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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와 포용’ 전략의 실패
[FINANCE] 미-중 관세전쟁의 출발점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1월5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2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40여 년에 걸친 냉전시대, 세계 질서는 비교적 명확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으로 세계는 나뉘었다. 당시 국제 무역과 문화 교류 대부분은 두 블록 안에서 이뤄졌다. 나머지 국가들의 위상은 보잘것없었다. 경제·군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없었다. 오죽하면 ‘제3세계’라고 했을까. 세계는 양극 체제였다. 한쪽은 민주주의와 시장 지향의 자본주의, 다른 쪽은 전체주의와 중앙계획경제였다. 정치와 경제 질서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때 중국은 가난한 별난 국가에 불과했다. 198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달러 가치로 900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2조달러가 넘는다. 기적에 가까운 성장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빠른 성장을 이룬 나라는 없다. 제3세계이던 중국의 성장에 뒷배는 의외로 서구였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가 됐다. 미국과 서구는 자유와 기술, 자본이 냉전에서 승리를 가져왔다고 믿었다. 이들의 자신감은 극에 달했고, 자신들 체제를 세계로 확산하는 세계화 전략을 거침없이 시행했다. 미국과 서구는 ‘포용과 견제’ 전략으로 중국을 변화하려 했다. 경제·외교적으론 포용, 군사력으로 견제를 병행했다.
이 전략이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중국은 민주주의 대신 전체주의, 시장자본주의 대신 중앙계획경제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속살은 ‘마오쩌둥 공산주의’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이런 미국과 서구의 전략으로 엄청난 기회를 얻은 반면, 이들은 가장 크고 위험한 적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서구의 견제 전략에도 빈틈이 드러났다. 중국은 끊임없이 자신의 경제·산업적 힘을 군사적 우위로 바꿔가고 있다. 현재 미국과 서구 군사력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수준에 있는지 의문이다. 지정학적 포용 전략이 기대했던 결과로 항상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년 마라톤
어디든 온건파가 있으면 강경파가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서구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지금은 강경파가 우세한 상황이다. 2019년 10월 말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이 노선은 한층 명백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회의에서 중국적 특성을 가진 사회주의 시스템 장점을 설파하며 공산당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공산주의 혁명 100주년을 맞는 2049년에 세계 최고 국가 반열에 오르는 꿈을 갖고 있다. 세계 지배라는 꿈은 공산주의 이념의 일부분이다. 중국에 이 꿈은 특별하다. 오랜 역사와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는 그것을 중국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 또한 장기 전략에 기초한다. 의도는 서구의 자본, 기술, 자원을 얻기 위한 방책이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지난 30년 동안 서구는 중국에 필요한 것을 지원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서구 자본이 중국 개발에 쓰였다. 물론 자발적이었다. 서구 이익을 위한 투자였다. 덕분에 중국은 급속히 현대화했고, 주요 기술에선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발전했다. 중국 100년 대계는 순항하는 듯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복병이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의 중국 전략이 바뀐다. 포용이 노골적 견제로 전환됐을 뿐 아니라 미국을 위협하는 가상의 적으로 중국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미국의 공격 수단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일차원적이라는 데 있다.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이 겁먹고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다.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압박해 상당 기간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미국은 이것을 간과했다. 게다가 중국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전략적 대응 방안을 세워둔 상태다. 압도적 힘을 가진 상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중국은 알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장점에 집중한 반면 중국은 미국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중 관세전쟁에서 미국이 일보 후퇴하는 양상이다. 절대적 측면에선 중국이 입은 타격이 미국보다 크지만 상대적 크기에선 그렇지 않다. 중국 인민은 견뎌내고 있지만 미국 국민은 불만을 표출한다. 체제 차이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여론을 의식해야 하지만 전체주의는 상대적으로 여론 압력에서 자유롭다. 현재 미-중 무역갈등이 봉합 양상을 보이는 것은 트럼프의 미국이 여론에 떠밀려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중국이 양보한 것은 거의 없다. 최소한 관세전쟁에선 중국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 2019년 9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대법원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전자발찌를 찬 채 집을 나서고 있다. REUTERS
미국의 깨달음
중국 최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화웨이가 위기를 맞았다. 미국 제재 때문이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을 앞두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제재를 늦추는 게 아니라 자국 통신망에서 화웨이 장비를 완전히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구글이나 퀄컴 등 미국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할 때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래 금지나 다름없다. 유럽에서도 화웨이 장비에 대한 경계가 완화되지 않았다.
시장분석업체에 따르면, 화웨이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산 부품에 의지해야 하는 화웨이가 주요 부품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산 부품이나 기술 없이 버텨야 하는 몇 개월이 화웨이가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의 중요 플레이어로 남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와 미국은 무역전쟁 양상을 바꾸려 한다. 화웨이 제재와 그 성공 여부는 앞으로 양국 무역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려준다. 미국은 늦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해가고 있다.
“중국은 최근 값싼 노동비용 우위를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이 이런 분야까지 탐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에 집중하면 된다. 비교우위론에 근거한 자유무역은 중국에도 도움이 되지만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 
“광범위한 관세 부과나 자본 통제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낡은 무기에 불과하다. 엉뚱한 국가나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다. 중국은 미국 관세에 부담을 느끼지만 실제 관세를 부담하는 주체는 미국 소비자다. 무역 적자는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상 미국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자 특권이다. 미국이 적자 국채를 팔기 위해서라도 무역 적자는 필요하다. 중국에서 티셔츠나 운동화를 수입한다고 미국 안보가 위협받지는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판단에 따라 관세전쟁 퇴로를 찾고 있다. 세계경제는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을 절감했다. 그것을 강제로 분리하려 할 때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또 자유무역이 반드시 잠재적 적을 포용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간다. 군사적 무기가 아니라 첨단기술이 외려 더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화웨이 제재로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의미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층 치밀해지고 격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 미국 대응은 포괄적 관세 부과 대신 중국의 특정 기업과 생산물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약점
일부에서는 양국 무역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때문에 세계 자산시장 가격이 치솟고 있다. 경제의 봄날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그럴까. 미-중 무역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관세 철폐 등 봉합 과정을 보이겠지만 수면 아래에서 더욱 정교한 전쟁이 맹렬하게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포기하지 않는 첨단기술에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화웨이 제재에서 보듯, 그런 공격은 미국이 우위를 보이는 기술에 철저한 보호막이 될 것이다. 미국은 퀀텀컴퓨터, 인공지능, 시스템반도체 등 기술적 우위를 최대한 이용하고, 첨단 부품 공급을 중단해 중국 기업을 고사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과 서구는 이제야 중국 약점을 파악했다. 경제·산업적 힘을 약화시켜야 중국을 제압할 수 있고, 그것은 첨단기술 기업을 견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미국 의도는 비교적 분명하다. 중국이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갖거나 우위를 보이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가장 큰 적이 됐다.
그렇다고 중국이 세계 지배의 꿈을 포기할까. 아니다. 화약과 피 냄새만 없을 뿐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한쪽이 고개를 숙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갈등이 표면화됐을 뿐 언젠가 터지고 말 시한폭탄이었다. 조금 빨리 현실화했을 따름이다.
미국과 서구는 전략적 실수를 했다. 포용과 견제는 실패했다. 중국을 거대한 용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서방으로선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힘과 힘이 부딪칠 때 피해를 보는 쪽은 엉뚱한 국가다. 패권국 사이에 새로운 질서와 균형이 자리잡을 때까지 나머지 국가는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형국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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