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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과 강인함 무기로 소통 중시
[PEOPLE]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취임- ② 전망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마르크 후예어 등 economyinsight@hani.co.kr
마르크 후예어 Marc Hujer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슈피겔> 기자
 
   
▲ 크리스틴 라가르드(가운데)의 장점은 소통이다. 또 자기사람으로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정성을 쏟는다. 그는 자신의 휠체어를 밀 기회를 좀처럼 내주지 않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하원의장(왼쪽)의 휠체어를 공식 석상에서 미는 끈끈한 친분을 과시해 주목받았다. REUTERS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립을 해결하는지는 과거 프랑스와 독일에서 같은 시기에 장관직을 수행했던 볼프강 쇼이블레(기독교민주연합) 독일 하원의장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쇼이블레는 타인에게 자신의 휠체어를 밀도록 맡기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유독 라가르드에게는 공식 석상에서도 자신의 휠체어를 밀도록 해 눈길을 끌었다.
쇼이블레 하원의장이 동료 정치인 라가르드에게 어마어마한 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 일화는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반면 라가르드는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쇼이블레 하원의장이 자신을 난처한 상황에서 모면해준 일화로 소개한다. 당시 적포도주를 쏟아 바지에 묻은 와인 자국을 가리기 위해 쇼이블레 하원의장에게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가 이를 수락했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는 쇼이블레 하원의장에게 그리스 경제위기, 부채 정책 등 두 정치인의 확연히 다른 생각에 관해 물었다.
쇼이블레 하원의장는 “나는 라가르드와 한 번도 의견 차이를 보인 적이 없다. 라가르드는 프랑스의 우아함과 미국의 강인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 둘 다 법률가 출신이어서 항상 ‘변호사’(독일어 대신 굳이 영어 ‘Lawyer’를 사용함)처럼 이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쇼이블레 하원의장에게서 자신의 칠순 축사를 위해 일부러 베를린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라가르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듣기는 어려웠다. 병원에 입원한 쇼이블레에게 라가르드는 꽃을 보냈고, 감기에 걸렸을 때는 직접 벌집에서 채집한 꿀을 보내기도 했다.
라가르드는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정성을 쏟는다. 그럴 때면 자신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한 정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라가르드는 백악관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이방카 트럼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라가르드는 이방카에게 서로 TV로만 본 사이니까, 한번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 뒤 2017년 4월 라가르드는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담에서 이방카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만났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것은 라가르드의 특기다. 자신과 협력하는 전문가를 세련되게 참여시키는 것 역시 그가 애용하는 방식이다. IMF에서도 라가르드는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에 언제든지 귀를 열어놓았다. 그 반대급부로 금융 전문가들은 라가르드가 원하는 것에 유연해야 대처해야 했다.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해결책도 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몇 년 전 기자는 라가드르에게 “IMF처럼 중차대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가르드는 아인슈타인 운전사 일화를 들려줬다. 아인슈타인 운전사가 아인슈타인과 역할을 바꾼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운전사가 아인슈타인 대신 강연했고, 아인슈타인은 청중석에 앉아 있었다. 이날 강연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나오자, 운전사는 청중석에 앉아 있는 아인슈타인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이는 라가르드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라가르드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자신을 도와줄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를 항상 옆에 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하는 것 얻을 땐 적극적
유럽중앙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필립 레인은 아일랜드 출신이다. 라가르드가 지금껏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일랜드 출신들과 항상 호흡이 잘 맞았다고 말한 것을 고려하면, 레인의 국적은 분명히 장점이다. 하지만 레인은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측근이었다. 같은 경제학파인 드라기 전 총재와 레인은 경제에 너무 적은 유동성보다 과도한 유동성을 부여하자는 ‘비둘기파’다.
레인이 프랑크푸르트 금융가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려한 회의실 책상에 앉아 있다.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랫동안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2015년 중반 이후 1조1400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매입한 이후 신용, 경제성장, 고용, 인플레이션 등 모든 것이 반등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상황은 지속됐을 것이다. 다만 라가르드는 “유감스럽게도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불황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 경기 활황이 끝난 게 아니라 잠시 중단됐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도 유럽중앙은행은 대체 왜 2019년 9월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결정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독일 중앙은행이 요구한 것처럼 유럽중앙은행은 왜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았을까? 유럽중앙은행은 왜 1%대 인플레이션이 2%로 오를 때까지 지속해서 국채를 추가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을까? 이런 대응책은 정말 필요했을까?
