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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은 빼먹는 것이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우리은행이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로 목돈을 날린 피해자들이 2019년 10월10일 서울 남부지검에서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처벌을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다. 연합뉴스
시중금리가 두 자릿수에 이르던 예전에는 노후자금 걱정이 덜했다. 예금만 꼬박꼬박 해도 금방 목돈이 만들어졌고, 다른 수입 없이 은행 이자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었다. 은퇴자가 곧 여유 있는 이자생활자로 여겨지던 그런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다.
20년 가까이 계속되는 초저금리 시대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시중에 돈은 넘쳐나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해 쉽사리 돈줄을 죄지 못한다. 한국도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어 가뜩이나 낮은 기준금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잔뜩 풀린 돈으로 거품 붕괴가 임박하지 않는 한 시중금리가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빈털터리로 돌아가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곶감 빼먹듯’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얘기를 퇴직자에게 흔히 듣는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져 저축한 돈에서 생활비를 빼서 쓰다보면 누구나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요즘 정기예금 금리가 2%도 되지 않으니 은행에 10억원을 넣어도 세금(16.5%)을 떼면 이자를 1년에 2천만원도 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노후에 일해서 버는 월급이나 연금 100만원이 자산 5억원에 해당한다는 얘기도 한다.
예금 잔고가 줄어드는 불안을 피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웬만하면 원금을 남겼다가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렇다고 일이든 투자든 해서 돈을 까먹지 말아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면 노후가 몹시 피곤해진다.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한 노후 비결이다.
보통 중장년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이자만으로 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그러나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쓰겠다면 그리 부족하지 않은 돈이다. 1년에 이자가 2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예금 1억원은 해마다 1천만원씩 써도 10년은 간다. 달마다 나오는 국민연금과 합치면 생활비 조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주택연금 원리도 마찬가지다. 살고 있는 주택을 물려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집에서 계속 살면서 연금을 받아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 지금 중장년은 물론 그 부모 또한 노력해서 모은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쓴다면 노후가 덜 힘들다.
‘다 쓰고 죽는다.’ 중견기업 P부장의 신조다. 그는 어머니에게는 물론 장인과 장모에게도 자식이나 손자손녀에게 뭘 남기려 하지 말고 가진 재산을 마음껏 쓰도록 당부한다. “재산을 모두 써버리고 빈털터리로 죽기로 마음먹는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적절한 부를 누릴 수 있다.” 미국 재무설계사 스테판 폴란이 쓴 <다 쓰고 죽어라>의 한 구절이다.
 
실종된 ‘72의 법칙’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전에 흔히 보던 금리 10%와 요즘 2%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기예금 이자가 10%일 때는 7년 남짓이 지나면 돈이 2배로 불어났다. 아인슈타인도 탄성을 질렀다는 이른바 ‘복리 마술’이다. 72을 금리로 나누면 원금의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햇수가 나온다는 의미에서 ‘72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금리가 그 5분의 1인 2%이니 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5배인 36년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저축으로는 돈을 불리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노후 전문가들은 노후에도 자금을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도록 권고한다. 과거에는 ‘100-나이’가 투자 정석으로 거론됐다.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60대에는 40%, 70대에는 30%로 낮추는 것이다. 수명이 70살 남짓이던 시절 이런 상식은 100살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게 노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노후가 길어져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위험자산 비중을 너무 줄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일반론이다. 수익이 위험에 비례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자신의 투자 성향을 잘 고려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면 위험자산을 늘리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러나 노후는 손실 만회가 어려운 시기이므로 투자하더라도 △장기 운용 상품 △수익률 변동이 적은 상품 △배당이 많고 세금과 수수료가 적은 상품 △생활비에 보탤 수 있는 월지급식 펀드 등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자칫하면 요즘처럼 이름도 복잡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DLS, DLF) 등에 현혹돼 겨우 벌어둔 목돈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내게 알맞은 보험
자식을 비롯해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목돈이 드는 비상사태 대비책을 스스로 마련해둬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보험이다. 나이가 든 뒤에는 생명보험, 종신보험 등 다양한 보험상품의 의미가 별로 없다. 보험료를 납입할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다. 보장성이든 저축성이든, 이런 상품은 젊을 때 사망·중상·암과 같은 난치병에 대비해 들어두는 것이다.
노후자금을 축내는 주범이 의료비이므로 실손의료(의료실비)보험 가입은 필수라고 한다. 국민 70% 가까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더 적은 보험료로 75~80살까지 가입 가능한 노후실손의료보험도 있다.
그러나 질병 전력이 있는 고령자는 보험사에 가입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갱신은 가능하지만 나이 들수록 보험료가 급속히 올라간다. 질병이나 사고 위험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보험에 기대기보다 꾸준한 건강관리로 병원 가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병원에 가면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부터 묻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의료 과소비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범이 이 보험이다.
케이블방송 등에선 중장년 대상 보험 광고가 넘쳐난다. 특히 보험사 과당경쟁으로 치매보험은 2019년 1분기 계약 건수(88만 건)가 2018년 전체(60만 건)를 웃도는 과열을 빚기도 했다. 보험사들은 치매보험으로 2018년 1조원 이상 벌고서도 보험금으로 고작 220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월 20만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를 내면서도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문 50대 중반 P부장은 아직 이런 보험에 가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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