뭘까? 강압적 힘을 무기로 상대보다 우위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술 탈취와 공공연한 보조금 지급을 제외한다면 미-중 무역 불균형은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의 결과물이다. 물론 중국이 타국 기업에 공평한 기회를 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특정 국가나 기업, 소비자에게 중국산 제품을 선택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미국과 그 기업, 소비자가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쓰는 것은 자발적 선택이다.
미국이 힘으로 중국에 미국산 제품을 사라고 강요하고 중국에 더 많은 수출을 하라고 자국 기업 등을 떠미는 게 과연 공정한가? 트럼프가 공정무역이라 부르는 건 실은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사회주의 방식이다. 사회주의란 자본 할당 방식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방식은 자유무역이 아닌 관리무역이다. 기업가 자율로 무역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치인이 관리자로 나서고 있다.
권위주의적 사회주의가 오고 있다. 아니, 왜곡된 사회주의 방식이 찬양받고 있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일단의 기업가조차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면서도 그 방식을 차용한다. 자본주의 신봉자가 사회주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는 게 자본의 잘못된 배분이다. 정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어긋난 의사결정을 한다는 거다.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모순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거대 기업이야말로 자본의 잘못된 배분으로 이득을 얻은 사람이다. 입으론 사회주의를 맹렬히 비판하지만 자기 이익에 부합할 때는 사회주의 품에 안긴다. 특히 오늘의 미국 거대 금융회사는 국가와 국민이 구제했다. 사회주의를 앞장서 비판하지만 사회주의 경제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셈이다. 금융위기 뒤 10년이 조금 지났지만 이들 금융기관은 과거를 잊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그토록 혐오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대차대조표 청소에 도움을 주려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번 무역합의 서명식은 이러한 모순을 잘 말해준다. 서명식은 요란했다. 성조기와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관료와 기업인이 참석했다. 무역에 관한 서명식이니 기업인이 자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도저히 그 자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모펀드계의 거물, 카지노 재벌 등이 참석했다. 이는 이번 합의가 뭘 말해주는지를 잘 웅변한다. 겉으론 미국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지만, 실제론 극소수 기업 그것도 트럼프 옹호 자본가 이익을 위해 합의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금융계 거물이 왜 박수 쳤는지를 알 수 있다.
합의문에는 미국 금융기관이 중국 금융서비스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알다시피, 중국의 놀라운 성장은 과도하게 높은 부채를 기초로 이뤄졌다. 이제 그 후유증이 본격화하는 시점이다. 중국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마리를 줬다. 이번 합의에서 두드러진 부문은 바로 중국 금융시장 개방이다. 그중에서도 부실채권(NPL) 시장에 미국 기업 접근성을 한층 높인 게 핵심이다. 면허를 받는 게 과거보다 쉬워졌다. 중국은 골칫거리인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자본을 껴안았다.
중국 부실채권 시장은 지방정부와 기업의 부실이 깊어짐에 따라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상업은행이 보유한 악성 부채는 2019년 9월까지 20%나 늘어 2.4조위안에 이른다. 중국 투자자는 보통 부실채권 시장에 3천만달러 정도 투자한다. 문제는 신용공급 제한으로 중국 투자자가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다. 한데 미국 투자자는 보통 1억달러 규모로 부실채권 시장에 투자할 능력이 있다. 중국 처지에선 미국 투자자가 반가운 단비다. 부실채권 시장 수익률은 보통 12~15%다. 미국 투자자 처지에서도 이보다 더 좋은 사업 기회가 없다. 중국 정부와 미국 투자자 모두 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과연 문제는 없을까? 중국 국영은행은 골칫거리인 부실을 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투자자는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가능성은 있다. 다만 중국 위기가 없다는 가정에서다. 위기가 생긴다면 일시적 수익은 천문학적 손실로 바뀔 것이다. 이때 미국 투자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 국가에 구제해달라고 손을 벌릴 것이다. 중국도 이익만 보는 건 아니다. 국영은행은 부실을 털 수 있다. 하나, 중국 차입자 고통은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 청구인은 생각보다 독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부담은 양국 국민 몫이다.

원칙 파괴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이래 미국은 중국을 자유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유도한다는 목적 아래 양국 관계를 설정했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중국은 국가 중심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다. 무역전쟁은 중국이 국가주도 경제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낸다. 이번 협상은 이런 점에서 실패다. 합의로 중국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는 외려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구매 합의가 좋은 예다. 중국 정부가 그 약속을 지킬 방법은 단 하나다. 자국 기업에 미국산을 사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합의는 정확히 국가 통제를 강요한다. 미국이 표면적으로 중국이 포기하도록 그토록 원하는 것을 중국에 강요하고 있다. 어떤 애널리스트는 이 합의를 ‘미국화된 공산주의’의 결과물이라 부른다.
미국은 거대 금융기업과 일부 소수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핵심 원칙을 포기했다. 한마디로, 돈벌이를 최고 가치로 인식한 것이 이번 합의의 골자다. 백악관이 큰 성과로 선전하는 게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 2천억달러를 구매하도록 하겠다는 거다. 경쟁을 위한 공정한 규칙을 만들기보다 사회주의 권위를 이용해 미국산 제품을 파는 걸 성공이라 자화자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본주의 가치인 경쟁 대신 힘을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위적 방식을 좋아한다. 노골적으로 힘을 이용해 상대를 압박한다. 정부의 기업 통제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 결과물이 이번 1단계 무역합의다. 그사이 중국 권위주의 체제 약화라는 미국 목표는 희미해졌다.
새해 벽두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프랑스, 영국이 이란 제재에 협력하지 않으면 시행하겠다는 거다.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자본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무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의 실체는 불행히도 왜곡된 사회주의 방식이다.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 힘이 잘못된 자본 배분을 부르고 있다. 권위주의적 체제가 극소수 이익을 위해 정당화된다. 2020년 세계경제를 어둡게 하는 건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세계경제에 가장 큰 복병은 특정인이 유발한 불확실성과 불신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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