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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협상 대안 마련해야
[세계의 창] WTO 개도국 지위 논란
[115호] 2019년 11월 01일 (금) 서진교 jksuh@kiep.go.kr

서진교 대외경제연구원 무역협정팀 선임연구위원

   
▲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오른쪽)과 나이지리아의 신생 벤처기업 ‘레드’ 아데볼라 윌리엄스 최고경영자(왼쪽)가 2019년 10월8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걸어가고있다. EPA 연합뉴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18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400달러다.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석유 부국과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20위권이다. 이른바 ‘선진국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는 23년 전인 1996년에 가입했다. 다른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2018년 한 해에만 무려 3조원 넘는 돈을 썼다.
정부는 국민소득 3만달러이면서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30-50 클럽’에 세계 일곱 번째로 진입했다고 자랑한다.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을 개도국으로 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러나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만큼은 한국은 아직도 개도국이다. WTO에서 국가를 분류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최빈개도국(LDC·Least Developed Countries)만 유엔 기준에 따라 별도로 분류해 특혜를 준다.
나머지 국가는 모두 스스로 판단에 따라 선진국 또는 개도국이 된다. 이를 흔히 ‘자기선언의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도국임을 선언하고 개도국 의무를 이행했다. 물론 당시 미국 등 일부 회원국이 한국의 개도국 지위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양자협상으로 타협함으로써 큰 문제 없이 한국의 개도국 지위가 확정됐다.
이후 25년이 지난 2019년 미국 등 선진국들의 문제 제기로 WTO 개도국 지위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일부 부유한 개도국이 개도국 특혜조항을 이용해 시장개방 의무를 면제받거나 축소해왔다고 비난했다. 경제발전 격차가 매우 큰데도 모든 개도국이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문제이며, 잘사는 개도국에는 더 이상 특혜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선진국 주장의 핵심이다.

WTO 개도국 지위 쟁점 부상
미국은 조만간 개도국을 졸업할 대상국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 국가에 더는 개도국 대우를 해주지 않고, 필요하다면 통상 압력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WTO에서는 한국이 개도국이지만 농업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선진국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결국 농업 빼고는 사실상 선진국인 셈이다. 따라서 한국이 개도국을 졸업하면 농업 외의 분야에서 별다른 영향이 없다.
농업 부문도 당장 어떤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개도국 졸업에 따른 영향은 WTO 농업협상 결과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WTO 농업협상이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과 중국·인도 등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이 대립해 농업협상에는 진전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O 탈퇴까지 거론해 WTO 농업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더 이상 개도국 지위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WTO 농업협상이 타결돼 이행하기 직전까지는 현재 보호 수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농업에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WTO 농업협상이 타결돼 한국이 선진국 의무를 이행할 때 농업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이 체결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관세 감축 예외를 받아온 쌀은 500% 넘는 높은 관세를 유지해, 선진국 의무 이행 때는 대폭 관세 감축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생산과 가격에 연계된 보조금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현행 방식의 수매 정책을 축소해야만 한다. 국내 농정의 일대 개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직불제 도입 등 농가 불안 해소
이렇게 보면 한국의 개도국 지위 문제 해결은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당장은 피해가 없기에 정부가 국내외 통상 여건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개도국 지위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농업 부문에서 피해 가능성을 고려해 쌀 등 소수 품목에 한해 예외적 취급을 하겠다고 선언할 때 부대조건으로 달아야 한다.
선진국도 국내 어려움을 이유로 소수 품목에 한해 예외 취급을 받아온 것이 WTO 다자통상협상 관례이기도 하다. 동시에 국내적으로 선진국 의무 이행에 따라 초래할 수 있는 가격 불안정을 해소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격변동 직불제 등을 도입해 농가가 걱정하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농가들이 당장 피해가 나지 않아도 가격 하락 등 불확실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국이 WTO 협상에서 개도국 세분화를 주도할 필요도 있다. 한국을 개도국으로 보기 어려운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농업 경쟁력이 미국 등 선진 농업보다 떨어지는데도 그들과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요구는 공정하지 않다.
결국 한국은 개도국과 선진국 중간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WTO 틀 안에서 개도국 세분화가 전제돼야 한다. 개도국을 세분화할 경우 개도국 사이에서도 상이한 의무 수준이 만들어진다. 가장 앞선 개도국이라도 개도국에 있는 한 선진국 의무보다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개도국 세분화는 현재 한국에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생산과 가격을 왜곡하지 않는 허용 보조 중심의 선진 농정으로 국내 농정을 일대 개혁할 필요도 있다. 대내외 대책이 조화를 이룰 때 개도국 지위 문제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남·북·미 관계 개선, 점차 심화되는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통상 갈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 등 세계경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와 선제적 정책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경제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 인력을 갖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세계의 창’을 통해 전세계 경제 이슈와 해법을 보여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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