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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미국의 이중성이여!
[Special Report] 위키리크스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만프레드 에르텔 Manfred Ertel 외 economyinsight@hani.co.kr

 
   
위키리크스 인터넷 사이트의 한 화면. 위키리크스가 그동안 폭로한 사건들이 서가에 진열돼있다. 
마른 체형의 머리가 흰 이 남자를 ‘자유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배신자’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정부에 이 남자는 ‘주적 1호’나 다름없다. 그는 위키리크스 설립자이자 인터넷 활동가인 39살의 줄리언 어산지다.
 지난 수개월간 어산지를 둘러싼 외부 세계는 급변했다. 한쪽은 사람들 간의 실제 접촉이 일어나는 아날로그 세계였다. 성폭행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된 뒤, 어산지는 기존 아날로그 세계에 무력하게 노출됐다. 그 반대편에는 어산지의 디지털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유혹적이고 경계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열린 공간인 이 세계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어산지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보인다.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을 처음 공개한 2010년 11월28일부터 두 세계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날로그 세계는 비록 케케묵었지만 상생의 원칙을 토대로 하는 민주적 세계이며, 반대편에 있는 디지털 세계는 경계선 따위는 무시하고 때론 통제 불능이기도 한 무법 세계다. 이 전쟁의 중심부에 어산지가 있다. ‘LOIC’(Low Orbit Ion Cannon)이라는 해킹 프로그램 등 ‘사이버 신무기’가 사상 처음 대규모로 투입된 최초의 전 지구적 규모의 충돌이다. 정보와 허위 정보 간 대립 양상을 띠는 이 사이버 전쟁은 서구의 국제 정치와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의 대충돌 

 그리스가 트로이 성문 앞에 놓아둔 대형 목마 덕택에 트로이를 물리친 뒤, 기밀과 기밀 누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정부의 영원한 화두가 되었다. 현대의 ‘트로이 목마’는 인터넷에 숨어 있다. 그리고 인터넷상의 트로이 목마는 우리에게 수많은 의문을 남겨놓았다.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기밀을 숨겨도 되는가? 국가기밀인 외교전문 폭로자는 어떤 의무를 지게 되는가? 민주주의 국가가 사이버 전쟁에서 기존 법망을 벗어난 새로운 제재를 고안할 수 있으며, 사이버 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제재를 실행해도 되는가?
위키리크스가 ‘혁신적 매체’라고 확신하는 지지자들은 위키리크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불법일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불사할 태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양분된다. 한쪽은 장 자크 루소식의 철저한 투명성을 지지하는 이들로, 어떤 상황에서도 정보의 전적인 공개를 옹호한다. 다른 한쪽은 폭로된 기밀들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철저하게 평가해야 하며,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보도는 막아야 한다고 믿는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큰 타격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국무부의 외교문건은 열성적인 전세계 미국 외교관들의 정보력이 우수하다는 사실 외에, 실패한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파키스탄에조차 미국이 무기력하고 멍청하게 대처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랍 국가들이 겉으로는 이란의 핵무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로켓과 핵무기 개발 억제를 이란에 종용할 것을 미국에 재차 촉구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과 관계를 끊고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 중국 공산당 간부가 있다는 사실도 전세계가 알게 되었다.
 이 밖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인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혹평을 내리고 있음을 전세계가 알게 되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0년 11월 초 인도 방문 때 인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위키리크스 반대자들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밀 누설은 악마적인 행위라고 규탄한다. 특히 워싱턴 정가는 이런 규탄 분위기 일색이다. 외교전문이 폭로되는 수치스러운 사고가 벌어진 뒤, 워싱턴은 굴욕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분노에 휩싸여 있다. 워싱턴 정가는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폐쇄하고 어산지를 법정에 세울 수만 있다면 법적 테두리에서는 물론이고,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별도의 법규정을 만들 태세다.
 <폭스 뉴스> 같은 극우 언론들은 위키리크스를 공격하는 선동적인 캠페인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이는 민주사회에서의 성숙한 논쟁보다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에 광적인 반응을 보인 중국 정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협박성 으름장을 연상시킨다. 이런 분위기에서 론 폴 텍사스주 공화당 의원의 “어산지는 철저한 탐문을 거치고 조사 작업을 하는 기자라면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는  발언이나, “어산지에 대한 파렴치한 공격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가 되는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위협할 뿐”이라고 보도한 <애틀랜틱>의 냉정한 평가는 미 정계의 독설과 맹공에 파묻힌 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어산지를 옹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과격한 발언으로 도배돼 있다. 어산지의 행위를 정당한 시민 불복종으로 격상시키는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은 “사방에서 중상모략이니 군대를 소집하라!”고 외친다. 마치 인터넷 군대를 연상시키는, 위키리키스를 지지하는 해커들의 모임인 ‘어나니머스’(Anonymous·익명)는 데이터 봉기를 일으켜 위키리크스를 곤경에 빠뜨리는 대기업들에 역공을 퍼부었다. 어나니머스는 ‘안티 위키리크스’ 기업들의 수천 개에 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에 해커 공격을 감행해 해당 회사의 홈페이지를 장시간 마비시켰다.
 어산지의 반대파들 역시 해커 공격을 감행했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의 첫 화면이 며칠간 접속되지 않은 적도 있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해킹 공격은 상당히 조직적이어서, 적잖은 사람들이 미 정부기관이나 정보 당국을 배후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실제로 위험에 처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방식으로 어산지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며 “미국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위키리크스에 맞대응하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자국의 법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거나 위반해, 결과적으로 우방국과의 관계를 침해하고 미국의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처벌 근거 찾기 어려워 

