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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쓸 때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정혁준의 비지니스 글쓰기]
[118호] 2020년 02월 01일 (토)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 이미지투데이

1990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던 엘리자베스 뉴턴은 간단한 놀이 실험을 연구한 논문으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 뉴턴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쪽 그룹에는 노래를 고른 뒤 리듬에 맞춰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게 했다. 다른 그룹에는 두드리는 것을 듣고 어떤 노래인지 맞혀보도록 했다. 노래는 유행가나 미국 국가처럼 누구나 아는 25곡 가운데 고를 수 있었다.

뉴턴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상대방이 답을 맞힐 확률을 물었다. 대답은 50%였다. 하지만 실험에서 두드린 노래는 120곡이나 됐지만, 듣는 사람이 노래를 맞힌 비율은 2.5%에 그쳤다. 두드린 사람은 120곡 가운데 60곡 정도를 맞힐 거라고 기대했지만, 듣는 사람은 단 3곡밖에 맞히지 못했다.
왜 이렇게 기대치에 어긋난 결과가 나왔을까? 직접 친구나 연인과 한번 해보시라. 소녀시대 노래 <지>(Gee)에 맞춰 책상을 두드려보라. 머릿속에는 익숙한 멜로디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당신 머릿속에 맴도는 그 멜로디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들에겐 그저 ‘탁탁’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노래를 떠올리며 탁자를 쳤는데, 듣는 사람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낼 것이다. 당신이 치는 김동률, 김광석, 김건모, 방탄소년단, 안치환의 노래에 상대는 무반응의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예감이 빗나가면서 어쩌면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이렇게 쉬운 노래를 못 맞히다니, 바보 같네!’
당연히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두드리는 사람은 정보를 안다. ‘노래 제목’이 바로 정보다. 듣는 사람은 정보가 없다. 그런데도 두드리는 사람은 나처럼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처럼 ‘지지지~’ 하며 흥겨운 노래가 머릿속에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단조로운 소음만 들린다.
바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다. 내가 아는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나타나는 ‘인식 왜곡’(Cognitive Bias)이다.
 
글쓰기에도 ‘지식의 저주’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지식의 저주로 내가 쓴 문장이 명확하지 않은 글이 된다. 나는 이렇게 썼는데, 다른 사람은 저렇게 이해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생각이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마음이나 행동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분명하게 쓰지 않은 문장은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간결하게 명확하게 쓰는 거다. “그는 도서관 옆에 산다. 그는 책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문장을 보자.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도서관 옆에 살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도서관 옆에 살아 ‘책을 보기에 거리가 가깝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논리학에서 이런 문장은 ‘애매어의 오류’라고 한다.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용어를 써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 공연에 가서 RM과 슈가의 형을 보았다”는 문장을 보자. RM과 슈가의 형을 만났는지, RM의 형과 슈가의 형을 만났는지 헷갈린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스파게티를 요리할 때는 양파와 감자, 홍당무를 적당한 크기로 송송 잘라 뜨거운 불에 적당한 양의 물과 함께 잘 섞으세요. 소스를 만들 때는 치즈는 좋은 걸 사용해서 너무 많지도 않게 적당한 양만큼 넣으세요.” 모호하다. 적당한 크기는 얼마만 한지, 적당량은 얼마큼인지, 많지도 않게 적당한 양이 얼마인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이런 조리법으로는 아무리 유명한 세프도 맛난 스파게티를 만들지 못한다.
명확하게 쓰라는 말은, 의미가 잘 드러나게 쓰라는 얘기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쓰라는 말이다. 누가 읽든 같은 뜻으로 이해하게 글을 쓰라는 것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써라
간결한 문장과 명확한 문장은 가끔 충돌한다. 간결한 문장은 경제성을 따진다. 최소 분량으로 의미를 최대한 표현해 쓰는 글이다. 명확한 문장은 내용을 쉽게 풀어주고 거듭 설명해주면 훨씬 더 좋아진다.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를 보자. 간결한 문장에는 생략하는 게 낫다. 명확한 문장에는 들어가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쓰라는 얘기인가? 대안은 있다. 초고를 쓸 때는 명확한 문장으로 써라. 퇴고할 때는 간결한 문장으로 써라. 초고가 되도록 많은 것을 보여준다면, 퇴고는 군더더기를 없애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결하게 글을 썼더라도 문장이 모호하면 헛수고다. 명확한 문장은 글쓰기 기본이다. 그래야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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