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제 > 비즈니스
     
과거 안주로 낡은 이미지 ‘번아웃 브랜드’ 사례 늘어
[FOCUS] 위기의 전통 브랜드- ① 원인
[114호] 2019년 10월 01일 (화) 크리스티나 그니르케 economyinsight@hani.co.kr

유명 브랜드가 무조건 신뢰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소비자는 더 이상 유명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는다. 톡톡 튀는 중소 브랜드가 추월하고, 대형 유통사는 뒤처진 브랜드를 무자비하게 매장에서 빼버린다.

크리스티나 그니르케 Kristina Gnirke
알렉산더 퀸 Alexander Kühn
마리아 마콰르트 Maria Marquart
<슈피겔> 기자

   
▲ 생선튀김 제조업체 ‘이글로’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소금 함유량을 줄인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고, 이글로 선장 로고를 다시 사용하는 등 대대적인 변화에 들어갔다.

얼마 전 생선튀김 제조업체 이글로(Iglo)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손님들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옛 공장 건물로 초대했다. 대황(독일에서는 샐러드 채소로 먹음 -편집자) 위에 놓인 생선튀김이 제공됐고, 선원 합창단이 부르는 이글로 선장(이글로 상징으로 흰 수염의 선장 -편집자)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글로 선장으로 분장한 행사요원들이 완벽하게 갖춰 입은 10여 명의 여성 블로거와 인플루언서(소셜네트워크 유명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전통과 시대정신의 만남이다.
이글로는 한때 경영 상황이 나빠져 위기를 맞았다. 선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선장은 이글로 광고모델에서 해임됐다. 이글로를 인수한 사모펀드 퍼미라(Permira)는 모든 것을 바꾸려 했다. 경영진은 전자레인지용 제품에 주력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생선튀김 판매량이 줄고 사업 실적이 악화했다. 2015년 이글로는 냉동식품업체 노매드(Nomad)에 팔렸고 상황이 나아졌다.
이글로는 주력 제품인 생선튀김과 시금치 등 냉동 채소에 집중했다. 소금 함유량을 줄인 조리법을 개발하고, 이글로 선장 로고를 다시 차용했다. 이글로 선장도 더 이상 짝퉁 산타클로스처럼 보이지 않았고 좀더 산뜻한 인상이었다. 2018년부터 이탈리아인이 이글로 선장을 연기하고 있다. 또 한 번 위기를 잘 넘긴 것이다.
이글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과거 독일의 모든 어린이가 알던 브랜드도 오늘날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독일 고급 생활용품 브랜드 헨켈(Henkel)의 ‘샤우마 샴푸’나 ‘파 샤워젤’처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헨켈은 옛 이미지가 남아 있는 브랜드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매년 3억유로(약 4천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니베아 제조업체인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는 자사 제품에 젊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최대 8천만유로를 썼다. 필연적인 조처였다. 유럽에선 현재 소형 화장품 브랜드가 새 강자로 떠올라 화장품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전통 브랜드 니베아는 위기 상황이다.

이글로의 성공, 네슬레의 실패
많은 브랜드가 이미 항복했다. 네슬레의 보리커피 카로(Caro·카페인이 없어 국내에서 임신부용 커피로 알려졌음 -편집자)는 오랜 전통을 지닌 브랜드였지만, 판매가 줄어 2018년 루트비히스부르크 공장 문을 닫았다. 니베아·네슬레 같은 브랜드는 한때 독일 국영방송 <ARD> <ZDF>, 사회민주당(SPD) 등 공공기관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재 소비자가 더는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결혼생활조차 20년 넘게 지속하기 힘든데, 왜 평생 같은 브랜드 크림을 써야 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젊은 소비자는 까다롭게 제품을 선택하고 특정 제품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브랜드 충성보다 친환경, 독창성, 사회정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한다. 상당수 전통 브랜드는 성공에 만족하며 시간을 허비했고, 이제는 게을러진 늙은 거인처럼 보인다.
브랜드 신뢰가 무너진다는 건 통계로도 느낄 수 있다. 네슬레, 프록터앤드갬블(Procter & Gamble), 유니레버(Unilever) 등 소비재 기업은 2018년 고작 1~3% 성장률을 달성했다. 2011년만 해도 이보다 두 배 이상 성장률을 보였다.
전통 브랜드 업체는 판매가 줄었지만 수익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절약 프로그램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투자와 혁신에서 뒤처졌다. 수많은 전통 브랜드가 현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전통 브랜드는 젊은 세대 눈에는 굼뜨고 보수적이며,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부족해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fK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GfK는 브랜드 상품을 ‘번아웃(Burn-out·소진) 브랜드’와 ‘챔피언 브랜드’로 분류했다. 번아웃 브랜드는 고객이 점점 이탈하며 우연히 제품을 사는 브랜드다. 반면 챔피언 브랜드는 단골 고객을 비롯해 전체 고객 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브랜드다.
GfK에 따르면 수년 전부터 번아웃 브랜드가 챔피언 브랜드보다 많아지고 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통 브랜드를 공격하는 스타트업(신생 기업)이 늘어나는 경우, 유통업체가 OEM(주문자상표 부착 생산) 상품을 제작해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시대에 뒤처진 기성 브랜드가 변화와 혁신에 매진하지 않는 경우다. 번아웃 브랜드는 나탈리 리히터 같은 독창적인 창업자에게 쉬운 희생물이 된다.

