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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역할 획기적 강화 필요
[COVER STORY] 신 3저 시대를 사는 법- ① 저성장의 늪
[117호] 2020년 01월 01일 (수) 노현웅 goloke@hani.co.kr

노현웅 <한겨레> 기자

   
▲ 2019년 12월1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 부처 합동브리핑에서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세밑 기획재정부에선 주요 간부들이 재정관리국 재정집행관리 과장을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정집행관리과는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지 점검해 예산 집행을 관리하고 독려하는 부서다. 수조원대 예산을 편성하거나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부서에 견줘 다소 한가한 부서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9년 경제성장률이 1.9~2.0%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면서 이 부서에 눈길이 쏠렸다. 민간의 성장 기여도가 바닥을 친 지금, 2019년 예산의 이·불용액을 최소화하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2.0% 성장률 달성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2019년 성장률이 2%대로 올라서든, 아니면 우려대로 1%대로 추락하든 경제 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1960년대 산업화가 진행된 뒤 지금까지 한국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때는 △제2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1.7%)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1998년(-5.5%)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세 차례뿐이었다. 특히 2019년처럼 외부에서 닥친 ‘경제위기’ 없이 2%에 턱걸이하는 저성장을 고민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전략이 근본적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위기 담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전례 없는 저성장
2019년 저성장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겹쳤다. 먼저 세계경제 부진이 컸다. 제조업 둔화 등의 영향으로 2017년 5.7%이던 세계 교역량 증가율이 2018년 3.6%, 2019년 1% 안팎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인 한국에는 수요 부진 여파가 곧바로 닥쳤다. 특히 ‘슈퍼 사이클’을 누리며 최근 2~3년 한국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 단가 하락과 수요 감소는 큰 충격을 줬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19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액이 전년보다 12.8%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대외 경제 여건이 부진한 가운데 세계경제를 이끄는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다툼은 한국 경제를 그로기(강타로 비틀거리는 상태)에 빠지게 한 결정타가 됐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2018년 미국이 중국산 818개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본격화했고, 2019년 5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율을 25%로 올리며 전방위로 퍼졌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제조업 강국과 분업 구조를 만들며 성장했다. 산업구조와 환율 등이 중국 경제와 동조화됐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베이징에 불어닥친 찬바람은 한국 경제에 눈보라를 일으킨 셈이다.

일본형 복합 불황?
대외 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동안 경기순환기도 공교롭게 하강 국면에 들어갔다. 국가 경제는 한 단계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상승(확장)과 하강(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성장한다. 한국 경제는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경기 하강기에 접어들었다. 2013년 3월 저점에서 시작한 ‘제11순환기’다. 고점까지 경기 상승기가 54개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2~3년 동안은 경기 수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 등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을 늘리는 정책 효과로 민간소비 증가율이 모처럼 상승세를 보였지만, 경기 수축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했다. 더구나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저축이 늘고 소비 성향이 떨어지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에 따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경제 전망 속보치를 발표할 때마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한국금융연구원을 비롯해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등은 2019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 후반으로 예상했다. 국외 투자은행은 더 비관적이다. 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는 각각 1.6%, 1.7%로 예측했다. 2019년 7월 전망치를 2.2%로 낮춘 한국은행도 4개월 만인 11월 2.0%로 낮춰 잡았다.
일각에서는 현재 저성장 국면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장기 불황과 비교한다. 소비자물가 증가율이 2019년 9월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데다, 국민경제의 종합적인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GDP디플레이터도 2018년 4분기(-0.1%) 이후 네 분기 연속 하락했다. 경기 급락이 저물가와 결합하는 ‘복합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기획재정부는 이런 디플레이션 진단에 선을 그으며, 경기를 반등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먼저 정부 총지출을 2020년 9.5%에 이어 2021년 9.1% 늘리며 경기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재정 운용의 불문율도 깼다.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6%에 이를 전망이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경기 수축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재정을 밀어줘야 한다. 물이 철철 넘쳐 산업의 싹이 돋아나도록 예산안을 짰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적 경기 부진을 관측하는 주요 국제기구의 권고와 인식을 같이한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불황을 극복하려면 약간의 과열은 감수할 정도의 강력한 거시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확장적 재정과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부진의 늪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다.

   
▲ 서울의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손님들이 저렴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불황형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 엔진 살리기
정부는 성장 전략의 궤도 수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뒤 10년 동안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7.9%에서 2.2%로, 5.7%포인트나 급락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의 2%포인트 남짓 하락과 비교하면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 체계의 효율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 둔화도 심상찮다. 2001~2005년 평균 잠재성장률(5.1%)에서 2.2%포인트 기여도를 차지하던 총요소생산성은 2016년 이후 절반 이하(0.9%포인트)로 떨어졌다. 노동시장 경직성, 혁신성장 부재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잠재성장률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5.1%에 이르렀던 잠재성장률은 점진적으로 하락해 2019년 2.5~2.6%에 머물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정부는 2020년 중점을 두고 추진할 정책으로 경제·사회 구조개혁을 상정했다. 연공급 중심의 경직적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한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신산업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도 만들어가기로 했다. 기존 규제와 제도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신산업이 태동해 이해관계자 대립이 생기면, 이익 공유 협약을 체결해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는 등 사회적 타협의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급격한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15~64살) 감소 등 인구구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2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민간과 공공, 민자사업을 합쳐 100조원대 투자를 발굴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불확실성에 지갑을 닫는 민간부문 경제성장 기여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대 15조원 규모 민간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울산의 석유화학공장, 인천의 복합쇼핑몰 등이 유력한 후보다.

공공성 재정립
그러나 이 정도 대책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 활력이 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여건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미-중 무역분쟁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중국 경기 둔화가 심해질 우려도 있다. 국내에선 2018년부터 시작된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10년 동안 약 26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경제가 경험하지 못한 ‘축소사회’로 이행하는 데 순조롭게 적응하는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많은 전문가는 공공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산·소비·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인구 증가가 전제돼야 하지만, 각자도생에 내몰린 시민이 ‘출산 파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형 경제성장에 골몰한 정부가 공공 역할을 사실상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경제성장 외형을 만드느라 출산과 양육, 교육과 주거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개인 책임으로만 밀어냈다”며 “공공부문이 이런 역할을 맡아줘야 개인이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고,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숙제인 저출산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인 저출산 개선과 생산성 제고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과감한 재정 운용을 주문하고 싶다”며 “기존 복지제도에 예산을 좀더 투입하는 수준을 넘어, 저출산 대응과 사회 구조개혁을 위한 새 정책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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