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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 너는 누구냐?
[CULTURE & BIZ] 디즈니로 보는 콘텐츠의 세대교체
[112호] 2019년 08월 01일 (목)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1992년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한 2019년판 실사영화 <알라딘>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달라진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시간 흐름을 눈으로 관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은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긴다. 지구에는 지층이 있고,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듯이 말이다. 이 흔적을 통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층이나 나이테와 같이 사회는 세대라는 시간 흔적을 만들어낸다. 21세기 사회학에서 세대 행동양식을 분석해 보편적 성향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특히 사업과 마케팅 영역에서 목표 대상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왔다. 
 
사회학자들은 이전과 성향이나 특성이 다른 세대가 나타나면 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통처럼 돼가고 있다. 인류 진화 단계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 ‘베이비부머’부터 ‘X세대’ ‘밀레니얼세대’, 최근 ‘Z세대’(Gen Z·젠지)까지 다양한 세대 명칭이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 세대는 사회의 점진적 변화와 발전에 공헌해왔다. 젊은 계층은 문화와 트렌드를 선도한다. 이들의 문화는 윗세대로 곧바로 전파된다.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색깔을 띠는 최상위 세대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사업에서는 새 세대를 빠르게 이해하고 주요 또는 잠재 고객층으로 흡수하는 것이 기업 사활이 달린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요즘 마케팅이나 콘텐츠 업계에서는 가장 최근에 나온 세대인 ‘젠지’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젠지’ 시대
젠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맥락을 알아야 한다. 맥락은 세대별 행동양식을 구분할 때 쓰는 일종의 역사적 배경이다. 새 세대의 등장은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사회적 맥락을 갖는다. ‘전후 세대’인 베이비부머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맥락이 세대를 규정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1960~70년대에 태어난 X세대는 탈냉전과 자유주의, 1980~90년대생의 밀레니얼세대는 어린 시절 겪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성향과 가치관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학자가 베이비부머의 이분법적 가치관이나, X세대의 개인주의, 밀레니얼세대의 경제 감각이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1995~2010년에 태어난 젠지는 2019년 기준으로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이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전체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젠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맥락은 ‘디지털 네이티브’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환경에서 성장했다. 현재 우리 인류를 지배하는 디지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집단이 젠지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에 익숙한 젠지는 수많은 디지털 자원을 활용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에 능숙하며, 가상과 현실 경험을 쉽게 연결하는 능력이 있다. 디지털과 현실 세계 구분은 더 이상 젠지에게 의미가 없다. 이들은 손바닥 위 마법책인 스마트폰으로 모든 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반면 젠지는 방대한 정보량과 연결점 때문에 자기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젠지 부모인 X세대가 자기 정체성이 가장 뚜렷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젠지는 정보 홍수 속에 자기 정체성을 찾기보다 집단의 방향성에 휩쓸려다닌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젠지는 어떤 세대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는 젠지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 사는 젠지는 콘텐츠를 소유하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뿐이다. LP·CD·DVD를 모으던 기존 세대와 달리, 젠지는 회원으로 ‘가입’해 콘텐츠 구독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을 즐긴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로 영화·드라마를 보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들으며,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동영상 플랫폼으로 정보를 얻고 여가를 즐긴다. 

   
▲ 200만 명 가까운 구독자를 거느린 인기 유튜버 헤이지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생산도 활발하게 한다. 연합뉴스
달라진 콘텐츠 생산과 소비 
젠지는 활발한 콘텐츠 소비자이자 생산자다. 소셜네트워크나 유튜브 등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런 콘텐츠는 사업 구조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 전문 생산자가 생산·유통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평적 콘텐츠 생산 구조는 젠지의 다양성과 결합해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낸다. 젠지는 콘텐츠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며 문화적 욕구를 충족한다. 
 
게다가 젠지는 ‘브이로그’라는 동영상 블로깅을 통해 타인 사생활을 소비한다. 개인 영역이던 자신의 게임 모습을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유하는 등 사생활을 노출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사생활 보호에 민감한 이전 세대와 다르다. 젠지는 ‘초연결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답게 디지털로 엮인 다양한 인간관계를 보유하고, 인간관계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젠지에게 콘텐츠나 문화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유동적이며 다양하게 변한다. 그래서 젠지는 스폰지처럼 문화를 흡수하고 다시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그 속에서 다양한 문화 틀을 만들어간다.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젠지의 욕구는 콘텐츠 시장을 근본부터 바꿀 것으로 보인다. 킬러 콘텐츠 하나에 주력하기보다 여러 취향을 충족할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콘텐츠 사업에서는 이른바 블록버스터형보다 다양한 계층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작품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개별 콘텐츠의 제작 단가는 점점 내려갈 것이다. 예전에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으로 여러 개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콘텐츠업계도 젠지 등장에 맞춰 바뀌고 있다. 특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다양한 인수·합병을 거쳐 거대 문화제국으로 성장한 월트디즈니의 최근 움직임이 주목된다. 젠지 등장 뒤 콘텐츠업계에서 세대교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젠지를 대하는 콘텐츠업계
1923년 창업해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디즈니는 방대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다. 인수·합병으로 확보한 20세기폭스사의 IP나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 마블스튜디오의 MCU 프랜차이즈,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같은 IP까지 더하면 현재 콘텐츠 산업계에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디즈니에서 가장 열을 올리는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다. 2010년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 실사화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실사판 <말레피센트>를 비롯해 <신데렐라> <정글북> <미녀와 야수>로 이어졌다. 최근 개봉한 <덤보>나 <알라딘> <라이언킹> 같은 작품과 함께 개봉을 기다리거나 제작 중인 <뮬란> <백설공주> <인어공주>까지 더하면 대부분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실사화가 완료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는 어떤 영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CG) 기술 발달이 일차적 배경이다. 하지만 오래된 디즈니의 2D 애니메이션은 콘텐츠로서 매력을 잃어가 새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디즈니의 고민이 숨어 있기도 하다. 거기에 X세대 부모와 젠지 자녀가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 라인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이 좋아했던 콘텐츠를 물려주는 형태로 디즈니의 유산을 새 세대에 맞게 재창조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들 새 영화는 기존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도 세대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전통적인 ‘공주’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남성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새 세대 디즈니 영화에서공주 캐릭터는 젠지가 선호하는 여성상으로 바뀌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남성 도움만 기다리지 않는다. 이렇게 디즈니는 새 세대에 맞게 콘텐츠 세대교체를 하나씩 해가면서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콘텐츠 기업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새 세대에 맞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노키아나 싸이월드 같은 사례를 보았다. 새 세대를 고객으로 빠르게 흡수하고 그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면 사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안다. 새 인류의 진화종인 젠지는 지금도 계속 변한다. 빨라진 시대 흐름에 올라탈 것인지, 아니면 바라만 볼 것인지는 젠지를 얼마나 더 많이 이해하는지에 달렸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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