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구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 교수(경영학)
 
 요즘 ‘사과’가 화제다. 먹는 사과가 아니라 미국 회사인 ‘애플컴퓨터’(이하 애플) 말이다. 서양에는 사과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과학에 관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뉴턴의 사과와,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며 화살을 쏘았던 윌리엄 텔의 사과,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금사과’ 등 내용도 다양하다.
 ‘황금사과’의 줄거리는 이렇다. 불화를 상징하는 여신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Tei Kallistei)라고 새겨진 황금사과를 신들에게 던져놓았다. 그러자 헤라·아테네·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며 황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이를 판단해줄 사람으로 패리스를 지목한다. 세 여신은 각자 패리스에게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호소한다. 헤라는 ‘절대권력’을, 아테네는 ‘무한한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사랑’을 얻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패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지목한다. 이로 인해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게 됐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 뒤 사람들은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이유로 황금사과를 ‘불화의 사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황금사과는 한편으론 세 여신이 참여한 경쟁을 나타낸다. 그럼, 패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프로디테가 패리스에게 약속했던 것은 사랑, 곧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였다. 다시 말해 패리스는 혼자 지닐 수 있는 힘이나 지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진정한 마음을 선택한 것이다. 에리스가 만들어놓은 경쟁에서 승리한 여신 아프로디테는 패리스에게 진정한 마음을 얻게 도와준 것이다.

애플의 신기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놀라운 것은, 이 오래된 이야기가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황금사과 신화를 오늘날 기업 상황에 어렵지 않게 대입해볼 수 있다. 에리스가 벌여놓은 황금사과를 위한 싸움은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는 장이며, 경쟁에 참여했던 세 여신은 각축을 벌이는 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이며, 패리스는 그 기업을 선택한 소비자다. 그럼 아프로디테가 패리스에게 제시한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애플을 통해 좀더 생각해보자.

 황금사과에 담긴 경쟁 원리 

 애플은 2000년대 들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특히 아이팟에 이어 개발된 아이튠은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흔히 애플이 가져온 변화를 정보기술(IT) 산업 차원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애플은 ‘기업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먼저 아이튠을 보자. 아이튠은 음악이나 영상을 다루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아이튠이 사용되기 전 미국 사회에는 ‘음악파일 불법복제’라는 큰 문제가 있었다. 수년 전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 대학생 가운데 60%가 넘는 학생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음악파일을 불법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미국음반협회(RIAA)에서는 전세계 음반산업에서 발생한 손실액이 매년 125억달러(약 14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더 심각한 일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 갈등이었다. 급기야 음원을 보유한 음반업체들이 불법복제하는 소비자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유야 어찌됐든 기업이 소비자와 잠재적 소비자를 고소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음반산업자들은 고객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골칫거리에 대안을 제공한 것이 바로 아이튠이다. 음악파일과 관련된 소비자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 노래 한 곡을 즐기기 위해 12~15달러 하는 앨범을 통째로 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튠을 통하면 99센트에 노래 한 곡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음원을 구입하게 됐다. 애플은 아이튠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나아가 디지털 음원으로 야기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 6개월 동안 아이맥, 아이패드, 아이팟을 차례로 구입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9년 초까지 거의 20년을 오직 윈도 프로그램만 고집한 내가, 최근 불과 6개월 만에 애플 마니아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놀란 점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무료라는 것이다. 얼마 전 애플은 오퍼레이팅 시스템의 새 버전인 ‘iOS 4.2’를 내놓았다. 기존 아이팟이나 아이패드에 이 버전을 설치하면 ‘페이스타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페이스타임을 통하면 아이팟·아이폰·아이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모두 무료다!
 마이크로소프트랑 비교해보자. 최근 필자의 직장 동료들은 컴퓨터에 ‘윈도7’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상당한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게다가 혹시 모르니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을 백업하란다. 무지하게 귀찮다. 반면 애플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데, 놀랍게도 무료로 해준다. 어떤 소비자가 애플에 매혹되지 않겠는가! 애플은 사용자가 원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딱 집어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애플로 바꾼 이유 

