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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묘비명과 삼성 인사
[Focus]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송원근 economyinsight@hani.co.kr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2010년 12월3일 삼성재벌 계열사의 임원인사가 단행됐다. 최고경영진의 진용을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두고 미래를 이끌어갈 젊고 혁신적인 인물을 중용하고, 신성장 동력을 구축한 부사장을 대거 발탁한다는 취지로 단행됐다. 당연하게도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재용의 삼성전자 COO(Chief Operating Officer) 사장 승진과 이부진 전무의 두 단계를 뛰어넘은 호텔신라 사장 승진이었다. 이재용의 그룹 후계자 등극은 불법 비자금 조성과 편법 재산 상속이라는 골칫덩어리 문제가 정권교체와 함께 면죄부를 받으면서 이미 예견됐지만, 이부진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고문에 겸직시킨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인사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과 추측이 있지만, 총수의 속마음을 확인해보지 않는 한 어떤 게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CES)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일가(오른쪽부터 이재용 사장, 이서현 부사장, 이건희 회장, 이부진 사장)

그렇지만 ‘삼성공화국’의 일반 시민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사항을 기록이라도 해두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정리해보자.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삼성재벌이 공식적으로 밝힌 승진 이유에서처럼, ‘이재용과 이부진이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재용은 익히 알려졌듯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의 장본인이고, 2000년대 초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을 이용해 총 16개 정보기술(IT) 관련 계열사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있다 이 계열사들이 적자를 내자 자신이 소유한 지분을 다른 계열사들에 초기 투자액을 상회하는 비싼 가격으로 떠안겨 지분을 인수한 계열사들에 5천억원 넘는 주가 손실을 초래했다. 이재용은 2008년 4월22일 삼성그룹 비자금 관련 특검 이후 경영쇄신의 일환으로 최고고객책임자(CCO) 자리를 내놓고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09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계열사 경영에 복귀했고, 이 짧은 기간의 면피용 경영수업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문의 선행투자를 주도함으로써 시장지배력과 경쟁력을 높이는”(삼성그룹이 발표한 12월3일 ‘임원인사 보도자료’) 게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예상 뛰어넘은 이부진 사장 승진
이부진도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는가? 표면적으로만 보면 호텔신라의 매출액은 2009년 3분기보다 24.7% 늘어난 3903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46.32%, 30.44% 증가했다. 그러나 이 영업실적 호전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엔화와 위엔화 때문에 일본과 중국 관광객 수요가 증가했고 신종플루 소멸로 인한 여행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따라서 이부진의 중용은 이재용에게는 삼성의 핵심 계열사를 맡기고 이부진에게는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의 식품·레저 사업을 그룹에서 독립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지분 정리가 필요한데 이번 인사가 있기 전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긴 이학수 고문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학수는 과거 이재용의 편법 주식 상속을 주도한 인물로서, 이번 인사로 승계 구도가 사실상 결정된 상태에서 3세들 사이의 지분 정리를 매끄럽게 해내는 인물이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사장의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에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등의 소송건도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상장을 통해 삼성차 부채 관련 문제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또 다른 의심은 2010년 11월19일에 발표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신설에 있다. 그룹 비서실로 출발해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본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2006년 전략기획실로 전격 개편됐으며, 2008년 7월 삼성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를 계기로 해체됐다가 살아난 조직이다. “과거 전략기획실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미래 신성장 사업을 발굴하면서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미래전략실은 그동안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있던 투자심의·브랜드관리·인사 위원회를 ‘미래전략위원회’로 통합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구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로 미래전략실 6개 팀의 팀장 중 김명수 전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과거 전략기획실 또는 구조조정본부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래전략실이 신성장 사업 발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자 이재용의 계열사 지배권을 확보하고 유지해 ‘관리의 삼성’을 지속하기 위한 조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삼성재벌 지배구조의 변화다. 원론적 얘기지만, 재벌체제의 지배구조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오너 및 자손(친인척)이 극히 적은 지분을 가지고 그 기업뿐만 아니라 적게는 수 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에 이르는 계열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 4월1일 현재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고 이는 이건희의 3.38%보다 훨씬 더 적다. 삼성 전 계열사를 살펴보아도 이재용은 삼성에버랜드 25.1%, 삼성SDS 8.8%를 소유한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이재용이 67여 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군림하며 통치하는 삼성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계열사 간 순환출자 때문이다. 삼성의 경우 순환출자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고객이 맡긴 돈을 주요 자산으로 하는 금융계열사가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제도적 측면에서 지배구조 개선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시행되는 정도에 달렸다. 이 제도들이란 사외이사제, 이사등재 현황, 이사회 내 여러 위원회(감사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 등) 설치, 집중투표제나 서면투표제의 시행 등이다. 그런데 2010년 12월에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공개 현황에 따르면, 2010년 4월1일 현재 삼성 재벌 67개 계열사의 (등기)이사 324명 중에 동일인이나 친족, 즉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수는 한 명도 없다. 이재용과 이부진, 이서현 역시 비등기이사다. 이는 얼마 되지 않은 총수 일가의 지분과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하고, 계열사 전체에 대해 막강한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회피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기업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의결권 관련 집중투표제나 서면투표제도 삼성 재벌 18개 상장기업 중 하나도 없다.
 
삼성 계열사, 총수 일가 등기이사 전무
지배구조의 변화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사항은 향후 삼성그룹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이다.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재벌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논의되면서 삼성도 여러 가지 변신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당시 재벌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삼성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금산분리 원칙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하여 그룹을 분할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삼성이 제조업과 금융업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며, 또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금산법(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고, 삼성생명이 상장된 현재 금산법 규제를 이행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 역시 적잖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은 어떤 형태로든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게 좋은지는 현재 이건희나 삼성에도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금산법 실행 뒤 현 체제를 유지하거나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쪽이라기보다는 금융과 산업을 동시에 지배하는 안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 당장은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예를 들어 삼성에버랜드가 일반 지주회사를 통해 제조업을 지배하고 동시에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다. 아니면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지주회사를 설립해 그 아래 제조업 계열사들과 비은행지주회사를 지배하고, 비은행지주회사가 다시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지배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 지주회사 간 합병 등이 활발하게 될 수도 있다.
이병철 회장이 사망할 당시 신문을 보면 이런 기사가 실려 있다. “베일 속에 만능제왕처럼 군림하던 그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었다. 골프 잘 치기, 후계자 선정, 자기건강 관리 등.” 2011년 이건희 회장에게는 여기에 또 하나의 숙제가 안겨진 셈이다. 어떻게 하면 지배권을 가장 적게 잃으면서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를 멋지게 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보면 1996년 편법에 의한 재산 상속은 ‘나이스’하지 못한, 삼성답지 않은 서투른 행동이었다. 전 계열사가 후계자 상속을 위해 온 힘을 쏟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법원이 발부한 면죄부 한 장과 글로벌 기업 삼성의 경쟁력 상실이었다. 삼성이 신수종 사업 운운하며 신성장 동력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병철 회장의 유언 또 안 지켜져?
용인자연농원 내 이병철 회장의 묘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자 노력을 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보면서 이 묘비에 새긴 말이 또 한 번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삼성과 삼성에 길들여진 언론은 경영자로서 이재용에 대한 찬사와 삼성의 가업잇기를 가능하게 하고 정당화하는 기사를 약속이나 한 듯 쏟아낼 게 분명하다. 삼성의 약속 불이행과 불법의 정당화가 어디 몇 번뿐이겠느냐마는 이 약속 불이행은 우리나라 기업들뿐만 아니라 경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병들게 하는 불행의 전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swg@jin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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