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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고 건강하게’… 국내 기업 진출 유리
[세계는 지금] 변화하는 스페인 식탁
[112호] 2019년 08월 01일 (목) 이성학 spelee@kotra.or.kr
이성학 KOTRA 스페인 마드리드무역관 과장
 
   
▲ 고집스러운 스페인의 식탁이 바뀌고 있다. 시에스타(낮잠 자는 시간)는 점점 옛말이 됐고, 간편하게 먹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즉석·인스턴트 음식 소비가 늘고있다. REUTERS
<블룸버그>가 2019년 2월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국가 순위에서 스페인이 이탈리아와 아이슬란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중해식 식습관과 무상 공공의료 혜택이 순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국가로 예부터 농업이 크게 발달해, 다양하고 싱싱한 농산물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비옥한 토양과 높은 일조량으로 농업이 발달했으며, 강우량이 많아 목초지가 많은 스페인 북부에선 낙농업이, 중부지방에선 와인을 많이 생산한다.  
 
지중해와 대서양 모두 맞닿아 있어 갖가지 해산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대표적 농산품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올리브로, 생산 규모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와인이나 돼지고기 등 주류나 육류도 종목을 가리지 않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유럽에서 어느 슈퍼마켓을 가도 스페인산 채소나 육류, 해산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건강한 국가 1위
‘유럽의 키친’이라고도 불리는 스페인은 식문화에 자부심이 매우 크다. 다양하고 신선하며 저렴하기까지 한 지중해 식단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다. 전세계에서 건강한 식단으로 손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올리브유, 와인, 채소, 생선, 과일 등을 기본으로 하는 식단으로 스페인이 세계 장수 국가가 된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스페인은 꽤 오랫동안 타국 식문화를 자신들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요즈음에도 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면 전세계적으로 흔하디흔한 중국식당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시골 어르신은 와인과 바게트, 올리브유가 없으면 식사를 거부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스페인 식문화도 세계화 물결 앞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대도시와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기존 식문화와 다른 움직임이 포착된다. 한마디로 “편리하게, 건강하게, 다르게 먹자”로 요약할 수 있다. 덕분에 난공불락과도 같던 스페인 식품시장에 조금씩 기회의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끼쯤은 때우자” - 즉석조리식품
점심 식사 뒤 낮잠을 뜻하는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대도시에 사는 직장인은 이제 여느 유럽 못지않게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한때 25% 넘는 높은 실업률, 특히 6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을 경험한 스페인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찾고, 직장 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긴 전채요리-메인요리-후식으로 이어진 정찬을 간소화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별한 모임이나 행사가 아니면 평소 두세 시간 걸렸던 식사 시간도 한 시간 이내로 줄어들었다. ‘한 끼도 허투루 먹을 수 없다’는 마음에서 ‘한 끼쯤은 간단히 먹자’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사고 변화는 간편조리식품 시장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간편조리식품 붐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는 인스턴트 라면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페인 소비자는 인스턴트 라면은 정크푸드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시아 식품점에서만 판매했을 뿐 일반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는 취급하지 않던 품목이다. 그러나 간편조리식품 요구가 늘어남을 포착한 스페인 식품기업 갈리나블랑카(Gallina Blanca)는 2013년 컵라면 신규 브랜드인 야테코모(Yatekomo)를 출시했다. 치킨누들 수프, 카르보나라 파스타, 야키소바, 카레, 새우 등 현지 소비자에게 익숙하거나 좋아할 만한 제품도 개발해 선보였다. 야테코모는 대성공해 출시 3년 만에 누적판매 1억5천만 개를 돌파하며 갈리나블랑카의 주력상품으로 부상했다. 타 식품업체에서도 앞다퉈 인스턴트 라면 상품을 선보였다. 현재 스페인 내 일반 슈퍼마켓 체인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소규모 식품점 어디에서나 인스턴트 라면을 취급한다.

“‘몸짱’이 되고 싶어” - 건강식품
건강식품 수요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대체로 비만이 관용되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갖는 것이 삶의 필수 요건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실제 마드리드의 기업 밀집 지역만 보면 10년 전보다 일반 레스토랑 수는 줄어든 반면 샐러드바나 스시바 등이 많이 늘어났다. 점심 식사에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천연 과일주스를 곁들어 가볍게 먹는 직장인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웰빙 시장도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체중감량보조제와 식사대용식품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 기업은 비센추리(Bicentury)다. 2015년 일본 오쓰카제약에 인수된 비센추리는 스페인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으며 글루텐-프리 스낵(쿠키, 비스킷 등)과 식사대용 셰이크 등으로 현지 젊은 여성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양문화에 호기심 - 아시아 식품
Z세대, 즉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젊은 세대는 기존 세대보다 새로운 문물이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스페인 Z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핫’한 동양문화에 심취해 있다.
 
그간 스페인 아시아 식품점의 주 고객은 아시아계 이민자였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 식품점에 가면 스페인 소비자가 많이 보인다. 이들은 주로 인스턴트 라면이나 냉동만두, 스낵, 음료같이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주로 사지만, 방송매체나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대로 직접 조리해보기 위해 소스류나 식자재를 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시아 식당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한국식당, 중국식당, 일본식당 등으로 구분됐다면, 최근에는 일본식 라멘바, 중국 쓰촨식 훠궈 전문점 등 특정 메뉴를 주력으로 하는 전문식당이 늘고 있다. 주요 고객은 아시아계 이민자가 아닌 스페인 현지인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식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이 현지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 식문화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한식이 갖가지 채소를 사용하며, 기름지지 않고, 발효식품이 많아 건강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아직은 중국이나 일본 음식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현재 스페인에서 한국 문화 관심도를 볼 때, 머지않아 한식도 현지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현지 대형 수입상과 협력
즉석조리식품, 건강식품, 아시아식품 열풍은 한국 식품기업의 스페인 시장 진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은 이미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품질의 즉석조리식품이나 건강식품을 오래전부터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류 열풍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가능하다.
 
코트라 마드리드무역관은 2018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K-푸드 로드쇼를 했다. 한국 기업 16곳이 직간접적으로 참가했고, 스페인 최대 슈퍼마켓 체인 메르카도나(Mercadona)를 비롯해 30여 개 현지 유력 식품 수입유통업체가 행사장을 방문했다. 그 밖에 20여 개 현지 언론사와 현지 인플루언서(SNS 유명인) 50여 명이 몰려, 한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식품의 스페인 수출을 저해하는 요소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식품 관심이 대도시 젊은 소비층 일부에만 국한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통관이다. 스페인은 식품 통관이 유럽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 동물성 성분이 조금만 들어가도 통관 조건이나 절차가 매우 복잡해지며 상당한 시일과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수출 초기에는 식물성 식품 위주로 판매하며, 냉동·냉장 제품보다 상온보관이 가능한 식품 판매가 유리하다.  
 
이런 문제를 종합할 때, 현지 대형 식품 수입상과 협력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해외식품 통관 경험이 풍부하며, 현지 주요 대형 유통망(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과도 영업 네트워크를 갖춰 효과적인 판촉 행사 등을 기획할 수 있다. 
 
스페인 시장에 큰 비전을 갖고 있다면 현지 법인 설립으로 직접 진출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스페인 인구는 5천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매년 8천만 명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 2위 관광대국이어서 마케팅 활동은 전시 효과가 매우 크다. 
 
고집스러운 스페인 식탁이 변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한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스페인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솔푸드’가 되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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