 아이패드가 가져온 아름다운 효용도 빼놓을 수 없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이패드는 엄청난 효용을 가져다준다. 근육에 힘이 있는 어른들은 병상에 누워 있더라도 컴퓨터나 다른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지만, 몸이 불편한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그냥 만지기만 하면 된다. 이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이나 장애인에게는 희소식이다.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만지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컴퓨터보다 가격도 싸다. 매사추세츠주 출신 에드워드 마키 하원의원은 아이패드 같은 도구가 더욱 널리 사용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애플이라는 회사는 그냥 자기 사업을 했을 뿐이다. 사회공헌을 한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대지 않았다. 사업과 관계없는 분야에 기부금을 냈다고 자랑한 것도 아니다. 사실 애플은 여러 측면에서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애플은 생산단가를 쥐어짜기 위해 아웃소싱을 한다. 애플 제품을 사면 ‘디자인드 인 캘리포니아, 어젬블드 인 차이나’(Designed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다.
 또한 애플은 환경운동가들과 오랫동안 앙숙이다. 몇 해 전에는 전 미국 부통령이자 환경운동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앨 고어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환경운동단체랑 맞짱을 뜨기도 했다(하지만 애플은 제품 포장을 아주 작게 하거나 내용물에 군더더기를 없애는 미니멀리즘으로 쓰레기양을 줄이는 데 나름 일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애플은 아이튠, iOS,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자기 사업에 충실하면서, 소비자에게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애플의 사례는 우리에게 이해관계자에 대한 바람직한 전략틀을 제시한다. 전략을 정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기업 외부에 있는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위협을 최소로 억제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전략도 마찬가지다. 주요 이해관계자인 주주·소비자·종업원·공급자와의 관계를 올바로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전략을 궁리해야 한다. 기업마다 주요 이해관계자 모두가 중요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전략은 대략 다음 세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요 이해관계자인 주주·소비자·종업원·공급자에 대한 중요도를 파악해야 한다. 흔히 주주가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다양하다. 보통 기업 제품을 이용하고 기업에 수익을 제공하는 소비자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아프로디테가 패리스 덕분에 황금사과를 얻었듯이, 애플 제품이 소개될 때마다 애플 마니아가 늘어나듯이, 소비자에게 선택받은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종업원이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될 수도 있다. 미국 항공업계 승객 동원 수에서 2007년 1위, 2008년·2009년 2위를 차지한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그 경우다. 사우스웨스트는 이익이 나면 가장 먼저 종업원에게 성과급으로 배분한다. 그 뒤에 남는 이익으로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이 정책으로 사우스웨스트는 주주 및 투자자들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다.

 소비자를 적으로 만들지 마라 

 둘째, 기업은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흔한 오류 가운데 하나가 이해관계자 집단을 아군과 적으로 나눠버리는 이분법이다.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는 기업에 협조하는 동시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주주들은 언제든지 주식을 팔아버릴 수 있고,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사를 보여 위협이 될 수 있다. 종업원 또한 늘 협조하는 대상은 아니다. 소비자는 항상 더 좋은 품질에 싼 가격을 찾아 움직인다. 따라서 소비자는 잠재적 위협 요인을 지녔다. 애플은 소비자가 지닌 잠재적 위협을 열광과 환호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경우다. 반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문제로 잠재적 소비자를 고소하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불편하게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잠재적 위협을 오히려 배가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마지막으로 주요 이해관계자에 대한 전략을 만드는 단계다. 특히 이 단계에서 기업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여러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때때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해관계자 또는 경쟁자와 협조할 수도 있다. 애플은 컴퓨터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음악산업을 이용해 아이튠을 성공시켰다. 아이패드도 신문·잡지·방송을 포함한 매스미디어 산업과 제휴해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창의력과 현실에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실용성이라고 하겠다.
 애플은 우리 시대 황금사과를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애플이 아름답다고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옛날 패리스가 아프로디테가 제시한 약속을 받아들인 것처럼, 애플은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 게 아닐까? 애플에게 주요 이해관계자는 소비자며, 애플은 제품을 팔면서 소비자에게 즐거움과 행복도 제공했다. 바로 여기서 기업이 결코 이익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재무성과나 주주 이익은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결과 또는 여러 목표 중 하나이지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없다. 애플 주가를 보라. 아이팟이나 아이패드가 성공 궤도에 오르면서 주가 또한 엄청나게 오르지 않았나. 그보다 먼저 애플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만족과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기업 책임도 이와 다를 게 없다. 기업 윤리나 기업 책임은 주요 이해관계자와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사업에 몰두하면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이제구는 미국 시카고대학과 워튼스쿨에서 공부하고 보스턴칼리지(BC)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기업윤리학회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 등 기업윤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여러 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