 2010년 7월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밀문서를 폭로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직후부터 미 정부의 법학자들은 어산지에 대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 정부가 아무리 검토해봐도 어산지에 대한 소송을 벌일 만한, 그리고 그 소송에서 이길 만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줄리언 어산지.

 미국 정부는 어산지에 대한 법정 소송이 단순한 수사적 위협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부의 법학자들조차 세미나에서나 나오는 공허한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자우편과 인터넷, 그리고 위키리크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1917년에 제정된 ‘스파이법’이다. 스파이법에 따르면, 미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정보를 불법으로 소유한 자는 처벌받게 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막 뛰어들었을 때 군복무를 반대하는 전단지를 배포한 한 사회주의자가 스파이법에 의해 처벌받은 적이 있다. 스파이법에 의하면, ‘미 군대의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방해하거나 적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전파하는 행위’에는 사형도 구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극성스러운 기자 정도로 이해하는 무정부주의자 어산지에게 이런 구시대적 법규정이 과연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파이법은 이미 미국의 대표적 언론매체인 <뉴욕타임스>에도 적용된 적이 있다.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던 즈음,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국의 승리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1967년 맥나라마 장관의 지시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연루된 경위를 담은 미 국방부 1급 비밀문서가 작성됐다. 존슨 대통령조차 이 보고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가운데, 전문가 36명이 머리를 맞대어 작성된 ‘펜타곤 페이퍼’의 분량은 무려 7천 쪽에 달했다.
 이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폭격을 가하는 등 암암리에 베트남전을 확전시켰다. 존슨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베트남에 폭탄이 투하되자,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대니엘 엘스버그는 맥나라마 장관의 표리부동을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과거 베트남에서 산 적이 있는 엘스버그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가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엘스버그는 1969년 말부터 방대한 양의 1급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주로 밤에 복사를 했는데, 분량이 워낙 많아 복사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전문의 누출자로 추정되는 브래들리 매닝 일등병이라면 아무리 방대한 분량의 기밀문서도 USB로 순식간에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매닝은 현재 미 버지니아주의 콴티코 기지의 독방에 감금돼 있으며, 가족 면회조차 금지돼 있다. 매닝 일등병은 52년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79살의 엘스버그는 매닝과 어산지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엘스버그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보고서 복사본을 몰래 전달했다. 두 신문의 편집부는 입수한 국방부 1급 기밀 보고서를 망설인 끝에 결국 보도했다. 존슨 대통령의 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두 일간지가 보도한 국방부 기밀 보고서 내용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정부의 기밀문서는 원칙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며 닉슨 대통령을 설득했다. 여론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던 키신저는 외교정책에 관한 한 여론은 순진무구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키신저는 엘스버그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닉슨 대통령의 하수인들은 국방부 기밀문서를 폭로한 엘스버그에게 불리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엘스버그의 정신과 의사 클리닉에 몰래 침입하기도 했다. 
 
