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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기획사 기업공개의 ‘함정’
[CULTURE & BIZ] ‘승리 게이트’로 본 케이팝 산업 ①
[113호] 2019년 09월 01일 (일)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2019년 5월14일 전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버닝썬 사태 등 이른바 ‘승리 게이트’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현황에 많은 의구심이 생겼다. 케이팝(K-Pop)이 성공하면서 뒤쪽으로 계속 미뤄왔던 문제가 이제야 터진 것이라는 반성도 있다. 산업구조라는 하드웨어 측면과 음악·상품성 등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나눠, 두 차례에 걸쳐 케이팝 산업의 현재를 점검해보려 한다.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승리 게이트로 시작된 케이팝 기업 문제를 한번 정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접대’ ‘마약 복용’ ‘불법 영업’ 같은 윤리적 문제까지 쏟아지면서 개인과 구조의 문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몰아치는 파도가 잦아지기를 기다리며 다시 곰곰이 복기해보았다. 결론은 개인의 도덕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구조 탓도 크다는 것이었다. 

비극의 출발점
무자비한 자본 속성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에 닥친 많은 문제는 대부분 기업공개, 즉 코스닥 시장 등록과 외부 투자금 유입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벤처기업이 성장하면 기업공개로 상장하기를 희망한다. 상장하려면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일단 이를 통과하면 여러 이점이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증권시장에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 대출보다 주주에게 자금을 모으기가 쉽기도 하거니와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상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업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숨겨진 기업가치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공개 기업은 순식간에 기업가치가 오르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기업 인지도가 높아지는 장점도 있다. 각종 상장기업 정보는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 사소한 소식도 주주에게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를 얻으며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초기 투자자에게 이익 실현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특히 큰 매력이다. 기업 설립 초기에 투자한 사람이 이익을 얻으려면 투자 지분을 적당한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데서 좋은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할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 대부분 기업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상장해 초기 투자자에게 이익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업공개의 달콤함 뒤에는 치러야 할 대가도 따른다. 공시의무가 가장 크다.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회사 경영 상황을 투자자에게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 모든 주주에게 경영 정보를 밝혀야 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제재를 받는다. 
 
YG 같은 케이팝 기획사들이 주식시장에 공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가 2000년 4월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등록했고, YG가 2011년 11월 두 번째로 코스닥에 직접 등록했다. 2013년에는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가 관계사 인수·합병으로 코스닥에 우회 등록을 했다. 케이팝을 이끄는 3대 기획사가 모두 주식시장에 등장한 것이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위험 관리
이들 기획사에 기업공개는 꼭 필요한 절차였을까. 당시 기업 상황에 비춰볼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이 기업들은 걸출한 스타들을 아시아와 세계 시장에서 연달아 히트시키며 상상할 수 없는 이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대중문화 산업의 특성상 이런 수익이 계속 유지된다고 낙관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큰 변수가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위험)다. 기본적으로 대중문화 산업에서 높은 인기는 단번에 사그라들 수 있다. 남자는 입대로 갑자기 활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 멤버 계약 기간에 따라 한창 인기가 많을 때 그룹이 해체되기도 한다. 얌전한 줄 알았던 소속 가수가 느닷없이 사고를 치기도 한다. 어떤 산업이든 위험은 존재하지만, ‘사람’이 주요 사업 동력인 탓에 제어할 수 없는 문제가 늘 잠재돼 있다. 
 
기업이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대체재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다. 제조업으로 치면 상품 다각화다. 잘나가는 A팀 바통을 B팀이 이어받고, B팀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C팀이 넘겨받으면 된다. 보유 상품이 넉넉하다면 한두 팀에서 문제가 생겨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 한 팀을 만들어내는 데 보통 3~6년이 걸린다. 많은 연습생을 확보하고 노래와 춤 등을 가르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해외시장 확대로 외국 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나 외국인을 멤버로 구성하면서 비용은 더 늘어났다. ‘상품성’ 있는 아이돌 그룹을 구성하기에 후보군도 넉넉지 않다. 다양한 상품 개발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 주요 수익원에서 문제가 생기면 큰 위기다. 우리나라 기획사 가운데 자금이 필요할 때 금융권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주요 자산이라고는 사무실 임대권 정도가 전부인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 승인을 위해 필수적으로 살펴보는 기업 재무제표를 한 번도 작성해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기업에서 몇 년치 수익이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생각은 무엇일까. 수익성이 조금이라도 낫고 주목받을 때 재빨리 기업공개를 해서 외부 자금을 쉽게 들여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기업공개로 자금을 확보해 여유 있게 가수를 키워보자는 ‘소박한’ 생각을 하는 게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은 아니었을까. 초기 투자자에게 이익 실현 기회도 줘야 할 테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다가간 자본은 똑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한국 대표 케이팝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에 음악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 목표는 더 많은 수익이다. 가수 양성과 활동은 기본일 뿐, 더 높은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꾸준한 매출 증가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문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 상장기업에 요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것이 기획사들의 기존 사업 형태와 조금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요구에 케이팝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대응해왔다. 외식, 뷰티, 패션, 게임, 여행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다각화에 나섰다. 하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소속 스타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쉬웠지만 경험 없는 분야에서 ‘사업하는 것’은 어려웠다. 기업 인수와 제휴 등 여러 방식이 동원됐지만 투자자가 원하는 만큼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수익을 높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요 기획사 매출 구조에서 음악 사업만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거둔 성과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BTS 등장으로 케이팝 기획사 수익구조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BTS 수익모델
BTS는 케이팝 산업의 3대 수익구조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BTS 수익은 크게 음원·음반 수익, 광고·출연·팬상품(굿즈) 등 아이돌 지식재산권 활용 수익, 공연 수익으로 나뉜다. 공연 수익을 수익구조의 한 축으로 키웠다는 점이 괄목할 부분이다. 과거 케이팝 그룹도 공연 이익을 꾸준히 거둬왔지만 3대 축이 될 정도로 이 비중을 높이는 것은 어려웠다. 
 
세계 음악시장에서 공연 수익은 매우 중요하다. 전체 매출 절반 이상이 공연에서 나온다. 공연표가 가장 비싸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외시장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음원 수익과 지식재산권 수익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통사가 더 많이 챙겨가기 때문에 수익성에서 음원은 과거 음반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다양한 굿즈 매출이 높아지고 있지만, 공연표 구매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평가되는 수준이다. 음원과 굿즈를 사면서 팬심을 높여 가장 비싼 공연까지 볼 때 수익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많은 케이팝 기획사가 일본 시장을 꾸준히 두드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에서 공연 수익이 제대로 나오면 한국 수익의 10배가 창출된다. 팬심이 두터워도 동남아시아에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공연장을 꽉꽉 채운 해외 공연을 1년 365일 진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다양한 수익원을 찾기 위해 다른 사업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YG는 대표 상품인 빅뱅 공연 수익이 줄어들면서 더 다급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현금 창출 능력이 커서 초기부터 꾸준히 도움이 됐던 클럽 사업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사업을 하면서 ‘상도덕’을 유지했는가, 그 끈을 놓았는가는 다른 문제다. 모든 케이팝 기업이 범죄를 불사하며 사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에게 자본 압박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이 기업공개도 하지 않고 외부 투자도 받지 않는 게 현명했을까 하고 묻는다면, 이 역시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다만 단순히 돈을 버는 것과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들이 미처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금을 쥐었을 거라는 변명 정도는 들이밀 수 있을 듯싶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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