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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으로 이주했던 동독인들의 귀향
[ISSUE] 베를린장벽 붕괴 30년
[114호] 2019년 10월 01일 (화) 알렉산더 융 economyinsight@hani.co.kr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 사람 수백만 명이 “서쪽으로!”를 외쳤다. 서쪽에 일자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처음으로 옛 동독 지역의 유입 인구가 유출 인구보다 많았다. 서쪽으로 이주한 이들이 가족 품이 그리워 돌아오거나, 동독 지역에서 전문 인력을 대거 필요로 하고 있다.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슈피겔> 기자

   
▲ 최근 몇 년간 옛 동독 지역이 경제 호황기를 맞아 좋은 일자리가 늘어난 반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 지역 도시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동독 이주를 돕는 캠페인을 벌이는 배경이다.

70년 동안 독일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주가 두드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독재를 피하기 위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실업을 피하기 위해 서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흐름이 수그러들었고, 심지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몇 세대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옛 서독에서 옛 동독으로 이주한 이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서독을 벗어나 동쪽으로 이주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동독 출신이다. 한때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들에게 동독은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 있고 부모가 살고 있는 곳이다.
1982년 켐니츠에서 태어난 니콜 레만도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레만의 여권에는 여전히 출생지가 카를마르크스슈타트(켐니츠의 옛 지명)라고 적혀 있다. 아비투어(독일 대학입학시험)를 마친 뒤, 남자친구를 따라 서쪽 루트비히스부르크로 이주했다.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고, 결혼해서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한 번도 안정을 느낀 적이 없다. 남독일 슈바벤 지역 사람이 친절했음에도 말이다. “오랫동안 집이 없는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
현재 레만은 켐니츠로 돌아와 원형 편물기계를 만드는 회사 테로(Terrot) 인사부에서 일한다. 3년 전 남편과 별거를 계기로 켐니츠로 이주했다. 레만은 고향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주를 결심하던 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레만은 부모에게 돌아오겠다는 결정을 알렸던 주말, 어린 시절을 보낸 플라텐바우(콘크리트 판으로 만드는 건물) 아파트가 늘어선 거리를 산책했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거리, 놀이터, 유치원에서 과거에 맡았던 냄새를 떠올렸다. “내가 켐니츠에 계속 살았다면 아마 이 도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 사람 수백만 명이 서쪽으로 이주했다.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동쪽으로 역이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일자리 찾아 서독 이주 급증
서쪽으로 이주했다 동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옛 동독 사람이 늘고 있다. 그들은 옛 연방주(서독 지역)로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사이 엑소더스는 멈췄고 현재 ‘역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1991년과 2017년 사이 370만 명이 옛 동독 지역을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250만 명이 서쪽에서 새 연방주(옛 동독인데, 통일 이후 5개 연방주로 편입했다)로 이주했다. 동독에서만 120만 명이 줄었다. 그만큼 노동 인력과 납세자가 사라진 것이다. 전문 인력이 빠져나가서 이 지역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한 세대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주한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받아 야망이 크고 정신적으로 유연하고 이동이 자유로웠다.
서독 이주의 첫 번째 물결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마자 시작됐다. 당시 동독에는 젊은 여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는데 이들이 서쪽으로 이주했다. 두 번째로 대거 인구가 이동한 시기는 2000년대였다. 당시 옛 동독 지역 실업률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동독 외곽 지역에 살던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났다. 서쪽의 부유함을 동경하던 이들은 주로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들을 서쪽으로 끌어들이던 매력이 사라졌다. 서쪽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다시 동쪽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독일연방인구연구소는 2017년 이주 통계에서 처음 동쪽으로 이주한 인구가 4천 명 정도 더 많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로 작센과 브란덴부르크로 이동했는데,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 트렌드 변화에서 기인했다. 그렇다고 동독 출신이 떼지어 돌아온 것은 아니다. 서쪽에 오래 살아 이미 터 잡은 이들이 대부분 그곳에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옛 동독인이 고향으로 되돌아오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조사된 바 없다. 하지만 노동시장과 직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0~2012년 서쪽으로 이주한 동독 지역 주민 32만4천 명 중 5만3천 명이 역이주했다. 6명 중 1명이 되돌아온 셈이다. 역이주 그룹은 평균 서독 지역에서 3년 남짓 살았다. 5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거의 역이주를 하지 않았다. 켐니츠 출신 레만은 13년 만에 귀향했지만 말이다.
레만이 고향으로 돌아온 가장 큰 계기는 남편과의 별거였다. 그녀는 자신과 아들을 위해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아이를 맡기려면 한 달 890유로(약 117만원)가 들었다. “월급에서 이 돈을 빼면 겨우 용돈 정도가 남았다.”
켐니츠에서는 가족에게 기댈 수 있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쌌다. 유치원 등록금과 빵은 물론 19세기 초반에 지은 멋진 빌라가 있는 카스베르크 인근 아파트 임대료도 저렴했다. 임대료는 1㎡당 6.50유로 남짓이다.

