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대일 의존 산업구조 드러난 계기
[COVER STORY] 한-일 경제전쟁- ① 분석
[113호] 2019년 09월 01일 (일) 김규판 keiokim@kiep.go.kr
일본 아베 정부는 한국에 수출하는 3개 소재를 허가 품목으로 지정하고,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아베 정부 도발로 불거진 한-일 경제전쟁은 국내에서 일본 제품·여행 불매운동으로 확산하면서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에 두 나라의 경제전쟁이 국내 산업·금융·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국내 싱크탱크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산업연구원에 이에 대한 분석과 대응 기고를 긴급히 요청해 싣는다.  _편집자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 선임연구위원
 
   
▲ 2019년 8월2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서 관람객이 반도체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965년 국교 정상화와 함께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된 지 4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일 무역 구조를 보면 한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본 기술과 자본에 상당 부분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전체 수입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 즉 대일 수입 의존도는 2000년대 들어 10%대로 낮아졌지만 1970년대 40%대, 1980년대 30%대로, ‘수출입국’을 지향한 한국으로선 일본에서 수입은 거의 ‘필수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에서 중간재, 즉 부품·소재·장비를 수입해 가공한 뒤 전세계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한 셈이다.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를 보면, 1965년 국교 정상화 뒤 줄곧 적자를 기록하다 2005년 이후에는 매년 200억~300억달러 규모 적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매년 적자액의 60% 정도는 부품과 소재 산업에서 파생되고 있다. 한국의 대일 의존적 산업구조가 양국 간 무역구조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1일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 품목 수출규제 강화 조처(리스트 규제)를 단행했다. 동시에 전략물자 수출관리제도 운용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절차(캐치올(Catch-all) 규제)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전자의 리스트 규제 조처는 7월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후자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처는 일본 국내 절차를 거쳐 8월26일 시행됐다.
 
국교 정상화 이후 대일 무역 적자 고착
첫 번째 ‘리스트 규제’ 조처가 한국의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 품목을 대상으로 했음은 분명하다. 플루오린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대일 수입 의존이 각각 94%, 92%고,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도 44%로 비교적 높다. 
 
일본 정부 수출규제 조처의 근본 배경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불만에 있고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이 차지하는 위상, 예를 들어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수출규제 조처는 ‘경제보복’ 성격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일 의존도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이 그동안 일본 소재산업에 얼마나 의존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처는 첫 번째 리스트 규제 조처보다 한국 기업의 대일 부품·소재 의존도를 더욱 부각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캐치올 규제 조처는 첫 번째 리스트 규제와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포괄적 수출허가를 개별적 수출허가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리스트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 품목 중 식료품, 목재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 없는 일부 품목을 제외한 모든 품목’이 규제 대상이라는 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19)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의 대일 수입에서 ‘캐치올 규제’ 대상 품목 중 대일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것은 707개, 100%인 것은 82개에 이른다. 대체로 공작기계, 화학약품, 전자부품, 첨단소재 등을 일본에서 수입·조달하는 한국 기업에 피해가 예상된다. 일본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 자동차, 통신 네트워크 기기, 산업기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9년 8월14일 대전 유성구 한국기계연구원에서 국내 기업이 개발 중인 CNC 장비 스마트 운용 모듈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자금회수설’ 가능성은
한국 경제의 ‘비대칭적’ 대일 의존 관계, 그에 따른 취약성은 금융 분야에도 내재돼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앞두고 한국 경제 불안을 감지한 일본계 은행이 자금회수에 나섬으로써 다른 외국자본 이탈을 유도했고, 결국 외국계 채권자의 자금  회수(creditor’s run)가 외환시장 혼란과 원화가치 급락을 초래한 또 다른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번 수출규제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한국 금융의 취약성을 이용하려는 일본 쪽 발언이 돌출했다. 한 예로 “한국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고 공적 금융기관의 국제신인도도 대체로 낮아 한국계 은행이 발행하는 신용장을 일본계 은행이 보증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하는데, 이런 지원을 중단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쪽 한국계 은행에 ‘우대 조처’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심지어 한국계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구두 개입’만으로도 한국 기업은 외환시장에서 달러 조달이 어려워지고 궁극적으로 제2의 외환위기 사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번 수출규제 국면에서 일본 금융기관 ‘보복’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일본계 은행의 국내 기업 여신은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에 집중된 점에서 일본계 은행이 자금회수에 나설 인센티브를 발견하기 어렵다. 
 
나아가 국내 은행들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대외부문 외환 건전성 개선, 즉 외화 차입 규모 자체를 줄인데다 단기차입 비중도 대폭 낮춰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 자본의 자금회수에 따른 충격을 사전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충분한 외환보유액 확보와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같은 금융 안전망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일본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더라도 그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게 중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외경제 환경이 악화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본계 금융기관의 ‘자금회수설’은 지속적인 대비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비교우위 관점에서 ‘국산화’ 정책 추진해야
그렇다면 이번 일본 수출규제 조처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한국 정부는 8월2일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6대 분야에서 단기 대응이 시급한 20개 품목과 자립화에 시간이 필요한 80개 품목을 선정한 뒤 수입국 다변화, 공장 신·증설 신속 처리, 조기 기술 개발에 긴급 자금 투입, 수입 대체, 국내 대체, 재고 확충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국내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부품·소재 분야에서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국산화’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의 부품·소재 국산화 정책은 어제오늘의 현안이 아니었고, 그동안 자동차부품이나 전자부품 분야에서는 대일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데 다소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부품·소재, 특히 소재 분야 ‘국산화’ 정책은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업을 어떻게 재구축하고, 나아가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지원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지 등 중장기적 ‘제도 설계’가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글로벌 가치사슬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든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작을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 정책으로 흐를 개연성도 높다. 바꿔 말하자면, 현재 한국 부품·소재 분야에 ‘냉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비교우위 관점에서 ‘국산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이 구축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포함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효과적 활용을 함께 고려한 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9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