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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계절’을 잊자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투데이
조국 전 장관, 첫 검찰 조사 초반부터 진술거부권 행사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이날 오전 9시35분께부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고형곤)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조 전 장관은 검찰 조사 초반부터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1일 구속 기소된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의 15개 혐의 중 상당 부분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검찰 조사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 <매일경제> 2019년 11월14일
 
이 기사는 문제가 많다.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피동형’이 기사에 너무 많이 나온다. ‘피동형이 뭐지’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겠다. 피동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체가 다른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 동사의 성질”이라고 나온다.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는다. 어려울 때는 반대되는 말과 비교하면 쉽다. 능동형은 주어가 스스로 하는 데 반해, 수동형은 주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피동형은 영어 수동태와 닮았다고 보면 된다.
기사를 다시 보자. 첫 문장부터 피동형이 나온다. 첫 번째 문장 “진술거부권을 행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에서 ‘알려졌다’는 피동형이다. 두 번째 문장 “조 전 장관은 검찰 조사 초반부터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에서 ‘전해졌다’ 역시 피동형이다.
이렇게 기사에 피동형을 많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팩트(사실) 확인이 덜 돼 있어서 그렇다. 팩트를 정확하게 확인했으면 ‘진술거부권을 행사 중이다’라고 썼을 것이다. 팩트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할 때 자주 피동형을 쓴다. 피동형 표현은 무책임한 문체다.
피동형 문장은 소극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 두 문장 가운데 첫 번째 문장이 능동형, 두 번째 문장이 피동형이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었다.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이 문장에 주어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열심히’라는 부사어를 넣어보자.
사자가 얼룩말을 열심히 잡아먹었다.
얼룩말이 사자에게 열심히 잡아먹혔다.
첫 번째 능동형 문장은 자연스럽지만, 두 번째 수동형 문장은 부자연스럽다.
보고서나 보도자료 같은 글에서 피동형으로 글을 쓰면 힘이 없어 보이고 억지로 한다는 느낌을 준다.
교육부에 의하여 결정되어진 정책에 의해서 추진됩니다.
이 문장 역시 피동형으로 돼 있다. ‘결정되어진’ ‘추진됩니다’는 피동형이다. ‘~에 의하여’는 영어 수동형 ‘by 사람’에서 나온 번역투 표현이다. 피동형 문장은 다른 부서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느낌을 준다. 능동형으로 고쳐보자.
교육부가 결정한 정책대로 추진합니다.
능동형으로 고치니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무엇보다 주어(교육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피동형으로 바꾸는 원칙
우리말을 피동형으로 고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일단 동사 어간에 ‘아(어)지다’를 붙이는 것이다. ‘낫다’에 ‘아지다’를 더하면 ‘나아지다’가 된다. ‘이루다’에 ‘어지다’를 붙이면 ‘이루어지다’가 된다.
피동형 동사를 만드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동사 어간에 ‘이, 히, 리, 기’를 붙이는 것이다. ‘보다’에 ‘이’를 붙이면 ‘보이다’가 된다. ‘먹다’에 ‘히’를 더하면 ‘먹히다’가 된다. ‘걸다’에 ‘리’를 붙이면 ‘걸리다’가 된다. ‘감다’에 ‘기’를 붙이면 ‘감기다’가 된다.
‘지다’와 같은 피동형이 있는데 피동사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성’ 때문이다. 피동사가 나온 것은, 글자 수를 줄여 발음을 간결하게 할 수 있어서다. 최근에는 피동형 원칙을 무너뜨리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10월의 마지막 날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나오는 노래가 있다. 이용이 불렀던 노래를 아이유가 최근 다시 부른 <잊혀진 계절>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련한 추억을 남긴다. 하지만 노래 제목은 문법에 어긋나 있다. ‘잊혀진’은 ‘이중피동’이다. 이중피동은 피동형을 거듭 쓴 것을 말한다. 피동사에는 ‘아(어)지다’를 붙이지 않아야 한다. 정확한 표현은 ‘잊힌’이다.
 
이중피동에서 벗어나라
‘읽다’ 피동형은 ‘읽히다’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지다’를 붙여 ‘읽혀지다’로 쓰는 사람이 많다. ‘읽히다’로 바로 써야 한다. ‘마음속에 새겨진 <어린왕자>’도 이중피동이다. ‘마음속에 새긴 <어린왕자>’로 써야 한다. ‘외국어로 쓰여지고 있는’ 역시 ‘외국어로 쓰이는’이 맞다. ‘늦잠 자는 습관이 바뀌어졌다’는 ‘늦잠 자는 습관이 바뀌었다’로 써야 한다.
피동형을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다는 건 한국어뿐만 아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진서도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명료함과 활력에서 능동태와 수동태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했다.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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