   
▲ 1991년과 2017년 사이 37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옛 동독 지역을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옛 동독 지역으로 들어온 인구는 250만 명이다. 동독 지역에서만 120만 명이 줄었다. 하지만 최근 동쪽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추세가 역전됐다.

인생 전환기 맞아 동독행 결심
브란덴부르크주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레만을 돌아오게 한 이유는 다른 이들을 움직이게 한 동기와 일치했다. 그들은 대부분 직업교육이나 일자리를 찾아 서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직업적 이유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서독을 고향처럼 느끼지 못했고, 가족이나 친구 곁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월급이 줄거나 쇼핑센터와 병원 근접성이 열악해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다.
많은 동독 지역 도시가 역이주를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에만 12개 이니셔티브가 있다. 이니셔티브는 이주민이 아파트나 직업을 찾는 것을 돕고, ‘커밍 홈’ 파티를 열거나, “엄마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돌아오세요!”라는 안내서를 배포한다. 12월27일에는 ‘역이주인의 날’ 행사도 연다. 이때 서쪽으로 이주한 많은 사람이 동쪽 고향 가족을 방문하는데 이들에게 고향의 장점을 홍보한다.
일자리 때문에 서쪽으로 갔다가 사적인 이유로 동쪽으로 돌아오는 것이 서독과 동독 사이를 오갔던 이들의 전형이다. “이들은 홀로 서쪽으로 갔다가 가족을 이뤄 동쪽으로 돌아온다.” ‘브란덴부르크로 오세요’라는 네트워크에서 일하는 산드라 슈펠처가 설명했다. 슈펠처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여러 이니셔티브를 관리한다. 그녀가 관여하는 이니셔티브는 동독 이주에 관심 가진 사람을 돕고 있다. 주로 삶의 교차점에 서 있을 때 동독 이주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임신하거나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생일이 가까워질 때 등이다. 어디서 인생 다음 단계를 보낼까, 동쪽과 서쪽 어느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좋을까를 생각한다.
역이주하는 이들 중 가장 큰 그룹은 가정을 막 꾸리기 시작한 30대 남녀다. 두 번째로 큰 그룹은 50대다. 부모를 돌보기 위해 혹은 부모 집으로 들어와 살기 위해 이주한다. 세 번째로 많은 그룹은 시니어층이다. 이들은 안정을 느끼는 환경에 정착하기를 원한다. 인생 마지막 장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은 것이다.
2018년 12월 켐니츠 경제부양협회는 켐니츠를 홍보하기 위해 도시 간 특급열차(ICE) 한 대를 전세 냈다. 뉘른베르크에서 역이주를 염두에 둔 사람을 태웠고, 기차 여행을 하는 동안 작센주에 있는 회사의 고용 기회와 가능성을 설명했다. 이 캠페인은 “켐니츠 매력에 빠져보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120개에 이르는 회사 후원을 받았다.
켐니츠는 기술 중심 도시다. 몇몇 자동차 부품사와 기계 제작회사가 있다. 이들 기업 다수가 능력 있는 인재를 영입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회사들은 서쪽에서 돌아오는 이들이 인력 부족을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몇 년 전만 해도 인력 부족은 상상할 수 없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에서는 실업률이 급증했다. 1991~2004년 실업률은 10.2%에서 20.1%로 두 배나 높아졌다. 기업은 지원자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얼마 전 실업률은 7% 이하로 떨어졌고 많은 회사가 인력난을 겪고 있다.
독일 통일 뒤 산업 인력이 서쪽으로 이주했기에 젊은 세대의 공백이 이 상황을 더욱 심화했다. 1990년 이후 옛 동독에서 출산율은 땅에 떨어져서 현재 청년층 인구가 매우 적다.
인사부장인 레만은 젊은이를 고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겪고 있다. 그녀는 2001년 켐니츠에서 아비투어를 마친 뒤 견습생 자리를 구하느라고 지원서 수백 장을 썼다. 3년 전 돌아온 레만은 이제 반대 상황을 마주했다. 좋은 직업을 구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동쪽의 경제는 지난 몇 년간 호황이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음에도 인력이 모자랐다. 전문 인력 부족은 동독 지역 성장에 방해가 됐다. 인력 노화는 기업 프로필을 바꿔놓았다. 젊은이 수가 너무 적었고 노동자는 점점 고령화했다.

