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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이 불평등한 이유
[FINANCE] 물가 통계의 함정
[117호] 2020년 01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19년 11월3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10년 전 전단가격보다 싸게’라는 문구를 내걸고 개점 26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달 각국 정부는 물가 통계를 내놓는다. 언론은 호들갑을 떨며 수치를 분석한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시끄럽다. 하지만 이 통계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사실 대부분 경제 통계에 대중은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전문가나 언론, 금융시장 참여자만이 유심히 들여다볼 뿐이다. 통계가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고, 대중의 삶과 동떨어진 수치 놀음으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여 년 우리는 물가가 얼마나 낮을 수 있는지를 언론 우려로 접해왔다. 동시에 낮은 인플레이션이 완화적 통화정책의 주요 근거가 되는 것도 알음알음 알고 있다. 저녁 찬거리를 사거나 머리를 다듬을 때, 혹은 점심을 먹을 때마다 물가 오름세를 절감하지만, 공식 통계가 그렇다니 물가가 안정된 것으로 믿는다. 중앙은행 역시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못해 걱정이다. 경제학자 인식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인플레이션을 물어보면 거의 없거나 과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식 통계는 평균치일 뿐이다. 평균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공식 물가지수는 모든 사람이 물가지수에 포함된 재화나 서비스를 평균가격으로 산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가격은 구매하는 물품과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계층과 지위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공식 통계는 대부분 사람이 경험하는 ‘가격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은 이를 알고 있다. 모른 체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환경과 소비 형태를 갖고 있다.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는 평균에 불과하다. 개개인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더욱이 평균과 멀리 떨어진 계층일수록 그들이 느끼는 물가는 공식 수치와 매우 다른 모양을 보인다.

계층에 따른 차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위 계층 소득은 하위 계층보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니 케케묵은 소리로 들릴 정도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도 불평등이 심화한다는 연구는 최근에야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연구자들은 최근 ‘빈자의 비용: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미국에서만 300만 명 이상을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2004~2018년 미국 소매점 가격 정보를 분석했다. 소득 자료와 비교하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저소득 계층일수록 물가 상승을 더 심하게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평균 하위 20%의 인플레이션율이 상위 20%의 그것보다 0.44%포인트나 높았다. 별거 아닌 듯이 보이지만 장기간 진행됐기에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으니 더는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이 연구는 오늘날에도 실제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인플레이션 효과를 반영해보니 미국 최하위 분위 소득은 2004~2018년 6.7% 하락했다. 명목임금은 올랐을지 모르지만 실질소득은 인플레이션 효과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 최상위 분위 소득은 16.6% 증가했다.
이런 일은 왜 발생할까? 저소득 가계가 구매하는 상품·서비스 가격이 부유층 구매 품목보다 더 올랐거나 덜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매점은 고소비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유인책을 쓴다. 백화점이 VVIP 고객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게 좋은 예다. 유인책 대부분은 재무적 혜택이다. 고액 자산가에게 제공되는 은행 송금 수수료 혜택, 많이 살수록 할인 폭이 커지는 온라인 매장의 상술 등이 대표적이다. 부유층을 잡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이들이 사는 품목은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을 위한 것으로, 굳이 사지 않아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이런 물품을 파는 것은 힘들다. 판매점은 필수품을 팔 때보다 한층 노력해야 한다. 경쟁 과열은 상위 계층이 사는 품목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다른 이유도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소비한다. 버는 돈 모두를 쓸 때도 있고, 빚내어 소비하기도 한다. 교육비, 보험료, 주거비 등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써야 하는 비재량 지출이다. 일종의 생존비용이다. 이들 가격은 사치품보다 많이 올랐다. 전세계 집값과 임대료는 말할 필요도 없고, 교육비도 마찬가지다.
고소득자가 평생 경험하지 못하는 부문의 가격이 오른다. 상위 계층은 임대료, 집값 걱정을 하지 않는다. 외려 이들 가격이 오를수록 이득이다. 하위 계층이 소득 대부분을 기본 주거비로 지출할 때 상위 계층은 그만큼 소득을 얻는다.

   
▲ 서울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스위스 명품 시계 매장에 고가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시계들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인플레의 속성
인플레이션은 속성 자체가 불평등하다. 소득이 높을수록 인플레이션 효과는 작다. 월 1천만원을 버는 사람과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느끼는 인플레이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소득이 낮을수록 인플레이션으로 일어나는 소득 감소는 치명적이다. 앞의 연구에선 미국에서만 인플레이션으로 300만 명 이상이 빈곤 상태에 놓인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수많은 사람이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가격 안정성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법으로 명문화됐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중앙은행은 제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식 인플레이션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계 밖의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서민은 가격 안정의 사각지대에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품목의 가격이 안정돼야 하지만 정책 우선 사항은 아니다.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리를 올리려면 실제 유의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어 금리 인하를 할 여지가 있다.” 현학적 용어를 썼지만 이런 말은 코미디다. 중앙은행은 300년 넘는 긴 역사가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 잣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인플레이션 통계도 잣대 중 하나다. 과거 잣대로 오늘을 재단한다.
중앙은행의 주요 잣대인 공식 인플레이션 통계는 서민이 경험하는 물가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공식 통계에 집착한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원하기도 한다. 서민은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중앙은행도 경제학자도 언론도 그렇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9년 11월 소비자물가가 0.2% 올랐다. 4개월 만에 공식 상승으로 바뀌었다. 전년 대비 물가가 상승 국면으로 돌아선 것이 천만다행이란 식의 언론 보도가 이어진다. 마이너스 물가의 공포가 잦아든 것에 안심하는 분위기다. 이해가 간다. 성장경제 체제에서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이상의 두려운 괴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이 무섭다면 인플레이션 뒤에 숨은 불평등을 얘기하는 게 공정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
세계 물가는 양극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민 생존에 필수적인 비재량 지출은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주택 가격과 임대료 상승은 주요국 도시에서 폭발 직전의 상태다. 반면 고소득 계층이 소비하는 품목은 기술혁신과 경쟁으로 가격이 내리거나 정체 상태를 보인다. 명품과 사치품 가격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다.
가려져 있지만, 서민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 남미 각국에서도 대중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슈는 다양하지만 공통된 흐름이 있다. 세계가 너무 불평등하고,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불평등이 더욱 고착될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기득권 세력이 강조하는 이념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서민은 알고 있다. 그것이 연대를 통한 행동을 부른다. 그들이 원하는 건 변화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하고 싶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을 멈출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물론 중앙은행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중앙은행만이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좀처럼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서민에게 가해지는 물가 압박이 없는 듯 행동하고 그것을 고치려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앙은행은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국가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돈 총량만을 통제할 수 있다. 그 돈이 흐르는 경로까지 정할 수는 없다. 돈 흐름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국가 몫이다. 성장경제에서 성장을 위한 인플레이션은 필요악이다. 현재 시스템에선 어쩔 수 없다. 다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대중에게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비재량 지출을 줄일지 치열한 논의가 절실하다.
결국 이 문제는 세금과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는 중앙은행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대중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월호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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