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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줄이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박중언의 노후경재학]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자대책위원회와 금융정의 연대 회원들이 2020년 2월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우리·하나은행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부실한 자율 배상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연합뉴스

노후자금이라고 하면, 어떻게 불릴지를 먼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돈이 허투루 새나가는 구멍을 막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면, 골을 넣는 것 못지않게 실점을 줄여야 이긴다. 써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가는 대표적인 돈이 이자다. 빚을 잔뜩 짊어진 채 소득이 끊기는 퇴직을 맞으면 죽을 때까지 이자를 갚느라 허덕일 수밖에 없다. 경기순환으로 언젠가는 닥칠 금리 인상기가 되면 치명적 타격을 입을 위험도 있다.
퇴직 이전에는 이자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모아놓은 돈이나 연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때에 이자를 은행에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 것은 몹시 애석한 일이다. 대출이자는 언제나 예금이자보다 높다. 맡긴 돈 이자는 쥐꼬리만 하지만 대출이자는 허리가 휠 만큼 무겁다.
나이 들어서는 투자를 고민하기 전에 빚을 줄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빚은 되도록 빨리 없애는 것이 정답이다. 퇴직이 다가올수록 더 신경 써야 한다. 철저한 빚 관리는 가계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가계파산 위험을 제거하는 안전판이다.

‘부채 폭탄’ 피하기
빚내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현금 흐름이 막혀 마이너스통장 같은 단기 소액대출을 활용하기도 하고, 주택이나 주식을 사기 위해 큰돈을 빌릴 때도 있다. 퇴직자에게 가장 흔한 빚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자영업 대출이다. 연간 수십%의 ‘달러이자’가 붙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성 채무는 아니다. 하지만 빚 덩치가 크다. 자칫 노후에 쪽박 차게 만드는 시한폭탄이 될지 모른다.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이미 15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에 육박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중국 다음으로 빠르다. 그만큼 ‘부채 폭탄’이 터질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집값 폭등으로 너도나도 주택 구입에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강도 높은 대출 규제에도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은행과 보험사는 돈을 빌려 쓰라고 아우성이었다. 중견기업 D부장의 서울 마포 지역 아파트 우편함에는 대출을 종용하는 전단이 넘쳐난다. D부장은 수억원대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원리금을 상환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금리가 낮은 시기인데도 월급의 30%는 빚을 갚는 데 들어간다.
집값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도한 대출에 기대 집을 산 사람이라면 대출 축소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출금리가 5%만 되어도 대출금 1억원에 이자만 월 40만원 넘게 내야 한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집값 급락과 이자 폭등의 쓰나미에 휩쓸려 노후 보금자리마저 날릴 위험이 있다. 이와 함께 중장년 창업이 많은 자영업 부문의 대출 규모가 600조원이 넘었고, 연체율도 10% 이상이다.

작은 빚이 무섭다
이런 큰 빚보다는 오히려 작은 빚에 둔감하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신용카드다. 카드 사용을 그냥 지출이라고 여길 뿐, 빚내서 소비한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미국 같은 소비 대국에서는 신용카드가 가계파산 주범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 카드빚을 카드로 돌려막고, 현금서비스 이용이나 연체가 시작되면서 악순환이 가동된다. 신용등급이 중간 정도인 사람의 연체와 현금서비스 이자율은 20%가 넘는다. 일반 정기예금 이자의 10배다. 더욱이 신용등급이 떨어져 앞으로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빚을 줄이는 데는 우선순위가 있다. 소득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므로 체계적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해소해가야 한다. 빚 현황과 성격 파악이 먼저다. 갚기 힘든 상황이라면 덜 나쁜 빚으로 갈아타는 것도 중요하다. 이자율이 수십%에 이르는 사금융이나 대부업체의 사채 상환이 최우선 과제다.
다음은 연체된 카드빚이나 현금서비스, 리볼빙이다. 카드대금 납부를 늦춰주는 리볼빙은 할부와 달리 연체 수준의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 이 셋은 이름만 다를 뿐 다 같은 악성 카드대출이다.
그다음이 저축은행 대출이다. 은행 대출도 연체되는 순간 이자가 급등하고 신용등급이 추락한다.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다. 마이너스통장은 손쉽게 쓸 수 있는 대신 일반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높다. 빚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또 빚을 갚는 방식에는 원금균등상환, 원리금균등상환, 만기일시상환이 있다. 힘들더라도 이자만이 아니라 원금도 갚아나가는 것이 이자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나이 들어 ‘착한 빚’이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소득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는 퇴직을 앞둔 사람에겐 낯익은 용어다. 직장을 떠난 뒤 국민연금이 나오기까지 근로소득이 없는 시기를 말한다. 빚이 늘어나기 쉬운 시기다. 옛날의 보릿고개에 비유할 만하다. 지금은 정년퇴직해도 바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 1963년생인 중견기업 P부장은 만 60살인 2023년이 정년이다. 국민연금은 3년 뒤인 2026년부터 지급된다. 1965~68년생은 64살, 1969년생부터는 65살로 지급 시기가 늦춰진다.

소득 크레바스를 넘는 법
3년의 소득 공백기를 넘기는 것이 P부장 과제다. 50대 초반쯤 회사를 떠난 친구들에 견줘서는 사정이 한결 나은 편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벌이가 좋은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그나마 두툼한 명예퇴직금이 위로가 된다. 퇴직 뒤 촉탁 근무로 소득 공백기를 줄이는 사례도 있다. 은행 지점장을 지낸 B씨는 명퇴 직후 9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은 뒤 은행이 허용하는 촉탁직 근무기간을 모두 채울 생각이다.
재취업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소득 공백기를 넘길 자금 계획이 필요하다. 퇴직금을 활용하거나 별도 저축을 해야 한다. P부장처럼 그 기간이 3년이라면, 퇴직 3년 전부터 달마다 ‘퇴직 뒤 생활비’를 따로 통장에 적립하는 게 좋다. 이 시기는 근로소득과 더불어 지출이 가장 많은 때다. 그런 만큼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자금관리를 하면 소득 크레바스를 건너기 훨씬 쉬울 수 있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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