   
▲ 옛 동독 지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가정을 막 꾸리기 시작한 30대 남녀가 가장 많다. 그다음은 부모를 돌봐야 하는 50대 그룹, 고향에서 인생의 마지막 장을 보내고 싶은 노년층이 많다.

동독 이주 돕는 도시와 시민단체
PSFU는 하르츠산맥 북쪽 베르니게로데에 있는 정밀 연삭회사다. 이 회사에서 직원 평균나이는 46살이지만, 과거에는 40살 이하였다. 당시 이 회사는 직업훈련생 2명을 채용하면서 15~20개 지원서를 받았다. 현재는 누군가 철판 가공을 배우러 온다고만 하면 대환영이다.
PSFU가 만들어내는 정밀 연삭 부품은 인공위성에 꼭 필요하다. 아펠트는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자신도 젊었을 때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했다. “그들도 고생해봐야 깨달을 수 있다. 나중에라도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펠트는 서쪽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동쪽으로 직장을 옮기면 인력을 충원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는다. 언젠가 누군가는 매일 출퇴근 시간에 1시간씩 차에서 허비하는 일에 염증을 느낄 것이다. 베르니게로데에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길에 서 있는 광고판에 시계 사진과 함께 “시간은 금이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지금 지원하세요. 당신 시간을 아끼세요!” 동쪽 회사로 직장을 옮길 것을 권고하는 문구도 적혀 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흘렀지만, 이 고속도로는 출퇴근하는 사람으로 항상 교통체증을 겪는다. 33만2천 명이 옛 동독에 살면서 옛 서독으로 출근한다. 역이주를 돕는 이니셔티브는 이들에게 동쪽으로 직장을 옮기라고도 권유한다. “사는 지역 이점을 누리세요, 하르츠”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한다. <ZDF>와 <슈피겔TV>가 만든 다큐멘터리 <독일: 현주소>는 이 단체 회원들과 함께 촬영했다. 이니셔티브들은 아침 일찍 서쪽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쉬어가는 주차장으로 나간다. 이 단체 회원인 카티뢰브는 ‘동쪽에 머무세요’라는 포스터를 들고 운전자에게 커피와 명함을 나눠주면서 자신들 단체를 방문하기를 권유한다. “하르츠에 당신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당신은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
카티뢰브의 본업은 광고업이다. 그녀 역시 과거 서쪽으로 출근했다. 1년6개월 동안 매일 하르츠에서 볼프스부르크를 오갔다. 하지만 금방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짐을 느꼈다. “나는 하르츠의 아이다. 우리 교회 첨탑을 매일 봐야 한다.”
역이주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 자체만으로 동독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한다. 라이프치히 같은 도심에선 인구가 늘지만 시골은 인구 감소로 고통받고 있다. 옛 동독에 속했던 5개 주 시골 지역에서는 15년 안에 인구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출산율이 매우 낮아서다. 몇몇 지역에선 생산인구의 3분의 1을 잃을 것이다. 이런 인구 감소는 역이주 움직임으로도 막을 수 없다.
드레스덴 IFO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제학자 요아킴 라그니츠는 “동독으로 이주가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서독과 동독 사이 경제력과 삶의 기준 격차가 앞으로 눈에 띄게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동쪽으로 역이주하는 현상이 언젠가 멈출지도 모른다. 동쪽의 인구 감소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 Der Spiegel 2019년 32호
Rüber und retour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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