   
▲ 독일 고급 생활용품 브랜드들은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헨켈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매년 3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테러리스트 리히터
리히터는 테러리스트다. 어쨌든 이 여성은 자신을 이렇게 칭한다. 34살 리히터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 이름은 ‘테러리스트 오브 뷰티’다. 사실 이 제품은 안티브랜드(브랜드보다 성분과 기능에 충실한 제품을 지향 -편집자)다. 리히터와 공동 창업자는 그들이 말하는 ‘화장품 산업 법칙’에 대항해 투쟁한다. 욕실에 화학물질로 가득 찬 용기를 10여 개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다. 리히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 하나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일반 비누가 아니라, 그가 파는 친환경적이고 순식물성이며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비누를 말한다.
리히터는 코르셋만 입은 젊은 여성이 의자에 앉아 손에는 기폭장치, 허리에는 비누로 가득 찬 폭탄 허리띠를 두르고 기존 화장품업체를 비난하는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www.youtube.com/watch?v=atsX-cFXbJg 참조). 영상 속 리히터는 이렇게 말하며 기폭장치를 누른다. “우리는 당신들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나는 더 이상 이것을 원치 않는다. 이 게임에 더는 참여하지 않겠다.” 그다음엔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바뀐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테러리스트 비누로 샤워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테러리스트 오브 뷰티는 2019년 12월 출시될 예정이다. 2019년 2월 리히터는 독일의 유명 마트 체인 에데카(Edeka)의 마트 구매 담당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열린 태도에 놀랐다. 유통업체가 우리 같은 브랜드를 취급하기는 쉽지 않다. 제품 한 개 가격이 12.9유로(약 1만5천원)로 상당히 높고, 기존 비누·샴푸 같은 카테고리에 포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 오브 뷰티 비누는 이미 에데카 매장 2곳에서 팔리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각 에데카 매장이 개별적으로 신생 기업 상품을 파는 에데카 스타트업 플랫폼을 활용해 리히터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아주 힘든 일이었다. 당시 리히터는 사과주스 브랜드 리브(Leev)를 만들었다. 하지만 유통업체 담당자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다. 유통망은 대부분 닫혀 있고, 혹시 열렸다 해도 금방 다시 닫혔다. 에데카 진열대에 제품을 놓을 때까지 그랬다. 리히터는 “당시 스타트업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식 변화’가 뚜렷하게 이뤄졌다.

스타트업 공격에 민첩해야
여성 창업자 2명이 내놓은 비누 한 제품이 프록터앤드갬블 같은 대기업과 니베아 같은 전통 있는 브랜드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다. 현재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무엇보다 업체 수가 상당하기에 위협적이다. 이들은 마치 피라냐처럼 소비재 기업의 수많은 사업 부문을 물어뜯어 빼앗으려 한다. 거인들은 이들 공격에 저항할 만큼 충분히 민첩하지 못하다.
점점 더 많은 고객이 젊은 반란자, 일명 ‘마이크로 브랜드’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최대 1억유로로 추정된다. 경영컨설팅회사 올리버와이만(Oliver Wyman)은 기존 브랜드는 스타트업 브랜드보다 규모가 평균 266배 크지만, 소규모 브랜드는 기존 브랜드보다 19배 이상 빠르게 성장한다고 분석했다. 독일 전체 시장에서 현재 마이크로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지만, 5년 뒤에는 이 비율이 25%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강력한 동맹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슈퍼마켓이다. 이들은 스타트업 제품에 기꺼이 매대를 내주고, 대신 기존 상품을 판매 품목에서 삭제하고 있다. 에데카보다 저렴한 제품을 취급하는 마트 체인 레베(Rewe)의 구매 담당 책임자 한스 위르겐 모크가 말했다. “젊은 스타트업이 판매시장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수많은 난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원해야 한다.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유명 브랜드 제품만 슈퍼마켓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되지 않는다. 레베에서는 소규모 맥주 브랜드 10여 종이 좋은 자리에 놓이고, TV 광고에 나오는 맥주는 부끄러운 듯이 구석에 세워져 있다. 조미료 진열대 상황도 비슷하다. 한때 ‘맛 폭탄’이라던 마기(Maggi) 제품이 고정적으로 놓였던 자리에 이제는 신규 브랜드 저스트스파이스(Just Spices)가 진열돼 있다.

ⓒ Der Spiegel 2019년 24호
Die greisen Riesen
번역 황수경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