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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를 위한 가계부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13호] 2019년 09월 01일 (일)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구글플레이에 등록된 안드로이드폰용 가계부 애플리케이션들. 구글플레이 누리집
퇴직 이후 적절한 소비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가계부 쓰기다. ‘알뜰 주부’ 상징이던 가계부를 날마다 쓰는 것은 너무 성가신 일이었다.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 귀찮을뿐더러 ‘짠돌이’로 비치게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무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불편이 크게 줄었다. 이들 앱에선 카드 사용 명세가 자동 입력되고, 통계 처리가 손쉽고, 알아보기도 편하다. 퇴직 뒤에는 돈 드나듦이 줄어들고 월 단위 개략적 지출 내용만 있으면 충분해 가계부 쓰기가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어떤 형식으로든 가계부를 쓰면 모래알처럼 새어나가는 돈을 줄이는 즉각적 효과가 생긴다. 사실 보통 사람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카드 사용이나 계좌 입출금 내용을 꾸준히 들여다봐야 자신의 소비 행태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가계부를 써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자기 성찰에 있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을 덜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씀씀이 경향, 나아가 생활방식이 적절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가계부 앱 ‘와이냅’을 개발한 재무상담가 제시 메캄은 저서 <매달, 무조건 돈이 남는 예산의 기술>에서 “많은 사람이 돈 문제로 고생하는 것은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합리적 판단 기준이 없어 골치가 아프다는 뜻이다. 가계부에 담긴 지출 내용이 그런 판단 체계를 갖추는 기초 자료가 된다. 

지출 우선순위
‘콩나물 얼마어치’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돈을 언제 어디서 얼마나 썼다는 사실을 적어두는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지출되는 돈 성격을 분류하고, 그 종류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한다면 순위가 낮은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돈 흐름, 소비 행태의 엄정한 분석과 지출 합리화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정한 예산 범위 안에서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 가계부 작성 제1원칙이다. 
 
그럼, 어떻게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가. 중견기업 P부장은 재무설계 노하우를 담은 서적과 자료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 기준을 마련했다. 첫 단계는, 필요와 욕구의 구분이다. 꼭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차이다. 아파트 관리비, 대출이자, 생필품 비용 같은 것이 필수 지출에 해당한다. 우선순위에서 필요는 당연히 욕구에 앞선다. 
 
다음 분류는 달마다 정해진 액수로 고지서에 찍혀 나오는 고정지출과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변동지출로 나눌 수 있다. 식품, 의복, 교통에 드는 비용은 필수 지출에 해당하지만 선택에 따라 액수 차이가 크다. 대중교통 일상화와 수시로 택시 타는 것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재무설계사들은 모든 지출 항목을 의심하고, 필수인 척 ‘위장한’ 자신의 소비 습관을 가려내라고 강조한다. 소비와 낭비를 잘 구분하고, 필수 지출에도 군더더기가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P부장에겐 자가용이 대표 사례다. P부장은 가족의 숱한 원망을 들으면서도 외관이 꽤 낡은 2003년식 1500cc 승용차를 고집한다. 옵션을 포함해 3천만원가량 드는 중형차로 갈아타지 않음으로써 차 가격과 보험료 지출을 줄였다. 물론 승차감과 안전성을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필수 항목 가운데서도 우선순위를 세분하면 소비 판단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메캄은 “가계부를 쓰는 것(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운동해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다”며 할수록 실력이 늘고, 지출 항목에서 제외할 때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고민이 점차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충동구매 디톡스
돈은 주로 물건과 맞교환된다. 수많은 채널의 홈쇼핑 방송과 거의 매일 현관 앞에 놓이는 택배 물건은 ‘소비천국’ 대한민국 상징이다. 소비 관념과 행태는 나이 들고 수입이 줄어든다고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가장 위험한 것이 순간적 욕구에 자극받는 충동구매다. 특히 목돈인 퇴직금을 받으면 오래 쓴 집안 살림살이를 대대적으로 갈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퇴직 뒤엔 아무래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홈쇼핑의 현란한 마케팅은 당장 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보는 이를 몰아붙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택배비를 물지 않고도 반품이 가능하도록 한 홈쇼핑의 ‘덫’에서 헤어나기는 쉽지 않다. 어지간해서는 배달 온 물품을 돌려보내지 못하는 게 사람 심리다. 비용은 한 달 남짓 지나 무이자 할부로 통장에서 빠져나가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노후 재무설계 전문가의 한결같은 충고는 합리적 소비다. 가계부는 쓰는 게 좋고,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게 낫다. 한번에 들어가는 돈이 적어 쉽게 써버리는 돈을 ‘라테 머니’라고 한다. 카페라테 같은 음료 가격이 하루 5천원 든다고 가정할 때, 한 달을 절약하면 15만원이 모인다. 1년이면 180만원, 10년이면 원금만 1800만원이 된다. 일본 재무상담가 요코야마 미스아키는 저서 <부자는 아니어도 돈 걱정 없이 사는 법>에서 저축은 “엄청난 수익을 내기보다는 흩어져 있는 적은 돈을 모아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한 달에 과연 몇 번이나 택배 물품이 배달됐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꼭 필요한 것인지, 있으면 좋은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구분해보기를 권한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 다음에는 무계획적 지출과 배달 횟수가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일정한 급여소득이 있는 시기부터 점진적으로 홈쇼핑과 충동구매의 디톡스(해독) 작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배우자가 홈쇼핑 방송으로 스트레스를 풀려 한다면 설득 과정은 필수다. 
 
노후에는 얼마나 벌지가 아니라 어떻게 덜 쓸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쉽다. 소비 그물망을 단단히 죄어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줄이는 게 노후 불안을 더는 지혜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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