“문건 유출한 어닝, 52년형 예상” 

 닉슨 정부는 스파이법을 근거로 엘스버그에 대해 법정 소송을 벌였다. 미 국방성의 기밀문서를 계속 보도할 경우 미국의 안보관계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이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위키리크스 폭로에 대한 시각과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슷하다. 오바마 정부는 미 국무부 외교전문 폭로에 대해 “미 군인들과 정부기관 관계자들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미국에 대한 우방국들의 신뢰가 깨질 것”이라고 강변한다.
 당시 닉슨 정부는 엘스버그에 대한 1심에서 승소했다. 연재 3회 만에 시리즈를 중단해야 했던 <뉴욕타임스>는 워싱턴 대법원에 항소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앞서의 판결을 뒤집고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시민들이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보장될 수 있으며, 기밀문서의 복사를 금지하기에는 ‘국가안보’라는 이유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밝혔다.
 이 판결은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1조의 실효성을 입증한 증거로 간주됐다. 수정헌법 1조에는 “의회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은 절대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수백 년 동안의 미국 법정 판결에 따르면, 나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로 독일 나치즘의 상징)를 들고 시카고의 유대인 거주지를 돌아다닐 수 있으며,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공개적으로 불태울 수 있다. 모두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보호된다는 뜻이다. 엘스버그나 두 일간지 기자들 중에서 스파이법에 의해 고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보를 (어산지처럼) 단지 소유하고 있어서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단 한 명도 없었다. 
 
 <뉴욕타임스>도 처벌하려 했던 미 정부 

 위키리크스의 시대에는 기존 관행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다이앤 페인스타인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안보위원장은 “스파이법을 적용해 어산지를 고소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어산지가 ‘미국에 해악을 끼칠 목적으로’ 정보를 활용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산지는 이 문건을 폭로하기 전에 미국 정부와 접촉했지만, 미 정부는 어산지에게 어떤 형태의 협력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산지는 미 정부에 치명적인 내용은 외교전문에서 삭제해줄 것을 언론사에 요청했다. 또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위키리크스의 외교전문 폭로는 미국 외교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미 정부는 위키리크스 폭로로 대체 어떤 피해를 입은 것일까?
 스파이법을 근거로 삼을 경우 어산지를 반란 혐의로 기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하려면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 입수 과정에서 어산지가 적극적으로 공조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외교전문을 입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조했다는 정황은 어디서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미국 법규정에 틈새가 있다면, 그 틈새를 메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틈새를 메우는 것에 위키리크스의 언론매체 파트너에 대한 제재도 포함될 수 있다. 조지프 리버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 보도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의 역할을 집중 조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비록 언론의 자유는 미묘한 사안이지만, 이 신문의 편집자들은 ‘나쁜 국민’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리버먼 의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슈피겔> 등 해외 언론매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위키리키스의 미 외교전문 폭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 정부의 보안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실험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전만 해도 미국의 모든 정부기관 관계자는 동료 직원도 믿지 않을 정도로 기밀문서를 철저히 감시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국내 조사관들은 테러리스트들 중 한 명이 항공훈련을 받았다는 정보를 절실히 찾고 있던 중앙정보국(CIA) 해외 조사관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9·11 테러의 충격으로 정부기관 간의 활발한 정보 교류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그러나 민감한 내용을 담은 문서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이 누출된 데이터뱅크에 현재 약 250만 명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암호문서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1996∼2009년 암호문서의 분량은 무려 75%나 늘어났다. 미 대법원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은 “모든 것이 비밀이면 아무것도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국가연금보험을 관장하는 연방사회보장국은 2010년 12월 첫쨋주에 전체 직원 6만2천 명에게 발송한 전자우편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건을 읽지 말 것을 누차 강조했다. 컬럼비아대학의 한 단과대학은 후일 정부기관에서 일할 생각이라면 위키리크스에 대한 솔직한 견해 표명이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를 학술자료에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해당 단과대학 사무실은 이어 12월 둘쨋주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대해 공개 토론을 금지하는 전자우편을 발송하기도 했다. 해당 전자우편에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대한 공개 토론은 학생 여러분의 기밀문서를 다루는 능력에 회의를 품게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미국 정부가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해 “일방적으로 겁만 잔뜩 줄 뿐 자아성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다. 나비 필라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인터넷 플랫폼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에 대해 “심히 우려스럽다”며, 이는 “위키리크스를 검열하고 견해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제3세계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추앙받는 임기 말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어산지가 절대 기소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외교전문 누출의 잘못은 그 작성자들에게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어산지를 박해하는 것은 “서구의 위선에 대한 증명”이라고 비난했고, 러시아 정부는 어산지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도록 독려했다. <북경인민일보>도 러시아 정부와 마찬가지로 어산지의 노벨상 후보 추천을 제안했다. 어산지의 모국이자 미국의 일편단심 우호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케빈 러드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국 총리와는 달리 미국을 격앙된 목소리로 비판했다. 미 정부야말로 비밀문서를 “태만하게 관리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 지지자가 어산지를 체포한 것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산지 성폭행 혐의는 CIA 음모? 

