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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1시간 걸리는 곳의 이점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17호] 2020년 01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와 대중교통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노후 준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으로 중요한 물음이 ‘어디’서 살 것인가다. 살 곳을 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주로 자금 사정에 따라 집 소유 형태와 종류, 위치가 달라졌다. 부동산 투자 관점도 빠지지 않는다. 누구나 직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아 되도록 출퇴근 피로를 줄이고 싶어 한다. 아이를 키우는 시기에는 육아와 교육이 주거지 결정에서 최우선 기준이 되기도 한다.
노후에는 직장이나 학교 같은 영향이 사라진다. 개인 처지나 성향에 따른 편차가 커진다. 예전에는 대도시 주변으로 나가는 게 대체적 흐름이었다. 전원주택 바람이 대표적이다. 낭만적 삶을 꿈꾸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풀 뽑기를 비롯해 전원생활의 끊이지 않는 일거리에 질려 도시로 되돌아온 사람도 흔하다. 요즘은 편의·의료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 중심부에 머물려는 경향 또한 강해졌다. ‘자식이 원수’라고 성인이 된 자녀나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원하는 삶과 집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지방행은 귀촌으로
노후자금이 넉넉지 않은 사람에겐 자금 사정이 여전히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대다수 퇴직자에게 살고 있는 집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한다. 집값 상승 기대치가 높지 않다면 주거비용이 많이 드는 도시 중심부를 떠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워낙 집값이 폭등하다보니 이른바 ‘똘똘한’ 서울 아파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지방으로 갈수록 집값 부담이 줄어든다. 자연과 시골을 원하는 사람은 귀촌을 택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먹고사는 것까지 해결하는 귀농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시골 마을에 섞여 들어가는 게 녹록지 않다. 이 때문에 농사는 빼고 시골살이만 하는 귀촌이 훨씬 흔하다. 텃밭 가꾸기 정도로 자기 먹거리만 조달하고 연금과 다른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귀촌·귀농 인구는 2017년 처음 50만 명을 넘어섰으나 2018년에는 2만 명 남짓 줄었다. 귀촌이 47만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농업이나 어업을 목적으로 시골로 간 사람은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귀농은 50~60대가 다수인 반면, 귀촌은 40대 이하가 절반을 넘었다. 1인 가구가 70%를 넘고, 이주 지역의 25% 이상은 경기도 지역이다. 귀촌과 대도시 주변 이주 사이의 경계를 나누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대표 귀촌·귀농 지역으로 꼽히는 전남 곡성의 실태조사를 보면, 주거환경·이웃관계·건강이 만족스러운 반면, 경제여건·지역인프라가 불만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 주민과 가장 큰 갈등 요소로는 역시 ‘선입견과 텃세’가 꼽혔다.
50대 초반 W씨는 경남 하동과 강원도 정선을 귀촌 후보지로 꼽는다. 둘 다 연고가 있는 곳은 아니다. 정선은 여름휴가 때마다 찾고, 하동도 이따금 방문했다. 은퇴생활에 적합한 곳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기 위해서다. 부부 연금으로 생활은 충분히 가능하고, 지금 사는 집 전세금으로 시골 집을 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벌어놓은 돈이나 일자리가 없어도 연금생활이 가능하기에 W씨 부부는 자신들의 취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정년을 2년 남짓 앞둔 K씨는 퇴직 뒤 이주 계획의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그는 경기도 남양주에 터를 잡고 얼마 전 단독주택을 지었다. 부부가 퇴직하면 아파트를 팔고 이사할 예정이다. 도시농부인 그는 애초 고향인 경북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대학 진학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아온 그에게 차로 3시간 남짓 걸리는 고향은 너무 멀다. 딱히 다른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신지가 다른 부인을 위한 배려도 필요했다. 이후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범위를 좁혔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한때 땅 매매 계약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2시간 걸리는 거리 또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인간관계는 대체로 40년 가까이 살아온 대도시를 배경으로 형성돼 있다. 퇴직 이후 직업으로 맺은 관계가 자연스레 끊기면서 남은 관계의 소중함은 더 커진다. 취미나 학습 활동으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과 한 번씩 얼굴을 보려면 두루 접근이 편한 도심을 약속 장소로 정할 수밖에 없다. K씨가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이내에 도착 가능한 곳을 퇴직 뒤 주거지로 최종 낙점한 이유다. 그가 택한 남양주도 땅값이 많이 올랐지만 그런대로 무리 없이 집터를 구할 수 있었다. 땅값과 건축비를 합쳐도 보유한 아파트 가격의 절반 정도다. 동서 가족과 뜻이 맞아 함께 집을 지음으로써 낯선 곳에 정착하는 부담을 한결 덜었다.
귀촌 인구는 갈수록 늘어난다. 귀촌 정보와 체험담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센터 사이트에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일자리와 교육 등 나은 환경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의 공백을 퇴직자가 메우는 것이 그나마 지역을 살리는 차선책이다. 귀촌은 느긋한 삶을 원하는 퇴직자와 갖가지 지원책을 내걸고 지방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는 지자체가 공생하는 길이다.

접근성과 여유
정년을 3년 앞둔 P부장도 번잡한 도시와 불편한 지방 사이의 균형을 택했다.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와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인 용인 수지의 아파트가 그의 노후 보금자리다. 맞벌이인 그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이곳 처가 주변에서 몇 년 동안 살았다. 부부가 출퇴근에만 하루 3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정년이 가시권에 들면서 이 지역의 장점을 재발견하게 됐다. 광역버스와 전철 이용이 모두 가능해 도심 접근성이 좋다. 10분만 외곽으로 나가면 논밭이 널려 있다. 전원생활이나 텃밭 가꾸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그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하면서도 생활 편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서울 시내에 견줘 집값과 전·월세는 훨씬 싸다.
대도시 주변 베드타운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다. 시골로 옮기고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줄어든 주거비용과 사라진 출퇴근 부담이라는 노후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P부장은 노후 주거지로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걸리는 곳’을 친구에게 적극 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월호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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