필립 레인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전제한 뒤, “다만 무역전쟁이 해결되고 독일 등 경제대국이 경기를 부양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답했다. 이 경우 통화정책 수단을 더 빠르게 변경하거나 중단할 수 있어 더욱 신속한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팩트(사실)가 달라지면 내 의견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라가르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화정책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따라서 통화정책은 이제 금융·경제 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 즉,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 외에 여러 국가의 지출 확대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정책 분야를 더 강하게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책 효력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자기 업무를 직책 테두리에 가두는 것은 라가르드 스타일이 아니다. IMF 총재로 8년 있는 동안 라가르드는 부채와 국제수지 문제에 초점을 맞춘 직무를 단계적으로 넓혀갔다. IMF 이코노미스트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성의 사회 진출 등 업무 영역을 새롭게 열어젖혔다.
라가르드는 저변 확대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채 절감을 위한 경찰쯤으로 인식되던 IMF의 호감도를 높이고 대중이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이미지를 개선했다. 그는 예금자의 분노를 한 몸에 받는 유럽중앙은행에도 이를 적용할 생각이다.
 
업무 확대로 친숙한 이미지 꾀할 듯
“유로화,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더 많은 여성이 금융계에 진출해 여성들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내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유럽중앙은행이 기후변화와 벌이는 전쟁에서 지금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내도록 매진할 것이다.”
라가르드는 프랑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후 여성은 절대 로펌 대표이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라가르드는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를 위한 투쟁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게 됐다. 실제 그는 여성도 로펌 대표이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입증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유럽중앙은행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은 철저히 남성 지배적인 기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직분마다 여성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그렇다고 라가르드가 혁명가는 아니다. 그는 자신을 서슴지 않고 ‘귀부인’으로 표현한다. 한 예로 라가르드는 17살 무렵 학교 숙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썼다. “어머니가 나와 세 남자 형제를 불러놓고 너희도 이제 충분히 나이가 들어서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을 잘 이해할 것이다. 엄마는 귀족이자 백작이라서, 너희도 18살이 되면 예비 백작이 된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죽으면 너희는 백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교사였던 라가르드 어머니는 자신이 귀족 혈통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라가르드에게 예의범절과 완벽한 프랑스어를 가르쳤으며, 딸이 청바지를 입는 것을 싫어했다. 이제 63살인 라가르드에게 반지, 목걸이, 브로치, 스카프 그리고 여성스러운 우아함은 상징처럼 되었다. 그는 젊은 여성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 모두에게서 똑같이 존경받고 있다.
쇼이블레 하원의장에게 ‘유로’는 일생을 건 정치적 역작 중 하나다. 1990년대 유로동맹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때, 쇼이블레는 기독교민주연합 원내대표였다. 2012년 7월 유로존 재정 위기와 그리스 위기가 극에 다다랐을 때 재무장관이던 쇼이블레는 마리오 드라기의 유명한 ‘필요한 모든 조치’(Whatever it takes)에 해당하는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후 쇼이블레는 이탈리아 출신 드라기 전 총재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심지어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라고도 혹평했다. 현재 쇼이블레 하원의장은 “통화정책이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한 길이 당연히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럽중앙은행 정책이사회의 내분과 북유럽과 남유럽의 분열, 유럽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의 저금리 정책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우려하는 쇼이블레는 라가르드 신임 총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다만 쇼이블레는 “라가르드 총재에게 어떤 조언도 할 생각이 없고, 조언한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라가르드가 이미 수많은 대립을 해결하면서 보여줬던 경험과 아이디어, 사회적 지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라가르드 총재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한 유럽중앙은행을 잘 이끌어가리라고 확신한다.”
취임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라가르드는 “취임 첫날부터 바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유럽중앙은행 신임 총재의 계획은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독일어로 마이너스 금리를 설명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Der Spiegel 2019년 44호
Eleganz und Härte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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