 어산지의 수많은 지지자들은 그가 런던에서 체포된 것은 위키리크스의 폭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실제로 어산지가 성폭행 혐의대로 개인적인 과오를 저질렀을 수 있다. 평소에는 투명성을 강조하는 어산지가 자신의 성폭행 혐의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한번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사회자로부터 성폭행 혐의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스튜디어를 바로 나가버린 적도 있다.
 어산지 지지자들은 영국에서 체포된 그가 함정에 빠졌다고 믿고 있으며, 그 배후세력으로 미국 CIA를 지목했다. 실제로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 사건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산지를 고발한 두 여성의 진술에 따르면, 둘은 당시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이틀 연속 어산지와 상호 동의하에 섹스를 했다. 그런데 두 여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산지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두 여성의 진술에 따라 스웨덴 검찰은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두 여성은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 뒤 어산지를 경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두 여성은 어산지가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여성에 대해 ‘삐딱한 가치관’을 가졌으며, 여성이 거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진술했다.
 두 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스웨덴 사법부는 전례 없는 형사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어산지 사건의 마리안네 니 스웨덴 담당검사는 성폭행 혐의로 어산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구속영장 발부를 철회했다. 2010년 11월 그가 어산지에게 새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까지 인터폴은 어산지를 수배했다. 어산지는 런던에서 심문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는 철창행을 피하기 위해 계속 은신하던 끝에 영국에서 자진출두했다. 어산지의 보석 신청을 처음에는 기각했던 영국 런던지방법원은 결국 2010년 12월16일 어산지의 보석을 최종 허가했다.
 
