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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쌀, 재스민 라이스처럼
[세계는 지금] 캄보디아
[118호] 2020년 02월 01일 (토) 신종수 jongsoo.shin@kotra.or.kr

신종수 KOTRA 캄보디아 프놈펜무역관 관장(농학박사)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쌀을 팔고 있다. 캄보디아 쌀 ‘재스민 라이스’는 수차례 세계 최고의 쌀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동남아 여행자가 많아지면서 여행에서 맛본 현지 음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조리법을 공유하고,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 정보를 교환하며, 직접 요리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었다.
현지에서 먹은 볶음밥은 밥알 하나하나 따로 볶은 듯 재료의 향과 맛이 배어 있다. 볶음 요리는 푸석푸석하고 찰기가 없지만 구수한 흰 쌀밥 위에 올려 먹으면 양념이 배어 조화롭고 풍부한 맛이 났다.
귀국한 뒤 모닝글로리, 레몬그라스, 바질 같은 식재료와 향신료를 구해 현지에서 느꼈던 맛을 기대하며 바로 지은 밥과 함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먹어보면, 뭔가 비슷하기는 한데 그 맛이 안 나서 아쉽다.
 
다른 쌀 다른 맛
이런 맛 차이를 가져오는 큰 이유는, 밥을 짓는 쌀이 달라서다. 우리가 평소 먹는 쌀은 자포니카 쌀이다. 짧고 통통하며 찰기가 많고 윤기가 흐르는 쌀 종류다. 동남아에서 먹는 쌀은 인디카 쌀이다. 길고 홀쭉하며 찰기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한국, 일본, 중국 일부 지방에서 자포니카 쌀을 먹고, 그 외 나머지 지역에선 대부분 인디카 쌀을 먹는다. 전세계에서 생산된 쌀 비중을 보면 자포니카 쌀은 10%, 인디카 쌀은 90% 남짓 된다. 매일 전세계 사람 식탁에 오르는 밥 열 그릇 중에 아홉 그릇이 인디카 쌀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인디카 쌀을 안남미(安南米)라고 많이 불렀다. 안남은 중국 당 태종 때 안남도호부가 설치된 베트남 중부 지역 이름이다. 1900년대 일제의 수탈과 가뭄으로 쌀이 부족하고 가격이 폭등하자, 1903년 이용익 선생이 베트남 안남 지역에서 쌀을 수입한 것이 계기가 돼 인디카 쌀을 부르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엔 맛과 향이 다른 안남미에 거부감이 높아 수입쌀을 먹으면 혼이 나간다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쌀의 찰기는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이라는 성분 비율로 결정된다. 두 성분 중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을수록 찰기가 많아진다. 찹쌀은 아밀로펙틴 함량이 100%에 가깝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쌀은 그 함량이 80~85%, 자포니카 쌀은 70~80%다. 우리가 먹는 쌀보다 인디카 쌀의 찰기가 덜한 이유는 아밀로펙틴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은 몸속에서 소화되는 시간에도 차이가 나는데, 아밀로스 함량이 높을수록 소화가 빨리 된다. 동남아에서 밥을 먹으면 배가 쉽게 꺼진다고 느끼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밀로스 함량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쌀
매년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쌀 5억여t이 생산된다. 그중 중국이 1억4천만여t(2019년 기준)으로 1위, 인도가 1억1천만여t으로 2위다.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의 중국과 인도가 전세계 쌀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주요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5위, 타이는 6위, 캄보디아는 13위 쌀 생산국이다. 쌀을 가장 적게 생산하는 국가는 소말리아와 브루나이로 각 1천t을 생산한다. 매년 370만여t을 생산하는 한국은 16위 규모다.
쌀을 수출입하는 40여 개국이 참가해, 매년 세계 최고의 쌀을 가리는 대회(World Best Rice Contest)가 열린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수상 내용(공동 수상 포함)을 살펴보면, 미얀마 포산 라이스와 베트남 ST25 라이스가 각 1회, 미국 캘로즈 라이스가 2회, 타이 재스민(홈말리) 라이스가 4회, 캄보디아 재스민 라이스가 4회 수상했다. 이렇듯 수차례 세계 최고의 쌀로 선정된 캄보디아 쌀은 인디카 쌀 중에서도 고급 쌀로 꼽힌다.   
 
