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일본식 표현 ‘적’을 줄이자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12호] 2019년 08월 01일 (목)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투데이
“촬영할 때는 오랜 시간 하다보니 몸적으로나 마음적으로 힘들었던 게 있다.” 한 걸그룹 멤버가 인터뷰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몸적’ ‘마음적’에는 모두 적(的)을 붙였다. ‘적’은 한자어 뒤에 붙어 ‘성격을 띠는’ 것을 뜻한다. 순우리말 접미사 ‘스럽다’ ‘답다’와 비슷하다.
 
적은 일본에서 많이 쓰기 시작한 뒤 우리가 따라 쓰게 된 거다. 일본에선 메이지 시대 초기 영어 ‘~tic’을 번역하면서 ‘~적’이란 말을 썼다. 일본 발음으로 ‘적’은 ‘데키’(teki)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화기 잡지나 소설에서 처음으로 ‘적’이 등장한다.
 
‘적’은 마치 적군처럼 우리말에서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밀어낸다. 어색한 말을 만들어낸다. 불필요하게 쓰는 ‘적’을 없애자.
 
“그 집 남편은 아내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여기서 ‘무조건’만 살려놓고 ‘적’을 지워보자. “그 집 남편은 아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또 다른 예 하나. “저출산이 불러올 사회적 현상은 어떤 게 있을까?”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에 나온 ‘적’을 지워보자. “저출산이 불러올 사회 현상은 어떤 게 있을까?” 마찬가지로 간결해졌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경제적 문제’ ‘정치적 관계’ ‘국제적 문제’에서도 ‘적’을 모두 빼보자. 훨씬 더 자연스럽다. ‘경제 문제’ ‘정치 관계’ ‘국제 문제’처럼 말이다. 불필요한 ‘적’을 없애면 간결하고 뜻이 명확해져 이해하기 쉽다. 모호할뿐더러 듣는 이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적’이 붙은 말을 되도록 줄여 쓰자.
 
‘적’을 없애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말로 고치는 거다. “그는 노골적으로 그 사람 편을 들었다.” 이 문장에 나오는 ‘노골적’에서 ‘적’을 빼면 “그는 노골 그 사람 편을 들었다”가 돼 문장이 이상해진다. 이 경우엔 ‘노골적’을 대신할 우리말을 찾아보자. ‘노골적’(露骨的)은 숨김없이 모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드러내는’을 활용하자. “그는 드러내놓고 그 사람 편을 들었다.”
 
“폐쇄적인 사회를 개방적인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역시 ‘폐쇄적인’ ‘개방적인’에서 ‘적’이 두 번 들어갔다. ‘폐쇄 사회’ ‘개방 사회’처럼 ‘적’을 빼도 되지만, 우리말로 고쳐주는 게 더 자연스럽다. 다음처럼 말이다.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촬영할 때는 오랜 시간 하다보니 몸적으로나 마음적으로 힘들었던 게 있다.” 이 문장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을까?
 
‘순우리말+적’은 아무래도 어설프다. 예를 들어 ‘일적으로 힘들다’는 어색한 표현이다. ‘일 때문에’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정신적’ ‘육체적’이란 표현은 부자연스럽지 않지만, ‘마음적’ ‘몸적’은 어색하다. 
“마음적으로 몸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마음으로 몸으로 너무 힘들다” 또는 “마음과 몸이 너무 힘들다”로 고치자.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다’와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문장 가운데 어느 쪽이 쉽게 와닿나? 후자가 더 쉽다.
 
‘적’이 붙으면 어려워지고 불친절한 말이 되기 십상이다. 말뜻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듣는 이에겐 모호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런 적(的)을 적(敵·싸우는 상대)이라 생각하고 되도록 쓰지 말자.

일본식 서술어를 줄이자
우리말에서 서술어는 문장 끝에 온다. 그런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주 쓰는 서술어 가운데 일본식 표현이 있다. ‘있으시기 바랍니다’는 일본어투다. ‘참석 있으시기 바랍니다.’ 행사에 앞서 초대하는 글을 보낼 때 흔히 본다. 옳은 표현이 아니다. ‘참석’이란 말 뒤에는 ‘하다’나 ‘하지 않다’ ‘하지 못하다’와 같은 말이 따라와야 한다. 참석 뒤에 ‘있다’를  쓰면 우리말 어법에 어긋난다.
 
방송에서 “많은 시청 (있으시기) 바랍니다”를 자주 듣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좋은 결과 있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이용 있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협조 있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이런 표현은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많이 시청해주십시오” “많이 협조해주세요” “많이 이용해주십시오”로 고치는 게 좋다.
 
‘요(要)한다’. 이 표현도 일본에서 왔다. 일본어 ‘필요 있다’(よう(要)する)를 직역했다. 격식을 찾는 공무원이 많이 쓴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을 ‘막대한 비용을 요하는 사업’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하이킹을 할 때는 체력과 인내력을 요한다”라는 표현은 “하이킹을 할 때는 체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로 고치자.
 
독립군을 체포해 고문한 일제 고등 경찰이 쓰던 표현 가운데 하나가 ‘요시찰자’(要視察者) ‘요주의자’(要注意者)였다. 최근까지 우리나라 정보기관에서도 쓰던 표현이다. 이젠 사라져야 할 말이다.
 
‘다름 아니다’. 이 말은 일본어 ‘다른 것이 아니다’(~にほかならない)를 직역한 구절이다. ‘다름 아니다’를 ‘똑같다’나 ‘다름없다’로 바꿔 써야 일본말 찌꺼기를 걸러낸 표현이다. ‘다름없다’라는 좋은 우리말 표현이 있다. “그 시대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는 이렇게 고치면 된다. “그 시대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달(達)하다’. 일본 한자어 ‘달하다’를 우리가 읽는 한자로 읽어서 표현한 말이다. ‘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라는 의미로 쓰는 우리말에는 ‘이르다’가 있다. 굳이 일본어 한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올해 1~10월 에어컨 국내 판매 증가율이 53%에 달했다”를 “올해 1~10월 에어컨 국내 판매 증가율이 53%에 이르렀다”로 고치면 된다.
 
‘경우’. 역시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표현이다. 우리말 표현인 ‘일 때’나 보조사 ‘은/는’으로 바로잡자. “아이들의 경우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하다”는 “아이들은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하다”로 고치면 된다. “눈이 계속 내리는 경우 교통을 통제한다”는 “눈이 계속 내릴 때는 교통을 통제한다”로 고쳐보자.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8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