 교도소에서도 인터넷 사용한 어산지

 어산지를 고발한 두 여성의 변호사 클라에스 보르그스트룀은 실제로 어산지를 상대로 성폭행 심리가 진행될 확률을 50%로 전망했다. 최악의 경우 어산지는 4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산지는 적어도 한 가지는 믿을 구석이 있다고 보르그스트룀은 지적했다. “스웨덴의 법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공정합니다. 위키리크스 사건이 어산지 성폭행 혐의 사건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산지는 보석이 허가되기 직전에 교도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PC를 교도소에 반입하는 것은 금지됐다. 어산지는 2010년 12월10일부터 제한적인 조건 아래 구형의 PC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의 변호사들이 전했다. 어산지는 모국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 한 선언문을 발송했다. 선언문에는 어산지의 과대망상 증상도 언뜻 비친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자 새로운 시대의 혁명가로 과대평가하는 어산지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선언문에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위키리크스는 세상에 공개돼야 하는 사실을 발표했다. 언론의 진실 보도를 정치인들이 막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위키리크스는 ‘학술적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위키리크스도 언론매체임을 분명히 한 어산지는 위키리크스의 폭로 내용에 대한 기존 언론매체들의 평가 작업을 폄하하지 않았다. “위키리크스가 언론매체들과 협력하는 것은 전세계인에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위키리크스가 표방하는 학술적 저널리즘 덕택에 독자들은 스토리를 읽은 뒤 인터넷에서 해당 스토리의 토대가 되는 원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언론매체에서 읽은 스토리가 진실인지, 기자가 스토리를 정확하게 보도했는지 직접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어산지는 자신이 체포되면 어느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 2009년 겨울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인 롭 공그리지프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네덜란드 친구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겨울철이면 특히 지내기에 좋다”고 어산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법천지인 관타나모 수용소는 자신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어산지는 친구에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산지는 자신이 ‘반미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어산지는 자신이 최초로 폭로한 내용이 소말리아의 이슬람주의자들 및 케냐의 부패와 불법 사형에 관한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 폭로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어산지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조차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2010년 7월 말 그는 자신을 최후의 순간에 보호해줄 일종의 보험으로 한 암호파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전세계 어산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호기심 어린 네티즌과 비밀정보요원들이 자신의 PC에 ‘insurance.aes256’을 내려받았다. 암호파일의 용량은 소설책 1천 권 이상을 담을 수 있는 1.4GB나 되었다.
 하지만 어산지가 인터넷에 올린 대용량의 암호파일을 연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 그가 대용량 파일을 어떤 방식으로 암호화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해당 파일을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AES’(Advanced Encryption Standard) 프로세스로 256비트로 암호화했다는 어산지의 말이 맞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도 이 파일의 암호를 푸는 데 40여 년이 걸린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등 비밀정보국이 극비문서에도 적합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AES256 Standard’는 실제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어산지는 마음만 먹으면 암호파일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다. 자신과 위키리크스에 안 좋은 일이 닥칠 경우, 자신이나 지지자들이 암호파일의 열쇠를 공개할 것이라고 그는 공언했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인이 구사함직한 속임수를 떠올리는 작전이다.
 베일에 싸인 암호파일의 내용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암호파일은 일절 필터되거나 삭제되지 않은 미 국무부의 전체 외교전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관타나모 수용소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영업기밀 등 어산지가 폭로를 예고한 내용일 수도 있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금융기관에 관한 기밀을 유출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을 무렵, 은행 관련 주가지수는 하루 만에 3% 이상 떨어졌다. 어산지는 수감 중이거나 혹은 지금 당장 죽더라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셈이다. 
 
 외교전문 내용 왜곡까지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법정소송은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 법적 절차 외에는 위키리크스와 위키리크스를 압박하는 기업인과 정치인 양쪽 모두 팽팽한 대립 전선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키리크스 폭로로 전세계가 시끄러운 틈을 타서 외교전문의 실제 내용이 교묘하게 위조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2010년 12월9일 목요일 인도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파키스탄의 여러 일간지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인도의 장군들과 인도 정부에 대한 미국 외교부의 평가를 일제히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인도의 장군들과 인도 정부는 힌두교 극단주의자들과 암암리에 연합을 맺어 파키스탄에 저항하는 호전적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파키스탄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의 <가디언>이 자체적으로 보관 중인 외교전문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런 내용의 기사는 해당 언론매체가 꾸며낸 것임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의 들끓던 민심이 인도를 규탄하는 유혈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파키스탄 사태는 외교전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중요하며, 현 상황에서 미 정계의 최우선 순위는 폭로된 외교전문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미 국무부가 이런 후속 조처를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정부 전체가 위키리크스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 Der Spiegel·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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