누룽지와 팝콘 향기
캄보디아의 재스민 라이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향기가 나는 쌀이다. 타이에서 재배된 홈말리 라이스가 그 원조다. 현재 재스민 라이스는 주로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에서 재배된다. 또 다른 인디카 쌀인 바스마티 라이스는 주로 인도 요리에 쓰인다. 길고 찰기가 가장 적어 인도 커리에 어울린다. 손으로 먹기에 적합하다. 재스민 라이스는 바스마티 라이스보다는 덜 길지만 찰기가 있어 다양한 요리에 어울린다. 이에 고급 쌀로 인식되면서 전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가격이 비싼데도 수출량이 매년 늘고 있다.
재스민 라이스로 밥을 하면 구수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져 자꾸 밥솥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재스민 라이스 향기를 내는 성분은 2-acetyl-1-pyrroline이다. 어떤 사람은 이 향기를 누룽지 향, 어떤 사람은 팝콘 향으로 느끼기도 한다. 밥을 퍼서 그릇에 담으면 우리나라 쌀과 달리 푸석푸석해 보이지만, 다양한 요리와 함께 먹으면 요리 향과 간이 잘 배어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게 된다. 
프랑스어에 마리아주(Mariage)라는 말이 있다. 영어의 ‘결혼’을 뜻하는 매리지(Marriage)와 같은 단어인데,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또는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뜻하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그래서 어떤 와인을 마실지 선택할 때 어떤 음식과 함께 먹을 것인지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다. 마리아주는 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요리가 다르면 어울리는 쌀도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쌀이 우리 음식에 어울리듯, 동남아 음식에는 동남아 쌀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수가 120만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019년 11월 말 기준 한국에 들어온 캄보디아 노동자는 7만4천여 명이다. 2019년만 해도 약 7500명의 캄보디아 젊은이가 한국에 취업차 입국했다. 필자가 캄보디아에 오기 전 근무했던 미얀마도 많은 자국 노동자를 매년 한국으로 파견한다. 이제는 국제결혼도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 캄보디아, 인도,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밥짓기 명인의 도움을 받아 가마솥 밥을 짓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자포니카 쌀을 먹는데, 캄보디아에서 생산·유통되는 인디카 쌀과 맛과 향이 다르다. 연합뉴스
다양성의 사회 
최근 식생활 다양화와 다문화 사회로의 빠른 전환에 힘입어, 국내에서 재스민 라이스 소비가 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과 아시안 마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재스민 라이스를 구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다양한 동남아 음식 요리법 동영상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찰기가 있어야 좋은 쌀이라는 기준이 변하고 있다. 소화가 잘되는 쌀, 영양가가 높은 쌀, 향기가 좋은 쌀, 다양한 외국 요리에 어울리는 쌀 등 사람의 취향만큼 다양한 쌀 수요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쌀 소비가 줄어드는 반면, 좋은 종자와 세계 최고의 재배 기술 덕에 재배면적이 줄어도 쌀 생산량이 줄지 않아 매년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캄보디아에서도 쌀 생산량이 많은데, 남는 쌀을 수출해서 외화를 벌고 있다. 
우리나라 쌀은 비싸 수출이 어렵다. 게다가 다른 나라 사람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수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쌀의 소비는 매년 줄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지 않는 쌀은 소비가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주국과 최대 수출국
우리나라는 고려인삼 종주국으로, 세계 최고 품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삼 제품의 최대 수출국은 우리나라가 아닌, 인삼을 한 뿌리도 생산하지 않는 스위스다. 스위스의 한 기업이 인삼에서 추출한 사포닌을 캡슐 형태 건강보조식품으로 만들어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2019년 우리나라 전체 인삼 수출액이 1억8천만달러 남짓인데, 스위스 기업의 인삼 제품 매출액은 약 3억달러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쌀에 관해서는 품종, 재배, 정선, 식품 가공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이 있다. 스위스 기업 사례에서 보듯, 기술 사업화로 재료 한계를 넘어 세계시장을 석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쌀을 재료로 쓰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쌀을 재료로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세워볼 필요가 있다. 
오늘도 퇴근길 식당에서 풍기는 구수한 재스민 라이스 냄새를 맡으며 우리 쌀에 기술을 접목해 만든 다양한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대한민국이 쌀 제품의 주요 수출국으로 등극하는 행복한 꿈을 꾼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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